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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은성 May 11. 2018

고구마 인간의 고구마 언어

돌아보니 늘 연인들에게 칭찬을 ‘외주’로 맡기고 살았던 것 같다.

그가 나를 좋아한다는 걸 알고 나자, 방정맞게도 즉시 나는 물었다.

“제가 좋으세요? 왜요?”

고구마 인간은 고구마 언어를 썼다.

“음...편하고요...편해요...”

그럴 줄 알았어. 어쩐지 물어보기 싫었지.


“내가 의자예요, 신발이에요, 엄마예요? 하고 많은 매력 중에 편한 것밖에 안 보여요? 못해, 못해, 이렇게 못하나 말을. 예쁜 곳이 이렇게 수두룩한데, 눈은 어디에 달고 다니지?”

이런 말은 한번 시작하면 쌀자루 터지듯 할까 봐 혀 속에 말아 넣었다. 죄 없는 맥주만 쭉쭉. 대구 출신이라는 그가 소개팅 첫날 한 대구 통닭에 대한 찬사만큼 나를 찬양했다면, 화는 금세 가라앉았을 거다.      

특별하다, 남다르다, 한번 접하면 절대 못 잊는다, 계속 먹고(보고) 싶다, 자꾸 생각난다, 개성이 남다르다, 이 도시의 자랑이다, 어딘가에 자랑하고 싶다!      


고구마 씨. 잘 봐! 위 문장들에다가 주어만 살짝 바꿔주면 된다고.

  



"너는 참 편해"라는 말을 싫어하는 이유

언젠가 국적이 다른 연인을 사귀는 후배에게 물은 적이 있다.

“싸울 때 답답하지 않아? 깊은 속내를 전달하기는 좀 어렵잖아.”

후배는 수십 번은 답해 본 질문이라는 듯 담담했다.

“언니, 한국인도 말 안 통하는 사람은 안 통해요. 어차피 사람은 서로 통하는 데까지만 통해요.”

그래, 네 말이 옳다. 이 쪽은 한국인인데 한국말을 못하네. 따라해 볼래요.

가갸거겨고교구규그기 나냐너녀노뇨누뉴느니 라랴러려로료루류르리 파퍄퍼펴포표푸퓨프피 하햐허혀호효후휴흐히. 집에 돌아와 술을 더 마셨지만 제길, 졸린데 잠도 오지 않았다.

  

왜 싫은지 이유를 대기도 싫도록, 나는 ‘네가 참 편해’라는 말을 싫어한다. 나의 진저리 난리난리에 내 친구들 중 가장 예쁜 친구 하나가 카톡을 보냈다.

“우리 남편도 나에게 예쁘다는 말 거의 한 적 없는데? 남자들의 언어 세계는 단순하기 때문에, 난 그들의 디테일엔 신경 쓰지 않음.”

그리고는 못도 박았다.

“예쁘다는 말은 미용실 선생님이나 구두 가게 아저씨로부터 듣는 것만으로 충분해.”      


속이 답답하면, 답이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말이 길어진다. 계속 물어봤다.

“나는 누가 좋으면 그 사람이 좋은 이유를 100가지 정도 이야기하는데? 어떻게 좋은데 이유가 없어? 나도 상대에게 그런 걸 원하지. 내가 왜 좋은지 구체적으로 디테일하게 말해주기를. 나는 두 번 세 번 듣고 싶어서 다시 말해달라고 요구하기도 하는데?”


친구는 까르르 웃더니 또 말했다.

“야, 너 진짜 별나다. 바랄 걸 바래라.”


친구의 말은 다음과 같이 요약되었다.      

“표현할 줄 모르니 돈이라도, 돈이라도 있으면 정말 다행, 돈도 없는 게 표현도 못하면 오마이갓, 가난한데 표현 잘 하면 꾼 같지 않아? 내 남편이 딴 데 가서도 표현 잘하면 정말 싫어, 습관 되면 회사 여직원에게도 “오늘 화장 예쁘네요. 그 치마 정말 어울려요” 이럴 것 아냐. 그러니까 현실에 있는 ‘멀쩡한 남자’는 여자에게 예쁘다는 표현을 잘 못하는 남자지.”      


친구의 말은 랩퍼처럼 빠르고 단호했고 나는 패배를 인정해야 했다. 친구 기준에서 내가 ‘멀쩡한 남자’를 만난 적이 없었거든. 인권단체 활동가나 영화를 단 한 편 개봉한 영화감독은 적어도 친구가 보기에 ‘직업’은 아니니까.


 

칭찬 게이지가 떨어지지 않도록 주의할 것

왜 나는 칭찬을 좋아할까 고민해 봤다. 누가 나의 좋은 점에 대해 짚어주면 당장 반해버린다.


나는 가만히 두면 시무룩해지는 타입이다. 잘하잖아, 어머 멋져라, 볼수록 예쁘네, 란 말을 들으면 놀랄 만큼 흥겨워지는 사람이다. 거의 노력을 하지 않아도 자존감 높고 자신감 넘치는 사람이 있겠지만, 불행히도 나는 아니다.

그리하여, 늘 칭찬 게이지가 떨어지지 않도록 유의할 필요가 있다. 누구나 그렇지 않은가? 칭찬은 기쁘다. 욕을 먹는 것보다 훨씬 좋다. 아낄 필요가 없다. 다들 알지 않나. 평소에 칭찬을 많이 적립해두면, 밖에서 듣는 욕도 거뜬히 견딜 수 있다.

 “더 해봐. 더 해봐. 내 안에 칭찬 배터리 있거든!” 하며 버틸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아침마다 철분제나 칼슘제를 삼키듯, 여러 색채의 칭찬을 장복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 왔다.  



돌아보니 늘 연인들에게 칭찬을 ‘외주’로 맡기고 살았던 것 같다.
 


나를 보면 좋은 비유와 상징이 샘물처럼 퐁퐁 솟아오르는 타입에게만 미소가 지어졌다. 말의 달란트를 받은 사람들, 자연스레 말이 넘쳐 흐르는 사람들.

"네가 웃으면 눈코입이 사라지고 ‘웃음’이란 단어만 남아버리는 것 같아."

"너는 내가 아는 사람 중 가장 취향이 좋은 사람."

"청보라색을 입으면 눈이 부시다."

"네가 맥주를 세 병 마시고 나면 네 주위 사람들은 모두 너에게 반하고 말지!"


한 시인은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을 먹었다”고 말했지만. 그러고 보니 나는 당신이 준 칭찬을 먹고 그럭저럭 번듯한 척을 하며 살았다. 오늘의 칭찬에 기대어 내 고료 떼먹은 놈에 대한 원한을, 만원지하철의 악취를 견뎠다.

불편한 세계를 견디는 방법은 다감한 말들을 낮밤으로 곱씹는 것 뿐. 그 다정함에 젖을 때면, 가끔은 내가 평범한 미인이 아니라 특별하게 생긴 중간 정도의 외모인 게 더 좋은 것조차 같았다. 음...물론 그건 제정신이 아닌 거지만, 사랑은 원래 제정신이 아닌 거니까.

  

하지만 현실은 춥다. 적어도 한반도에서 여자에게 기름 두른 칭찬을 하는 것은 좋은 풍습으로 여겨지지 않고, 한국이 싫어도 비극적이게도 나는 이민갈 만큼 영어를 잘하진 않는다. 풍속이 개선되길 기다리는 것보다는 ‘목요일 칭찬 모임’을 하나 만드는 게 가장 쉽고 빠른 방법일 성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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