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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섬 Aug 18. 2024

최후의 심판

스크로베니 경당의 걸작


'최후의 심판'은 스크로베니 경당의 중심이 되는 센터피스(centerpiece)이자 완성을 이루는 마스터피스(masterpiece)가 되는 작품으로, 경당을 지은 이유와 목적이 포함되어 있다.

 


전체적인 그림을 보면 상단에 해(빨간 동그라미)와 달(파란 동그라미)을 그려서 하늘나라를 나타냈다. 그 아래(노란 네모) 그림의 중심에는 그리스도가 만돌라(mandora, 온몸을 둘러싸는 커다란 광채) 안에 있고, 좌우에 사도들이 배석해 있다. 사도들의 머리 위에는 하늘의 군대(천사들의 무리)가 공중에 떠서 이들을 호위한다.

바로 아래에는 왼쪽으로(빨간 네모) 천국이 펼쳐지고, 오른쪽에는(파란 네모) 불길 속 지옥이 그려졌다. 천국이 그려진 방향으로 미덕의 도상들(빨간 화살표)이 이어지고, 지옥이 그려진 방향으로 악덕의 도상들(파란 화살표)이 자연스럽게 연결되어 심판에 대한 교훈을 준다.



하늘에 위치한 해와 달이다. 해에 비해 달의 크기를 확연히 작게 그린 것과 얼굴을 그려 넣은 것이 인상 깊다. 바로 옆에는 문지기 천사가 양쪽 하늘의 문을 열고 있다.




악과 싸워 선을 지키는 하늘의 군대는 하늘나라 깃발을 들어 본인들의 소속을 명확히 밝히면서  창과 방패, 칼을 들어 무장을 하고 있다.



그리스도의 양 옆에는 열두 사도들이 자리했는데, 유다가 빠지고 바오로가 그려졌다.



정중앙에서 영광에 둘러싸여 있는 그리스도가 심판자의 모습으로 엄중하고 근엄하게 앉아 있다. 그의 발아래에는 천사들이 십자가를 들고 있는데, 이는 그리스도가 심판자이기 전에 우리를 위한 구원자임을 드러낸다.



예수의 옆구리와 손, 발에는 오상(五傷)이 선명하다. 오상은 십자가 위에서 못 박힌 양손과 양발 그리고 창에 찔린 옆구리의 다섯 상처를 말한다. 이 또한 구원을 위한 그의 희생을 보여주는 것이다.



예수가 앉은자리 뒤에는 신약의 복음사가(마태오, 마르코, 루카, 요한)의 상징이 그려져 있다.

하느님이 이스라엘 민족과 맺은 구원의 약속이, 전 인류를 향한 새로운 약속으로 예수를 통해 완성되었음이 복음사가를 통해 드러난다. 보통 그림 속에서 마태오는 천사, 마르코는 사자, 루카는 황소, 요한은 독수리로 표현된다. 이러한 상징은 에제키엘서(1,10-11)와 요한 묵시록(4,7)에서 그 유래를 찾을 수 있다.



구원을 말하는 십자가 옆에는 이 경당을 만든(건축 비용을 댄) 엔리코 델리 스크로베니(Enrico degli Scrovegni)가 등장한다. 그는 한쪽 무릎을 꿇고 성모 마리아에게 경당을 봉헌하고 있다. 가운데에서 붉은 옷을 입고 있는 여인이 마리아이고, 양 옆에는 사도 요한과 성녀 카타리나가 서 있다.

스크로베니 가문은 대대로 은행업에 종사하면서 막대한 부를 축적하였는데, 당시의 은행업이라 함은 피도 눈물도 없는 고리대금업자를 말한다. 그런데 고리대금업은 교회에서 죄악시하여 금하는 업종이었다. 엔리코는 아버지 레지날도(Reginaldo degli Scrovegni)가 죽자 그의 구원을 빌며 이 경당을 지은 것이다.



스크로베니 가문의 구원을 위해서 경당을 지은 것이라면 엔리코이 경당을 구원자인 예수께 봉헌하지 않고 성모 마리아에게 봉헌을 했을까?

전통적으로 교회는 성모 마리아를 중재자 혹은 전구자(仲裁者, 轉求者)로 칭한다. 그 기원은 '카나의 혼인 잔치'(요한 2, 1-11)에서 찾을 수 있는데, 흥겨운 잔치에 포도주가 떨어지고 말았다. 마리아가 예수에게 “포도주가 없구나.” 하자 예수는 아직 자신의 때가 오지 않았다 말하면서도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 명하고, 포도주로 변화시키는 표징을 일으켰다.

가문의 죄를 잘 알고 있는 엔리코심판자인 그리스도의 위엄이 두려워 성모 마리아에게 간구해 달라고 애원하는 것이다.



구원의 십자가 왼쪽에는 의로운 이들이 무덤에서 일어나 천국으로 올라가고 있다.

천국에는 두 무리의 사람들이 모여 있다. 위쪽 부분에는 머리에 후광을 두른 성인(聖人)들이고, 아래쪽에는 성인의 반열에 들지는 못하였으나, 신앙을 지키며 선한 삶을 살다 죽은 의인들이다.

  


오른쪽에는 구원을 받지 못한 사람들이 불길에 싸여  지옥의 나락으로 떨어진다. 천국의 사람들과는 다르게 모두 벌거벗겨져 악마들에게 끌려가고 있다.



악마는 죄목을 적은 두루마리를 들고 있기도 하고, 포승줄에 죄인들을 엮어 끌고 가기도 한다.



흥미로운 점은 지위 고하를 막론한 권선징악이다. 자세히 보면 지옥에 떨어진 여러 군상들 중에 높은 주교관을 쓴 고위 성직자와 그에게 뇌물을 바치고 있는 일반 성직자(수도자)가 포함되어 있다. 타락한 성직자들 옆에는 왕관을 쓰고 있는 국왕도 있는데, 제 입을 찢는 모습으로 그려진 것으로 보아 살아생전 입으로 내뱉은 포악한 명령들의 죗값을 치르고 있는 듯하다.

엔리코는 구원을 위해 많은 돈을 들여 경당을 짓고, 자신이(가문이) 천국에 있는 그림을 그려달라 의뢰했지만 조토는 엔리코의 코 앞에 권선징악을 선명하게 그려 넣어서 천국과 지옥의 심판은 오직 생전에 쌓은 덕업에 의해 가려진다는 것을 강조했다.



이제까지 우리는 스크로베니 경당의 그림들을 살펴보면서,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정면에 보이는 제대를 중심으로 오른쪽 위에서부터 시계방향으로 나선형을 그리며 하부로 내려오도록 전체의 그림이 배치되어 스토리가 전개된다는 것을 알았다. 이 모든 이야기가 하늘로 올려지는 것이 아니라 나를 향해 내려오는 것이다.


구약으로부터 이어지는 구원의 역사는 '나'를 위해 계획된 것이며, 사후의 내가 천국을 향할 것인지 지옥으로 떨어질 것인지는 스스로의 선택에 달려있다.



미덕과 악덕이 양쪽으로 도열된 길을 따라 마지막 그림인 '최후의 심판'을 마음에 새겨 넣은 관람자는 경당의 문을 나서기 전 조토의 그림이 던지는 질문을 받는다. '당신은 세상 밖으로 걸어 나가 어떠한 삶을 살 것인가...?




* 이 연재는 매주 일요일 발행될 예정입니다.

* 연재 안에 수록되는 모든 이미지의 출처는 HALTADEFINIZIONE 임을 밝힙니다.

* 그림을 소개하는 데 있어서 작품의 배경이 가톨릭이기에 용어 및 인용되는 성경 말씀은 되도록 가톨릭 표기를 따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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