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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은성 May 12. 2018

영화 대사 같던 그 말

이토록 다정한 농담을 건네는 공항 직원은 한번도 만난 적이 없었다.

“왓? 왓? 노 프라블럼. 마이 패스포트 이즈 노 프라블럼.”

내가 그렇게 말했어. 얼굴이 벌개져서는 한 쪽 입술산을 야비하게 올리고 말이야. 내 버릇 알지? 비열하게 보이고 싶을 때마다 그렇게 하잖아. 영화 속 악당을 흉내내곤 하잖아. 그도 그럴 것이 공항 직원이 도장 찍어주는 것말고 별다른 ‘말’을 하지는 않잖아 .그게 정상이잖아, 아냐?

그래서, 상대가 괜한 시비를 걸기 전에 이쪽에서 더 세게 나가야겠다, 그런 심산이었겠지 뭐. 한국에서 크고 작은 문제가 생길 때마다 명치에 힘 주고 늘상 하던 습관이니 그다지 힘이 들 건 없었지.      


그런데...그만 울음이 터질 것 같았어. ‘얼른 방에 가서 충분히 울고 싶다’ 생각했어. 그가 말했거든. 잘못 알아듣고 길길이 날뛸 준비를 하는 나를 향해 빙긋이 웃으면서. “5가 다섯 개야. 너는 행운의 사람이구나.”라고. 아...처음에 나에게 그가 한 말은 그거였어. 너의 비자 번호에 5가 우연히 5개 있으니, 그 우연은 행운이라고. 너는 행운을 지닌 사람이라고.


누가 나에게 이런 이상하고 다정한 말을 해 주었었는지 하나도 기억이 나질 않았어. 태어나서 처음 들어본 말인 것 같았지. 지금도, 떠올리자니 그냥 꿈결 같아.     

 

미얀마는 조그만 주제에 반드시 비자를 받아야만 갈 수 있는 웃기는 나라야. 이상한 나라에 더 이상한 사람들이다, 그런 생각이 들었을까. 떠오르네. 뭉근하게 더웠던 공항, 보드라운 공기 결을 품어 풍성하게 부푼 치마를 입은 남자들, 서로의 온몸을 오래도록 안고 있는 가족들, 상대의 웃는 모양을 눈동자에 새겨두려 바라보고 있는 연인, 그리고 저 멀리서 “무슨 일이야?” 입모양을 벙긋거리던 나의 친구 J.     


어서 친구에게 달려가고 싶었어. 한국 말을 하는 나의 친구. 이런 이상하고 다정한 말들을 좀처럼 나누지 않는 나라에서 온 너는 나를 이해할 것 같아서. 이야기를 전했고. 너는 아름다운 이야기를 들으면 되게 이상한 소리를 내는 버릇이 있잖아. 어디가 아픈 것처럼, 으으으 하고. 환갑이 되어도 지을 것 같은 너 특유의, 양쪽 눈끝을 내려긋는 표정을 지으며.


그래. 우리는 마음이 저릿해도 언어로 잘 표현하지 못하는 나라에서 왔다. 야근을 마치고 나면 기운이 없어서 잘자라는 인사도 아주 쉽게 생략해 버리는 일상을 살다가 문득 비행기를 탔다. “너는 5가 4개밖에 없네. 너는 나보다 덜 행운이다.” 나는 또 이런 멋대가리 없는 말이나 했지, 거의 울 것 같은 널 웃기려고.


그 말이 뭐라고 여행 내내 붙들고 있었어. 나는 언어의 고아다, 그러니까 처음 받은 언어의 사랑을 기억하자, 내가 보답하면 친절한 양부모가 나를 데려갈 수도 있으니, 일상으로 돌아가면 최선을 다해 사랑스러운 말만 하자고 다짐했었어.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생각했다. 알지, 여행을 갔다가 서울로 돌아오는 비행기에서는 표정도 달라지는 거. 나답지 않게 물러졌던(낭만적이 된 거라고 여겼었지만) 태도를 추스리는 거. 사소한 환대에도 커다란 꽃처럼 웃던 얼굴을 반듯하게 닫고 다듬는 거. 생각했어. 비자번호를 검토하던 공항 직원이 남달리 스윗한 사람일지도 모른다고. 아니면 미얀마 관광청에서 커미션을 받는 걸지도 모른다고. 동아시아에서 매일 매일 후려치는 말만 듣던 여성이 오면 달콤한 말을 건네라고, 그러면 미얀마에 다시 오고 싶어질 거라고.. 그런 재미없는 상상을 해보려고 노력했었지만.


7년이 지난 지금도 종종 그 순간을 떠올린다.


미얀마 여행은 그렇게 온화한 문장으로 가득했었어. 젠장, 행운이라는 단어는 행운의 편지, 같은 거 말고는 들어본 적도 없었어! '넌 운이 좋다'는 표현은 반은 칭찬이고 반은 험담이잖아? 누군가 성공했을 때 그냥 운이 좋았다고 겸손해할때나 쓰잖아. 사람을 대상으로, 행운의 사람이라는 표현은 들어본 적이 없었는데. 미얀마 여행에서는 그런 말을 자주 들었어. 좁은 탑을 기어오르듯 걸어서 마침내 휴, 하고 숨을 내쉴 때 눈앞에 펼쳐지는 2천년의 탑, 탑, 탑, 그리고 탑의 흔적들. 그 영광의 흔적들을 눈에 담으며 친구는 난생처음 숨을 쉬어보는 것처럼 말했지. 아.름.답.다.고. 정확히 그렇게 말했어. "아름답다."


어쩌면 그런 말을, 오글거린다고, 낯뜨겁다고, 민망하다고, 뭔가 좀 더빙 대사 같다고 꺼려했지만 실은, 그런 말을 쓸 만큼 감정이 고조되지 못한 나날들을 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어. 정말정말 그 단어가 아니면 안 될 것 같은 정도의 감정과 감각에 다다르면 그래서 외치고 싶어지면, 나도 모르게 표현하게 된다고. 그러니까 좋은 것을 더 많이 보고 좋은 사람을 더 많이 만나야 한다고, 우리의 언어를 위해서. 그렇게 생각했었지.


우리 함께 꼭 다시 오자고 친구와 손가락을 걸었지만 어쩐 일인지 되돌아가지 못했다. 바가지를 쓰고 산 후드르르한 바지를 맞추어 입고 3천원에 한 마리 거대 생선구이를 나누어 먹으며 미얀마 말들 속에 머물자고, 그러자고 약속했었지만, 사실은 무서워서였을지도 몰라. 이제는 그런 다정한 말에는 마음이 녹지 않는 지루한 사람이 되어버렸을까봐, 그 사실을 차갑게 확인하는 게 두려운 것일지도.      


서울에서는 내가 나에게, 친구들에게 그런 말을 해주려고 노력한다. 친구가 좋은 운을 만날 때마다, 아니 좋은 운을 만나려고 노력할 때마다 최선을 다해 다정한 말을 건넨다. 오늘 오후엔 낯선 나라에 일자리를 구하러 가는 친구에게 문자 메시지를 보냈어. “너는 멋지다. 그걸 누가 알지? 내가 잘 알고 있어. 세상에 고래고래 외칠 수도 있어. 내 친구는 두려움에 휩싸이고 긴장에 떨 때에도 빛나는 사람이라고.” 그럴 때는 타고난 민망함을 떨치려 주문을 걸곤 해. 나는 시리야. 나는 사실 휴먼이 아니야. 나는 아이폰 속에 잠든 시리야.


사랑합니다 고객님 말고, 함께해요 여러분 말고, 당신을 응원합니다 말고.

너는 나의 자랑이다, 널 만난 건 내 인생 최고의 행운이야, 네가 길에서 쓸모없는 물건을 판대도 사람들은 너를 사랑할 거야, 같은 이상하고 웃기고 창의적인 다정한 말들 말이야.


죽지 못해 사는 거지 뭐, 먹고살기 빡빡하다, 좋은 게 좋은 거죠, 척하면 척이지 같은 시시한 말들 사이에서 너무 지치면 미얀마에 꼭 갈 거야. 나에게 또 행운이 깃들어서, 공항 직원이 또 같은 말을 한다면 최선을 다해 꽃처럼 웃어야지. 당황하지 말고 '고마워요'라고 말하자고 매일 연습한다. 그런 날을 상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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