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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은석 변호사 Jan 30. 2020

친구가 돈을 안 갚는데 고소할 수 있어요?

기본개념     제1강 민사와 형사

태초에 범죄가 있었다. 아담과 하와의 아들 카인이 자신의 동생 아벨을 죽인 것이다.

그때는 하나님이라는 신이 카인을 영원한 방랑자가 되게 하는 형에 처하였다. 하지만 그 이후 인간은 피해자 또는 그의 일족이 가해자 또는 가해자가 속한 집단에 직접적으로 복수를 하는 형태로 처벌을 행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국가라는 것이 형성되었고, 기원전 18세기경 고대 바빌로니아의 함무라비 왕은 총 282조에 이르는 법을 만들었다. 그중 제8조는 "누구든 소나 양, 나귀, 돼지나 염소를 훔쳤으면, 그것이 신(God)이나 왕(court)에게 속한 경우 30배를 배상하고, 자유인에게 속한 경우 10배를 배상하여야 한다. 만약 도둑이 배상할 것이 없으면 죽인다."라고 되어 있다.


죄와 형벌에 관한 지금의 관념으로는 균형을 상실했다고 여겨지지만, 아마도 당시에는 수용될 만하였으니 법으로 제정하였을 것이다. 어쨌든 피해자의 가해자에 대한 복수에 국가가 법이라는 굴레를 씌웠다.


우리나라의 형법 제329조는 "타인의 재물을 절취한 자는 6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라고 되어 있다.

벌금은 국가에 납부하는 것이다. 함무라비 법 제8조의 30배 또는 10배 배상은 국가가 아니라, 그 피해자에게 직접 주는 것이다. 전자는 형사책임이지만, 후자는 형사책임이면서 민사책임이기도 하다. 고대에는 함무라비 법전에서 보듯이 민사책임과 형사책임이 명확히 구분되지 않았다.


민사책임과 형사책임을 이론적으로 분명하게 구분하기 시작한 것은 근대에 들어서이다. 나폴레옹이 1800년대 초 민법전과 형법전을 별도로 제정하면서 실정법상으로도 명백히 구분되었다.


형사책임이란 범죄를 저지른 사람에 대해 국가가 형벌권을 발동할 수 있는 조건이다. 형사책임과 구별되는 민사책임을 언급할 때는 주로 불법행위 책임을 말한다. 범죄는 대개 불법행위도 되기 때문이다. 불법행위 책임이란 고의 또는 과실에 의한 위법한 행위로 인해 상대방에게 발생한 손해를 전보해 주어야 하는 의무이다.


불법행위책임법은 손해의 공평한 분담을 기본원리로 한다. 함무라비 법 제8조의 30배 또는 10배 배상은 손해의 공평한 분담을 넘어서서 피해자의 복수심을 무마할 정도로 징벌적이고, 다른 사람이 절도를 하지 못하도록 겁을 줄만큼 위협적이다.

민사책임과 형사책임을 구별할 수 없었으니 함무라비 법상 형사재판과 민사재판이 절차적으로 구별되어 있지도 않다.



친구가 빌린 돈을 갚지 않는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돈을 갚지 않는 것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위법한 행위이지만 그것만으로 불법행위나 범죄가 되는 것은 아니다.


만약 자신이 범죄 피해를 당했다면 검찰이나 경찰 등 수사기관에 고소할 수 있다.

고소는 고소권자가 수사기관에 대하여 범죄사실을 신고하고 범인의 처벌을 구하는 의사표시로서, 서면 또는 말로써 할 수 있다(형사소송법 제237조 제1항). 경찰청 홈페이지에 민원을 접수하는 것은 서면이나 말로 한 것이 아니므로 적법한 고소가 되지 아니한다(대법원 2012. 2. 23. 선고 2010도9524 판결).

고소를 할 수 있는 고소권자는 범죄의 피해자, 그 법정대리인 등으로 법에서 정하고 있다(형사소송법 제223조 내지 제229조, 군사법원법 제265조 내지 제270조).

고소는 범인의 처벌을 구하는 의사가 표시되어야 하기 때문에 단순히 범죄 사실을 신고하는 것만으로는 고소가 되지 않는다. 고소는 수사를 개시하기 위한 단서가 되고, 피해자가 가해자에 대해 형사책임을 묻기 위한 법적 절차의 첫 단계가 된다.


그러므로 "친구가 돈을 안 갚는데 고소할 수 있어요?"라는 질문에 대해선 일단 아니요라고 답할 수 있다. 범죄가 아니므로 형사책임을 물을 수 없고, 민사책임만을 물을 수 있을 뿐인데, 고소는 형사책임을 묻기 위한 조치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친구가 처음부터 갚을 의사가 없거나 갚을 능력이 없었는데도 이를 속이고 돈을 빌린 때에는 사기죄의 고의가 인정된다. 사기죄로 처벌, 즉 형사책임을 묻기 위해서 피해자는 그 친구를 고소할 수 있다. 그 친구가 돈을 갚지 않아요라고 고소하는 것이 아니라, 그 친구가 돈을 빌려갈 때 나중에 돈을 갚을 수 있고 갚을 생각이 있는 것처럼 속였는데, 지금 돈을 갚고 있지 않아요라고 고소하는 것이다.


형사책임은 국가가 형벌권을 행사하기 위한 조건이므로, 고소로써 그 친구에게 받지 못한 돈을 돌려받을 수는 없다. 그 친구에게 돈을 돌려받는 것은 민사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돈을 돌려받기 위해서는 그 친구를 상대로 대여금 청구의 소를 제기해야 한다.



이제 결론이다. 민사책임과 형사책임이 엄격히 구별된다는 것을 알았다. 그런데 과연 그러한가?

영국, 미국, 캐나다, 호주 등의 국가에서는 징벌적 손해배상(punitive damages, exemplary damages) 제도가 있다. 악의적 불법행위 등의 경우 피해자가 실제로 입은 손해를 훨씬 초과하는 금액을 배상하도록 하는 제도이다. 왠지 앞에서 본 함무라비 법 제8조의 30배 또는 10배 배상 제도가 떠오른다.


우리나라에서도 2011년 3월 29일 하도급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에 3배 이내의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가 최초로 도입된 이후 제조물책임법, 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공익신고자 보호법, 환경보건법, 특허법,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개인정보보호법, 신용정보의 이용 및 보호에 관한 법률, 대규모유통업에서의 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 가맹사업거래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 대리점거래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 대·중소기업 상생협력 촉진에 관한 법률,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 축산계열화사업에 관한 법률, 산업기술의 유출방지 및 보호에 관한 법률, 자동차관리법(5배 이내 배상) 등으로 점점 확대되고 있는 추세이다.


정신적 손해에 대한 배상을 의미하는 위자료도 민사소송을 통해 청구할 수 있지만, 그 본질이 순전한 민사책임인지는 생각해 볼 일이다. 불법행위로 인한 정신적 고통을 금전으로 위자하려는 시도는 범죄자가 정당한 형벌을 받음으로써 피해자의 상처 받은 마음이 위자되는 것과 비슷한 동기 내지는 논거에 기초한다는 견해도 가능하다. 고대 사회에서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속죄금을 내거나 복수를 당하는 형태 중 속죄금이 위자료에 겹쳐져 보이는 것이다.


하지만 징벌적 손해배상이나 위자료의 성격에 모호한 점이 있다고 하더라도 현행법상 민사책임과 형사책임이 준별 된다는 점을 부인하기는 어렵다.



One Point 법률용어

고발 : 고소권자와 범인을 제외한 사람이 수사기관에 대하여 범죄사실을 신고하고 범인의 처벌을 구하는 의사표시. 범인을 제외하는 이유는 그 경우는 자수가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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