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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은성 Sep 06. 2018

되고 싶은 엄마상이 생기는 도시,
베를린

 베를린에서, 유모차를 둘 장소도 마땅찮은 서울의 버스를 떠올렸다. 

베를린에서 2주 넘게 지내면서 가장 놀랐던 점은 갤러리, 뮤지엄 등 가는 곳곳마다 유모차를 끄는 엄마들이 눈에 띈다는 것이었다. 이동하기 위해 버스나 트램을 탈 때도 유모차와 함께 타고 내리는 모습이 항상 보였다. 버스가 도착해서 일단 문이 열리면 유모차는 앞바퀴를 살짝 들고 뒷문으로 가뿐히 승차한다. 뒷문 바로 앞쪽에 유모차나 커다란 캐리어 등 큰 짐을 동반한 승객을 위한 것으로 추정되는 공간이 있다. 그 자리에는 접이식 의자가 있는데 앉아있던 사람이 일어서면 자동으로 의자가 접히면서 빈 공간이 된다. 유모차가 버스를 타면 그 자리에 앉아있던 사람은 자연스럽게 일어나서 빈 공간을 만들어주고는 다른 자리로 휙 가버린다. 너무 자연스러워서 양보라고 느껴지지 않을 정도다. 뒷문 앞에 서있던 다른 승객이 유모차의 승하차를 도와주는 장면도 종종 보였다. 

베를린이 대중교통이 잘 갖춰져 있다고 들었지만 사실 처음 티켓을 구매할 때는 노선구간, 사용기간, 연령이나 신분 등 선택지가 너무 많아서 (그리고 한국어가 없어서) 어떤 버튼을 눌러야 할지 괴로워하며 자판기 앞에서 거의 한 시간을 보냈다. 표를 파는 곳이 따로 없어서 자판기에서 알아서 구매해야 하고, 표를 검사하는 곳도 없으니 그냥 타고 그냥 내리면 된다. 지하철역으로 내려가면 개표구 없이 바로 승강장이 있고 버스도 앞문이든 뒷문이든 타고 내리는 문이 정해져 있지 않은 것 같았다. 


가끔 사복의 검표원이 다니며 표를 보여달라고 하는데 그때 무임승차인 것으로 밝혀지면 벌금을 내는 시스템이다. 어쨌든 탈 때마다 요금을 계산하지 않아도 되니 커다란 짐이 있거나 유모차를 끌고 버스를 타야 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부담 없이 뒷문으로 승차하고 지정된 자리를 보장받을 수 있는 것이다. 나도 금세 적응하여 자연스럽게 대중교통을 이용하게 되면서 신기했던 장면들이 당연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 서울에서는 유모차를 끌고 버스 타는 엄마를 본 적이 있었던가. 서울 버스는 어떻게 생겼었던가. 유모차를 끌고 버스를 탈 수 있는 구조였던가. 탈 수 있다고 해도 유모차를 세워둘 수 있는 공간이 있었던가. 너무 자연스럽게 타고 내리는 유모차를 보고 있자니 어쩐지 조금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에서 아이가 있는 친구들은 차가 없거나 운전을 못하면 아이를 데리고 외출하는 일이 거의 불가능하다고 했다.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나는 내가 과연 아이를 낳을 결심 같은 것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생각하곤 했다. 그야말로 내 의지로 할 수 있던 모든 일과 아이를 맞바꾸겠다는 거대한 결심이 필요한 일처럼 느껴졌다고 할까. 그 결심 없이는 아이를 제대로 키우지 못할 거라는 두려움이었을 수도 있다. 그렇게 생각하니 유모차를 끌고 갤러리에서 전시를 관람하고 있는 이곳 엄마들의 모습이 꽤나 놀랍게 다가왔다. ‘혼자일 때보다 마음대로 움직이기 어려워진 여성들도 아이를 데리고 가고 싶은 곳을 어렵지 않게 갈 수 있도록 하자’, ‘교통시스템이 허들이 되어서는 안 된다’하는 일종의 사회적인 합의 같은 것이 느껴지는 것이다. 

독일도 한국과 마찬가지로 저출산 문제가 심각한 나라였고 출산율이 겨우 조금씩 오르기까지 10여 년이 넘는 시간이 걸렸다고 한다. 이곳에서도 출산은 여성이 경제활동과 병행하기 어려워 기회비용이 높은 선택지였던 것이다. 언젠가 아이를 키우며 일하는 어떤 엄마의 SNS에서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문장을 본 적이 있다. 당시에는 어렴풋이 그럴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던 그 문장을 이제야 조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실제로 몇 주간 이곳 엄마들의 모습을 관찰하면서 내가 되고 싶은 엄마상이 생겼으니까. 

자전거 뒤에 아이를 태우고 페달을 밟는 엄마. 유모차를 끌고 숲길을 산책하는 엄마. 버스에서 아이와 눈을 맞추며 속삭이는 엄마. 최소한의 교통시스템뿐 아니라 보이지 않는 많은 정책과 노력들이 당연하지 않던 것들을 당연하도록 만들어 왔을 것이고, 그럼에도 해결해야 할 문제가 더 많이 남아있을지 모른다. 개인에게 과중하게 지워진 책임을 온 마을이 함께 나누려는 마음과 태도는 우리가 아직 자연스럽게 익히지 못한 무엇이겠지. 하지만 엄마라는 존재가 자신을 희생하거나 포기하는 것과는 거리가 먼 건강하고 활기 넘치는 여성으로 보일 수 있다는 것이 적어도 나에게는 어떤 희망처럼 느껴진다. '나도 이런 모습의 엄마가 되고 싶다'하는 마음이 들게 하는 것이다. 


디자이너 윤만세입니다. 일에 대해 잘 말하고 싶어 글쓰기를 시작했습니다. 

instagram @yoon1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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