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이탈리아 중북부에 머물면서 화려한 르네상스 예술을 두루 접하는 귀한 시간이 있었습니다. 로마에서 밀라노까지 마음에 품고 있던 거장들의 작품들을 찾아다니며, 책으로만 접하던 예술품을 실제 마주한 감상은 한두 마디의 말로는 형언할 수 없는 각별함이었습니다.
숨 막히게 아름다운 작품들의 향연에 아찔한 현기증을 느낄 무렵, 파도바(Padova)에서 만난 조토의 프레스코화는 빙하수 같은 청량함으로 저의 숨통을 탁 트이게 하였습니다. 투박한 듯 세련되고, 강한 듯 섬세한 그림들이 자분자분 저마다의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그리고 그 감흥은 고즈넉한 아시시(Assisi)로 이어졌습니다.
조토의 그림 속에는 실경(實景)을 토대로 한 배경이 등장합니다. 또한 인물들의 옆모습과 뒷모습을 통해 공간을 만들고, 깊이를 드러내는 음영을 넣어 부피감을 주었습니다. 바람결에 일렁이는 옷자락과 감정선을 전하는 표정과 몸짓은 생생함과 역동성을 부여합니다. 이 모든 것들은 조토 이전의 그림에서는 볼 수 없었던 것으로, 그림이 전하는 이야기에 집중하도록 관람자를 이끕니다.
조토의 그림들은, 단지 르네상스의 시조(始祖)라는 칭호로 묶어두기에는 그림이 지닌 에너지와 그 에너지가 불러일으키는 감흥이 너무나 큽니다. 이러한 걸작을 부족한 글로나마여러분께 소개하고 또 함께 그림을 감상할 수 있어 참으로 기뻤습니다. 오래오래 그림을 들여다보다가 한구석에 조토가 숨겨놓은 이야기를 발견했을 때에는 아이처럼 환호를 하기도 했던 선물 같은 시간이었습니다. 기회가 된다면 부디 이 경이로운 그림들을 여러분도 직접 보고 느낄 수 있기를 고대합니다.7개월이 넘는 시간,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연재를 한결같이 지켜봐 주신 여러분께 감사의 마음을 전하며...
* 스크로베니 경당과 관련한 짧은 정보들을 모은 부록 편이 다음 주 일요일에 발행될 예정입니다. 방문을 계획하는 분들께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