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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은성 Sep 09. 2018

때로 나를 좀먹는 칭찬에 대하여

질 필러 광고글을 쓰면서도 '잘 썼어요'라는 코멘트를 저버릴 수 없었다 

아, 또. 나는 표정에 온 마음을 담아 B 씨를 바라봤다. 나는 방금 그녀에게서 네이트온으로 오늘 치 ‘글감’을 받았다. 일산 세모치과의 거미잇몸 교정, 콧물빼기 전문 한의원, 개인 파산 전문 변호사, 판교 부동산, 성형 부작용 전문 성형외과, 그리고 네모여성의원 질 필러. 전화를 받던 B 씨와 드디어 눈이 마주쳤다. B 씨가 입모양으로, “왜요?”하고 물어온다. 나는 그녀의 동그란 눈 앞에서 애꿎은 입술만 몇 번 잡아뜯다가, 결국 고개를 저었다. 속도 모르는 B 씨가 내게 “파이팅.”하고 입모양으로 말했다. 그 파이팅 말고 다른 파이팅이 하고 싶은데요, 고개를 숙이고 워드 창을 열면서도 내 속은 분노로 이글이글 끓어올랐다.     


네이버에서 블로그를 잠깐이라도 운영해본 사람이라면 도대체 어떤 경로로 방문한 것인지 알 수 없는 정체불명의 댓글들로 고민한 경험이 있을 것이다. “우리 소통해요~^^” “포스팅이 넘 좋아서 발도장 꾸욱 찍고 갑니다~^^” 와 같은, 도대체 본문을 읽기는 한 것인지 의심스러운 댓글들 말이다.나는 그런 댓글을 다는 일을 하는 회사에서 6개월 동안 아르바이트를 했다. 내가 했던 일은 계약을 맺은 업체들에게서 키워드를 받아와 거기에 맞춰 광고를 쓰는 것이었다. 매일 아침, 사원인 B 씨가 네이트온으로 키워드를 보내주면 나와 다른 아르바이트생들은 그걸 가지고 원고를 쓰고 사진을 수정했다. 나는 개중에서도 ‘에이스’였다.     


다섯 명의 아르바이트생 중 내게 유독 자주 들어오는 업체가 정해져 있었다. 말투 하나하나에 꼬투리 잡기로 유명한 판교 부동산과 어려운 법률 용어가 난무하는 개인파산 전문 변호사, 그리고 네모여성의원 광고는 거의 내 전담이었다. 셋 다 아르바이트생들은 물론 B 씨도 기피하는 업체들이었다. 

판교 부동산의 사장이 “오늘 글 마음에 드네요, 앞으로도 이렇게만 해주세요.”라고 전화를 걸어왔던 날, 나를 돌아보는 B 씨의 눈은 밝게 빛났다. 그 날부터 나는 ‘에이스’가 됐다. 50대 남성인 부동산 사장의 말투를 훌륭하게 흉내냈기 때문에……     




솔직히 말하자면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좋았다. 째졌다. 이게 뭐라고, 심지어는 드디어 잘 하는 일을 하나 찾아냈다는 생각까지 들 정도였다. 칭찬을 받았던 광고를 괜히 한 번 더 읽어보다가 고개를 들었는데 B 씨와 눈이 딱 마주쳤다. 그녀는 내게 신뢰감이 가득한 미소를 보내며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어쩌면 이게 내 적성인가봐.’ 그 미소 하나에 내 뺨은 끝간 데 없이 저 위로, 위로 올라갔다. 바로 전 날까지 광고글이 쓰기 싫어서 관둘까 고민했던 것은 싹 잊어버렸다.


그 일이 시작이었다. 그 뒤로 B 씨는 내게 특히 까다로운 업체들을 밀어주기 시작했다. 사장이 B씨에게 “광고주랑 미팅했는데 성질 까다로워, B 씨, 글 괜찮은 애한테 시켜.” 라고 하면 곧 B 씨는 내게 네이트온 쪽지를 보냈다. “이 키워드 급하니까 먼저 써줘요.” 

나는 괜찮았다. 걸핏하면 “문장이 좀더 중후하고 무게감 있으면 좋겠습니다.”하고 전화가 오는 판교 부동산도 괜찮았고, ‘개인 파산’이니 ‘회생 절차’니 도저히 이해가 안 가는 내용이 가득한 변호사 광고 글도 괜찮았다. 하지만 괜찮지 않은 것이 하나 있었다.      



'믿어요, 너는 에이스니까, 잘 쓰니까' 라는 말을 들으면, 놀랍게도 써졌다 

처음 네모여성의원의 키워드를 받던 날, B 씨는 마치 ‘때가 왔다’는 표정으로 나를 불렀다.

“지원 씨, 이건 어떻게 쓰면 되냐면요.”

그녀는 나를 옆에 세워 두고 네이버 블로그 검색 상위에 뜨는 블로그 글을 불러와 보여주었다. 그 포스팅의 가장 첫 줄은 다음과 같았다.     

남편의 외도가 걱정이시라구요모 여성클리닉 질 필러로 그의 마음을 꽉!”      

나는 화면에 떠오른 그 문구를 아연해서 바라보기만 했다. B 씨의 목소리는 무정했다. 

“이거 그냥 참고해서 쓰면 되거든요. 다른 광고 쓰던 거랑 똑같아요.”


이게 어떻게 다른 광고를 쓰는 일과 똑같을 수가 있지? 표정을 숨기지 못하고 있는 나를 흘낏 본 B 씨는 내 마음을 이해한다는 듯이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

“지원 씨 얼굴이 순진해보여서 고민을 좀 했는데. 그래도 우리 에이스니까, 믿어요. 잘 쓰니까.”     


잘 쓰니까. 무엇을? 광고글을. ‘이런’ 광고글을 어떻게 써야 잘 쓸 수 있지? 오히려 잘 쓰면 안 되는 것 아닌가? B 씨의 의자 뒤에 서서 나는 그녀의 정수리를 노려보았다. 어떻게 나한테 이런 걸 시킬 수가? 어떻게 이런 광고를 받을 수가? 미팅을 진행해 계약서를 쓰고 돈을 받았을, 50대 남성인 사장의 얼굴과 총무의 얼굴이 온몸을 휩쓸고 지나갔다. 30대 초반의 여성인 B 씨의 피곤한 얼굴도 곧 뒤따라왔다. “잘 쓰잖아요?” 라고 말하는 그 피곤한 얼굴이 내 입을 틀어막았다. 결국 나는 항의하는 대신, 얌전히 자리로 돌아와 광고글을 썼다.     



놀랍게도 쓰니까 써졌다.     

“최신 레이저 마취 수술을 통해 통증 및 이물감 역시 반나절이면 끝! 바쁜 직장인이어도 문제 없어요!”

“잦은 관계로 늘어난 질, 콤플렉스였다면? 네모여성의원 질 필러, 만족도 100%!”     

도저히 한 글자도 못 쓰겠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자리에 앉자 나는 마치 조립이라도 하는 것처럼 광고 멘트를 끼워가며 글을 써내고 있었다. 나는 내가 만들어 낸 끔찍한 결과물을 다시 읽어보지도 않고 B 씨에게 전송했고, B 씨는 별 말 없이 컨펌 사인을 보냈다. 눈이 마주친 B 씨가 여느 때처럼 “잘 했어요.” 하고 입 모양으로 말했을 때 나는 돌이킬 수 없는 끔찍한 잘못을 저지른 기분이 들었다. 그런데도 내 입은 반사적으로 “감사합니다.”라고 말하고 있었다.     


아침에 키워드를 받아들고 ‘네모여성의원’이 포함된 것을 확인하는 날이면 그날은 하루종일 기분이 좋지 않았다. 다른 키워드로 광고를 쓰는 동안에도 내 관심은 온통 그쪽으로 쏠려 있었다. ‘왜 나만 시키지?’하는 분노도 차올랐다. 네모여성의원의 광고글을 쓰기 위해 홈페이지에 접속하고, 다른 광고 포스팅을 참고할 때마다 눈에 들어오는 모든 단어들이 내 영혼을 공격했다.    

  

“질 필러 잘 하는 곳, 여자의 매력을 한껏 높여주는”

“질 보톡스로 젊어지는 나이! 잃어버린 자신감 되찾자!”

“사랑받는 이유가 궁금하세요? 아무래도 한 살 두 살 나이를 먹다보면……” 

    

질 안쪽에 필러를 주사해 처녀 못지 않게 만들어준다는 ‘질 필러’, 바람 피운 남편도 되돌려 세운다는 ‘이쁜이 수술’, 까맣고 양쪽 크기가 짝짝이인 소음순을 예쁘게 만들어주는 ‘소음순 절제 수술’. 소음순 절제 수술을 받으면 미백 수술은 보너스. 나는 이 일을 하면서 이런 수술들의 존재를 처음 알았다. 문자에도 공해가 있다면, 이런 것이야말로 ‘문자 공해’라고 생각했다. 



'내 글쓰기가 여성에게 가해가 되면 어쩌지?'

가장 끔찍한 사실은 내가 가해자라는 거였다. 나는 다시 매일매일 아르바이트를 그만 두는 상상을 하기 시작했다. 그 때마다 내 발목을 붙잡는 질문은 이것이었다.     

그런데 이게 내가 잘하는 유일한 일이면 어쩌지? 그럼 난 어떻게 해?     


나는 내가 커서 뭔가 대단한 일을 하지는 못해도 적어도 나쁜 일은 하지 않을 거라고 믿었다. ‘남편의 외도가 걱정이라면 질 필러!’ 따위의 문장을 쓸 때마다 인터넷 구석 어딘가에 징그러운 벌레 같은 것을 풀어놓는 기분이 들었다. 내 광고를 읽고 네모여성의원에 방문할지도 모르는 여자들을 생각할 때면 그 벌레는 내 다리를 타고 올랐다. 사실은 나조차도 광고글을 쓰다가 소음순 절제 수술을 유심히 들여다보게 됐다. 남자들은 까맣고 크기가 짝짝이인 여성의 소음순을 ‘불고기’라고 부르며 낄낄댔고, 그 사실을 처음 알았을 때 나는 그런 줄도 몰랐던 내 몸이 신경쓰이기 시작했다. 네모여성의원은 모니터 너머에서 내게 ‘콤플렉스를 고치라’는 메시지를 던지고 있었다.     


글쎄, 지금이라면 고민을 하는 대신 그만둬 버렸을 것이다. 이런 광고까지 받는 건 좀 아니지 않나요? 하고 말해봤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때의 나는 도저히 “잘 썼어요.”하고 말하는 B 씨의 목소리를 저버릴 수가 없었다. 비장한 마음으로 앉아 일부러 네모여성의원의 광고를 엉망으로 써버리겠다고 결심한 적도 여러 번 있었다. 하지만 막상 키보드에 손을 올려놓으면 B 씨의 실망한 얼굴을 마주할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것만 깨닫게 되었다. 모든 일이 끔찍한 와중에도 나는 ‘에이스’ 칭호를 잃고 싶지 않았다.   

   


더이상  ‘대구 코 필러’도, ‘청라 리프팅 시술’도 쓰지 않아도 된다 

이 아르바이트를 그만 둔 이유는 시시했다. 겨울이 되자 사장은 회사 사정이 어려워졌다며 아르바이트생을 매주 한 명씩 자르기 시작했다. 그것도 꼭 금요일 5시 50분 쯤에 불러서 “그동안 수고했고 다음 주부터는 나오지 않아도 된다” 하고 통보하는 식이었다. 

아르바이트생들끼리는 그걸 두고 일부러 금요일 퇴근 직전에 부르는 것이 틀림없다고 수군거렸다. 사장이 성격이 소심하고 쪼잔해서, 아르바이트생을 잘라 놓고 도저히 얼굴을 마주볼 자신이 없는 게 틀림없다고. 그러다 내 차례가 왔다. 금요일 5시 50분, B 씨는 어딘가 죄책감이 깃든 미소를 지으면서 나를 불렀다. 사장이 안에서 기다리고 있으니 들어가보라고 했다. 들어가자 B 씨와 꼭 같은 미소를 지은 사장이 깍지를 끼고, “그동안 수고했고 다음 주부터는 나오지 않아도 된다”고 통보했다.     


우습게도 “아, 이제 더는 네모여성의원 광고 같은 건 쓰지 않아도 되겠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뿐만일까, 더는 ‘대구 코 필러’도, ‘청라 리프팅 시술’도 쓰지 않아도 됐다. 더 이상 나는 여자들의 느슨한 얼굴선, 주름, 나이, 그리고 질을 공격할 필요가 없었다. ‘그만 나오라’는 말을 들었을 때까지만 해도 쿵쿵거리던 심장이 점점 느려졌다.


어서 내가 나가주기를 기다리며 미소를 짓고 있는 사장의 얼굴을 마주 본 순간 준비하지도 않은 말이 저절로 내 입에서 튀어 나왔다.     

“사장님, 그동안 감사한 건 감사한 건데요. 이런 식으로 사람 자르는 거 정말 잘못된 거 아시죠. 저 부르셨을 때부터 그 말씀 하실 거 이미 다 알고 있었는데요, 이거 잘못된 거라는 거 꼭 아셨으면 좋겠어요.”     

마지막 문장에 힘을 주어 말했다. 이거 잘못된 거라는 거 꼭 아셨으면 좋겠어요. 이제 불같이 화를 낼까? 때릴까? 아니면 문을 열고 나가 B 씨를 부를까? 


모든 예상이 빗나갔다. 사장은 여전히 그 미소를 띄우고 내게 사과를 했다.     

“예, 그럼요. 그럼요 알죠. 미안했어요.”     

그건 내가 이 회사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동안 사장에게 들은 첫 존대였다. 

짐을 챙겨 나오는데 다시 한번, 전에도 겪었던 것처럼 사장과 총무, 그리고 B 씨의 피곤한 얼굴이 차례로 눈 앞을 스쳐갔다. 이렇게 말할 수 있었는데. 말해도 됐던 건데. 나는 비로소 “잘 쓰잖아요.”의 마법에서 풀려난 기분이 들었다.      



패스트푸드, 패스트패션에 이어 ‘패스트텍스트’라는 말이 생겨도 이상하진 않다

어쩌면 공연한 과민반응은 아니었을까, 아르바이트에서 잘린 후에도 나는 그런 생각을 자주 했다. 광고잖아. 돈 받고 쓰는 글이잖아. 그게 진짜 ‘내’ 글은 아니잖아. 어차피 블로그에 올라오는 그런 광고를 진짜 믿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어. 지금 생각해보면 나는 이미 알고 있었던 것 같다. 내가 원해서 쓴 것이 아니었다 해도 여성의 몸을 깎아내리고 공격하는 그런 문장들은 내가 써서 인터넷에 풀어놓은 것들이었다. 아무 영향이 없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내가 했다.     



패스트푸드, 패스트패션에 이어 ‘패스트텍스트’라는 말이 생겨도 이상하진 않다. 마치 음식이 그 신성성을 어느 정도 잃은 것처럼, 글도 신성성을 잃었다. 모든 사람이 매일 쓰고, 뿌리고, 또 읽는다. 

“누가 패스트푸드 먹으면서 건강함을 기대해?” 라고 하는 것처럼 “누가 블로그 광고에 진짜 정보가 있다고 믿겠어?” 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패스트푸드 역시 몸에서 소화되는 음식이긴 마찬가지다. 글도 사람의 몸에 스며든다. 그리고 모든 생산자는 그 부분에 대한 각오를 할 필요가 있다.     

내가 블로그 광고회사에서 가장 힘들었던 건 그 알량한 칭찬에 대한 집착을 버릴 수 없다는 것이었다. 내가 써내는 글이 옳지 않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칭찬받는 순간이 좋았다. 칭찬을 기다리고 있다는 죄책감이 나를 가장 힘들게 했다.


나는 아르바이트에서 잘리던 순간 느꼈던 해방감과 안도감을 기억하기로 했다. 그들의 칭찬에는 별다른 의미가 없다는 걸, “잘 쓰네요”가 내가 느끼는 부조리함을 상쇄할 수는 없다는 걸. 아마도 내 다음에 고용되었을 또 다른 아르바이트생 역시 같은 칭찬을 들었을 것이라는 걸 기억하기로 했다. ‘에이스’라는 단어는 얼마나 가벼운가. 상처럼 주어지는 칭찬에 내 감정과 스트레스를 눌러 참는 일은 ‘에이스’가 할 만한 행동은 아니다.


때로 어떤 칭찬은 나를 좀먹는다. 슬금슬금 파고들어와 내 판단을 무디게 한다. 그럴 때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그 칭찬이 나를 규정할 수는 없다고 믿는 것이다. 칭찬을 받는 일은 너무나 달콤하고 중독적이지만 그 칭찬이 나를 힘들게 한다면 그건 정말 ‘나’를 향한 것이 아닐 수 있다. 난 다만 그걸 잊지 않기로 했다.           

   

윤지원 

모든 것을 폴더로 만들어 정리를 해야 직성이 풀립니다. 나 스스로를 그렇게 정리하고 싶은 욕망을 이기지 못해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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