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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은성 May 02. 2018

엄마, 왜 나한테 그렇게 말해?  

내가 신도 아니고. 눈빛만으로 당신의 마음을 알 수는 없다 



“쇼 하네.”

너무 놀라 화들짝 엄마를 쳐다 보려다, 말았다. 나는 이제 엄마의 언어를 해독할 줄 안다.

“보기 좋다는 이야기지? 쇼처럼?”

     

엄마는 그냥 황당하다는 듯이 웃었다. 엄마 집에서 추석을 보내고 우리 집에 돌아온 날 저녁이었다. 현관에서 운동화도 채 벗지 않고 남편과 비쥬를 했다. 잡채와 전을 담은 통을 들고 내 등 뒤에 서서 엄마는 그랬다. “쇼 하네.”

     

예전 같으면 충격 받았겠지만 이제는 내가 하수가 아니지! 언젠가부터 엄마의 언어도 영어나 불어처럼 열심히 독해해 보기로 했다.

‘외국 사람들이나 하는 애정표현을 우리 딸이 내 눈 앞에서 하니 좀 민망하기는 하지만,

음...딱히 싫지는 않아. 영화에서 본 외국인들은 뽀뽀하고 포옹하고 다 하잖아. 그게 멋있긴 하더라. 그나저나 우리 딸이 사위를 많이 사랑하네 지가 더 꽉 껴안네?’




     

어른들의 말은 외국어라고 다짐하고부터, 엄마 말 해독 능력이 꽤 늘었다. 한달 간의 프랑스 여행에서 돌아와 트렁크 가방 무게를 몇 번이나 저울에 재어볼 정도로 조마조마해가며 이고 지고 온 선물들을 보고 엄마는 그랬지

.


우선 양의 긴 털만 모아 귀하게 만든 숄을 보고

“난 쑥색 싫어하는데.” (깊은 초록색이었다)

남편 친척이 운영하는 농장에서 긴히 부탁해 사온 (엄청 무거웠던!) 오리 넓적다리 캔을 보고

“스팸 같은 거야? 난 이런 거 먹을 줄 모르는데? 이거 오리 누린내 나는 거 아니야?”

     

“엄마.”

눈을 똥그랗게 뜨고 불렀다.

“왜!”

엄마는 내가 정색을 할 때마다 긴장한다. 그래서 실제 마음보다 약간 더 무섭게 대답한다.

“선물을 받으니까, 엄마 기분이 어때?

“뭘 기분이 어때.”

“그게 무슨 말이야? 뭘 기분이 어때,가 무슨 의미야. 내 말 듣고 엄마 마음을 곰곰 짚어 봐. 지금, 기분이, 어때? 좋아? 나빠? 짜증나? 행복해? 고마워? 우울해? 슬퍼? 안 받고 싶어?”

“내가 바보야? 고맙지, 당연히!”

“그거야. 그게 엄마 진짜 마음이야.”

     

‘남이 좋은 것을 주면 기분이 좋은 게 당연하고, 설사 기분이 좋지 않더라도 선물이 취향에 맞지 않더라도 ‘고맙다’라고 말하는 게 예의인데 남에게 폐 끼치는 것 싫어하고 예의바른 사람이 왜 선물에는 ‘고맙다’라는 말을 바로 안 하느냐‘고 물었더니 엄마는 답했다.

“몰라. 나도 몰라. 민망하니까 그러지.”

     

민망하면 왜 화를 내지? 하긴 내가 아는 누구도 생일 케이크만 들이대면 “아, 하지마!”하고 화를 내더라. 그게 민망함이란 감정이려나, 인공지능 로봇처럼 더듬더듬 내가 아는 민망한 표정들을 짚어봤다. 그래도 민망함이 뭔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암튼 엄마는 말했다.

“선물 받아도 그렇고...누가 팔짱끼거나 ‘언니는 참 좋은 사람이에요’하면 민망해. 그럴 때 뭐라 해야 할지를 모르겠어.”

     

“엄마. 외국어라고 생각하고 배워. 선물을 준비하면서 그 사람이 엄마를 생각했을 시간을, 엄마가 무슨 색 좋아할지 어떤 냄새를 좋아할지 계속 고민하고 궁리해서 머플러와 향수를 골라온 마음을. 그게 사랑이잖아. 만약에 누가 엄마를 좋은 사람이라고 하면 자동으로 대답해. ‘고마워. 너도 정말 좋은 사람이야’라고 해. 외워서 하면 편하잖아.”

     

그날 이후로 엄마는 내가 선물을 주면 무조건 ‘고마워’부터 한다. 싫은 떽떽거리는 딸이 귀찮았을지도. 엄마는 똑똑한 사람이다. 미안하다는 말은 또 엄청 잘 한다. 예의를 모르는 사람이 아니란 거다. 그냥...뭔가 받으면 “오, 아름다운 선물이구나. 이런 걸 주다니 너는 좋은 사람이야. 네 선물에 정말 행복해졌단다.”(외국인 친구들에게서 내가 들어 온 말을 한국어로 바꾼 거다)라고 답하는 것을 한번도 배운 적이 없어서일 거다.

     

가족드라마에 시어른들도 며느리가 뭘 사오면 “늬들이 돈이 어딨다고. 얘! 이럴 돈 모아서 너희 집 사는 데 보태라.”고 말들 하니까. 그렇게 퉁퉁거리는 말이, 아랫사람을 걱정해주는 말이 더 어른다운 거라고 배워 왔을지도 모른다. 고마우면 고맙다고 미안하면 미안하다고 화가 나면 화난다고 슬프면 슬프다고 말하는 것을 연습해 보지 않아서, 괜히 민망하고 그러면 정말 이상한 말을 내뱉게 된다.

     

뭘 이런 걸 사왔어

엄한데 돈 쓰지 마라

생일케이크는 하지마, 제발 그건 하지 마(물어보니 싫은 게 아니고 민망하단다)

빨리 먹고 가자(생일 파티 때 횟집에서 내 동생이 한 말)

무표정(우리 아빠가 내 선물 받고 한 것)

텔레비전을 켠다(내 동생이 생일 케이크 촛불 끄자마자 하는 행동!!!!!!)




딸들이여 이 책을 읽으시오. 품고 다니며 세번째 읽고 있습니다. 모든 문장에 줄을 쳤다! 


  

 


가끔 카톡으로 엄마의 감정을 물어본다. “몸은 어때?” 건강에 대한 질문 대신에 “엄마 요즘 마음이 어때요?”하고 묻는다. 엄마 어릴 땐 다들 먹고 살기 바빠서 정확한 말을 따로 배운 적이 없다고 말했으니까. 엄마의 엄마가 시부모 모시고 장사 하느라 너무 바빠서 막내딸인 자기에게까지 사랑을 전해올 시간이 없어서 사춘기 때 ‘나는 너무 외롭다. 나는 엄마가 없는 것 같다. 내가 엄마가 되면 우리 딸이 어릴 때 많이 사랑해 줘야지’라고 일기를 적었다고 했으니까, 딸이 자라서 엄마의 엄마가 되어줄 수도 있는 거니까.

     

“엄마, 내가 신도 아니고 엄마가 말을 제대로 안 하면 엄마 마음을 내가 어떻게 알아? 엄마 기분이 어떤지 상태가 어떤지 원하는 게 뭔지 구체적으로 말을 해야 하지.”라는 말을 꼬옥 누르고 도닥도닥 카톡을 보낸다. 첫사랑이랑 헤어졌을 때, 자다가 돌연 눈물이 터져서 엄마 방에 베개들고 갔을 때 엄마가 안아줬던 걸 기억하면서. 다정한 말들을 써 보내려고 한다.

     

요즘은 엄마랑 만나면 비쥬를 한다. 비쥬는 볼 뽀뽀. 말 그대로다. 상대와 양볼을 한번씩 맞대며 작게 츄, 혹은 쵸 소리를 내면 된다. 지금 허공에 해 보세요. 순간, 기분이 톡, 하고 피어올라요. 아주 친한 사람이면 볼에 입술을 대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아, 우리는 이만큼 해도 되는 친한 사이구나’ 싶어 기분이 좋아진다



아직 엄마랑 나는 손을 잡고 걷는 건 어색해서 못 한다. 둘이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어서. 서양 남자와 결혼한 딸 덕에 엄마는 단계를 훅 건너뛴 사랑 표현을 하면서 또 민망해서, 괜한 소리를 한다.

“나한테 냄새 나면 어떡해? 나 프랑스 가면 냄새 나는 사람이랑도 비쥬해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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