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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은석 변호사 Feb 03. 2020

계약금을 못 받았는데 계약을 무르자고 합니다. - 1편

기본개념     제2강 계약의 성립

계약은 지켜져야 한다(pacta sunt servanda)는 법언이 있다.

고대 로마 시민권자 사이에 적용되었던 시민법(ius civile)은 소수의 유형화된 법률행위가 엄격한 형식에 의해 이루어질 때 법적 효력을 인정하였다. 공화정 후기에 이르러 로마인과 외국인 또는 외국인 상호간에 적용되는 만민법(ius gentium)상 당사자의 의사만으로 성립하는 낙성계약의 유효성이 인정되기 시작하여 점차 일반화되었다. 그리고 시민법이 알지 못하는 여러 종류의 합의가 행해졌는데, 그 합의에 대하여는 신의에 기초하여 법적 구속력이 인정되었다. 이후 안토니우스(Antonius) 황제가 로마제국의 모든 자유민에게 로마 시민권을 준 이후에는 시민법과 만민법의 구별은 그 의미가 없게 되었고, 기독교의 영향으로 계약과 단순한 합의의 차이가 점차 소멸하여 유스티니아누스(Iustinianus) 황제 때에는 그가 유형화한 모든 합의에 법적 효력이 부여되었다.[*]

중세 교회법학자들은 모든 합의는 그 방식과 상관없이 구속력이 있는 것으로 생각하였는데, 이것이 다시 세속법에서도 받아들여진 것이다.[**]

계약은 지켜져야 한다(pacta sunt servanda)는 법언의 문언 자체는 17세기 자연법학자 사무엘 푸펜도르프(Samuel Pufendorf)가 1688년 처음으로 사용했다고 한다.[***]


이처럼 계약은 지켜져야 한다(pacta sunt servanda)는 말은 본래 계약 효력의 관점에서 낙성계약의 법적 구속력을 인정한다는 취지이고, 계약의 이행에 방점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고 할 수 있다.

비교하자면, 로마법에서는 계약의 법정 해제나 해지 자체를 인정하지 않았다. 상대방이 채무를 이행하지 않아도 내가 계약을 해제할 수는 없었다. 정말로 계약은 지켜져야 했다. 그렇지만 계약은 지켜져야 한다(pacta sunt servanda)는 법언은 이런 경우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었다.


영미법은 위 법언을 알지 못한다. 계약당사자가 원하면 계약을 이행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그로 인해 상대방이 손해를 입으면 손해를 배상해주면 될 뿐이다.


계약의 구속력에 관한 이러한 차이는 채무불이행에 대한 구제방법에 있어서도 차이를 가져온다. 계약은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는 입장에서는 계약의 강제이행이 원칙적인 구제수단이 되고, 반대 입장에서는 예외적으로만 강제이행을 인정하게 된다.



계약은 원칙적으로 계약당사자간의 의사의 합치로 성립한다. 부동산을 사고팔거나 전세나 임대차 계약을 체결할 때 흔히 주고받는 계약금은 매매 등의 계약 성립 요소가 아니다. 계약서가 작성되어야 하는 것도 아니다.

일방당사자가 상대방에게 상대방의 승낙이 있으면 곧바로 일정한 계약이 성립할 수 있는 확정적 의사표시인 청약을 하고, 그 상대방이 승낙을 함으로써 계약이 성립한다.


계약이 성립하기 위해 의사의 합치가 어느 정도 있어야 하는지에 관해 판례는 "계약의 내용을 이루는 모든 사항에 관하여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고, 그 본질적 사항이나 중요 사항에 관하여 구체적으로 의사가 합치되거나 적어도 장래 구체적으로 특정할 수 있는 기준과 방법 등에 관한 합의가 있으면 충분하다."고 한다(대법원 2001. 3. 23. 선고 2000다51650 판결 등).

의사의 합치가 있는 한, 계약서상의 표시는 계약의 성립에 지장을 주지 않는다. 이를 오표시 무해의 원칙(falsa demonstratio non nocet)이라고 한다. 예컨대, 갑, 을, 병이 각각 채권자, 채무자, 연대보증인의 의사로써 돈을 빌리고 연대보증을 하는 계약을 체결했는데, 계약서에는 갑, 을, 병을 각각 채권자, 연대보증인, 채무자로 기재한 경우, 계약은 갑이 채권자, 을이 채무자, 병이 연대보증인으로서 성립한다.



계약에 구속력이 인정된다면 계약 성립 전에는 청약을 자유로이 철회할 수 있는가?

여기에는 크게 두 가지 접근 방법이 있다.

독일과 우리나라에서는 청약의 의사표시가 상대방에게 도달해 효력이 발생하면 청약자가 임의로 철회하지 못한다(민법 제527조). 이를 청약의 구속력이라 한다. 청약 수령자의 신뢰를 보호하려는 취지이다. 승낙기간을 따로 정하지 않았다면 청약은 원칙적으로 승낙에 필요한 상당한 기간 동안 효력이 있다.

이에 반해 프랑스, 영미법과 로마법은 원칙적으로 자유로이 청약을 철회할 수 있다고 본다. 당사자의 일방적인 의사표시에 법적 구속력을 인정할 수는 없다는 취지이다.

어느 접근 방법이든 청약 수령자의 신뢰가 보호되어야 할 필요가 있을 때 청약의 구속력을 인정하려는 태도는 동일하다.


그런데 청약의 구속력을 인정하는 입장과 계약당사자간 의사의 합치가 있어야 계약이 성립한다는 입장이 정합적인지에 관하여 의문이 있을 수 있다. 승낙이 있기 전에 청약을 철회하여 계약당사자간 의사의 합치가 없더라도 청약의 구속력이 인정되면, 승낙에 의해 청약자는 청약한 대로 이행해야 할 의무가 생기기 때문이다.

이에 관해서는 계약은 보통 협상과정을 거쳐 체결되고, 그 과정에서 여러 제안들이 오고 가는데, 그 중 어느 것이 청약이고 승낙인지 확정하기 어려운 것이 실제 계약 성립과정이고, 청약의 유인(invitation to offer)은 청약과 달리 구속력이 없다는 정도로 일단 답하고자 한다. 사실 청약과 승낙에 의한 계약의 성립이라는 프레임은 의사의 합치를 확인하기 위한 수단이지, 계약 체결의 실제를 그대로 포착한 것은 아니라고 볼 수도 있다. 더 나아가 계약의 구속력은 의사의 합치가 아니라 상대방에 대한 신뢰 부여에서 발생한다고 보는 견해도 매우 유력하다.


다음 글에서는 계약금에 관해 살펴 본다.



One Point 법률용어

청약의 유인 : 청약과 달리 확정적 의사 없이 상대방으로 하여금 청약을 하도록 유도하는 의사표시. 아파트 분양광고는 대표적인 청약의 유인이다. 그러므로 아파트 분양광고의 내용이 분양계약에 당연히 포함되는 것이 아니다.


[*] 현승종·조규창, 로마법, 법문사 (1996), 57, 216면.

[**] 김상용, "민법사상사 - 로마법 발전에 영향을 미친 사상들 -", 학술원논문집(인문·사회과학편) 제53집 제1호 (2014), 39-40면.

[***] C. Scott Pryor, "Consideration in the Common Law of Contracts: A Biblical-Theological Critique", 18 Regent U.L.Rev. 1 (2005), p.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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