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에 관한 책을 쓰는 아이러니에 대하여 <2>

책쓰기코칭스쿨에 수백만원을 내고 너만의 고유성을 잃은 K를 위해 쓰겠다

by 소은성

글쓰기에 관한 글을 왜 현재 글을 쓰는 사람들이 쓰는가.

그들 외에는 아무도 써주지 않기 때문이다.

글쓰는 사람들의 (언제나처럼) 씁쓸한 운명이다.


이런 생각을 하며 하염없이 작법서들의 책장을 넘기고 있었다.

“봐요. 하 선배. 이 유명한 소설가도 이 잘나가는 칼럼니스트도 작법서를 냈어요. 다들 쟁쟁하죠. 나 따위가 쓴 책을 누가 사줄까요.”


선배는 언제나처럼 진지하게 들어주었다. 하 선배는 편집자답게 내가 이 앞에서 원고지 7매 분량으로 주절거린 마음을 몇 문장으로 요약했다.

“어렵게 느끼는 건 정말 당연해. 세상에 이미 글쓰기 책이 많은데, ‘내가 뭐라고’란 생각이 들잖아.

게다가.....글쓰기 책이면, 그 책의 원고 자체가 최고로 훌륭해야 할 것 같잖아!”



선배는 조언했다.

“왜 글쓰기에 대해 쓰고 싶은지, 누가 읽어주었으면 좋겠는지 생각해 보는 게 먼저야. 서문부터 써 보란 이야기야. (쓸 이유가 충분하면, 너는 누가 말려도 쓰잖아)."


괄호안의 말은 안 했지만, 영혼으로 들었다. 마음이 뜨거워졌다.


아니, 세상에. 누가 이렇게 영특한 선배를 두었지!

나는 누구에게 내 메시지가 가 닿기를 바라는지가 너무나도 중요한 인간이다. 돈이고 명예고 권력이고, 두 번째다. 소통이 가장 중요하다. 누군가 나로 인해 아주 조금, 1센티미터 정도라도 변화한다면 즐거워진다. 그러니 수신자가 간절한 질문을 던지면, 내 메시지를 필요로 하면! 맨발로 달려가서 상체를 그에게 과하게 수그리고 눈동자를 굴리며 전하고야 만다. 부담스러우니, 선생님 이제 좀 그만 하라고 할 때까지.


스스로가 어떤 사람인지 아는 것은, 글쓰기에서 가장 중요하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내가 누구인지가 글쓰기의 방향이 된다.


화가 많은가? 사소한 것에 예민한가? 택시를 탈 적마다 분노하는가?

칼럼을 쓰세요. 당신은 이미 칼럼 주제를 많이 가지고 있어요. 세상에 주장하세요.

나를 화나게 하는 짓들을 그만두어라!


맨날 울어요? 쓰레기봉지를 뒤지는 고양이를 보고 눈물 지어요? 에세이를 쓰세요.




나는 ‘그래요, 내가 그런 사람’이라고 인정하고 나서 작법서를 책장으로 옮겨 두었다.


그리고는, 내 이야기를 들어주었으면 하는 사람들을 하나씩,

윤동주 시인이 하늘의 별 헤아리듯 세기 시작했다.


별과 별 사이의 선을 긋듯이,

그 사람들과 연결된 내 감정을 떠올렸다.


첫 번째 감정은 분노였다. 나는 ‘여행작가 자격증’을 주는 협회라던가, ‘가입해서 일정기간 교육을 받으면 당신의 이름으로 된 책을 발간하게 해준다’고 광고하는 아카데미를 ‘극혐’한다. 얼마나 싫어하냐면, 여행작가 자격증을 준다고 광고하는 사람의 책을 내가 우연히 산 것을 알고 이름을 빨간 펜으로 그어놓았으며, ‘책 내게 해 준다’는 곳에서 수백만원을 냈다는 사람을 수강생으로 만나 그의 이야기를 한참 들어준 뒤, 집에 가는 길에 맥주를 두 캔이나 마셨다.


분노꺼리는 너무 많으니(여행 글 이야기는 다음에 풀고) 우선 후자에 집중해 보겠다.


수강생 K에 따르면 ‘책쓰기 코칭스쿨’에는 기수도 있다고 했다. 강좌가 많아서 원장의 유명세에 따라 골라야 한다고 했다. 수업료는 눈을 비비고 다시 봐야 될 정도였다. 수업료를 내고 과정을 이수하면 ‘죽기전에 꼭 해야 할 버킷리스트 50가지’ 같은 종류의 책에 몇 꼭지의 원고를 넣어 공저자가 된다고 했다.

언젠가 공저자가 8명 정도인 책을 보고 기함한 적이 있다. 아, 그게 그런 책이었나 싶었다. 대체 이걸 누가 사는가. 같은 아카데미의 수강생들끼리 사준다고 했다. 이건, 다단계인가, 사이비 종교집단인가.


K는 자유기고가 입문반 수업 첫날 30분 일찍 와서 맨 앞자리에 앉았다. 수업을 듣는데, 각이 잡힌 군인같은 모습이었다. 모든 내용을 정자로 필기하며 쉬는 시간에도 수다를 떨지 않았다.

수업을 마친 뒤 데스크로 찾아와 고민을 털어놓았다. 요약하자면, 책쓰기 코칭스쿨에서 책을 발행까지 했는데, 인생에 별 변화가 생기지 않았고, 그러면 글을 더 잘 쓰면 뭔가 될 일인가, 뭔가 먹고 살 것을 찾을 수 있을까‘해서 왔다는 것이었다. 마지막으로 강사의 마음에 바위 하나를 던지고 갔다.

“선생님만 믿을게요! 저 좀 살려 주세요. 친구와 동업하던 것도 이제 정리하고 있거든요.”

나는 유니세프가 된 것 같았다.


‘제발! 계속하세요. 정리하지 마세요!’ 마음의 소리를 눌러놓고 미소만 보냈다.

“잘 먹고살게 되지는 않겠지만, 글쓰기를 연습하게 되면 마음을 정리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될 거에요. 자신의 마음에 100% 솔직하게 써보세요. 지금 그 불안한 마음도요. 글로 세상을 구할 것도 아니고, 나만 구하면 되는데요.”


물론 그가 바란 건 ‘어떻게 하면 글쓰기 스킬을 급성장시켜 자유기고가로 데뷔할 수 있을지’였으니, 마음이 어저구 저저구 하는 소리는 잘 들리지 않았을 테다. 그 강의는 일종의 기자 스쿨이었으므로, 나는 이미 첫만남에서 그에게 기자의 소질이 없음을 간파했다. (안타깝지만 진실이었다)

하지만 과제를 좀더 기다려 보기로 했다. 그는 언제나 1등으로 과제를 올렸다. 여행기사든 에세이든 취재기사든, 언제나 가장 먼저 과제를 내고 코멘트를 기다렸다.


지켜보다가 K를 불렀다. “혹시 책쓰기 코칭 스쿨에서 글쓰기 방식을 배웠나요?” 그의 모든 과제는, 첨삭으로 수정이 되지 않을 정도로 꽉 막혀 있었다. 문장이 서툴고 어휘가 단조롭고 구성이 빈약한 것은, 수정하면 나아질 수 있다. 하지만 그의 과제는 마치 AI가 작성한 것처럼, 틀에 박혀 있었다. 늘 같은 패턴, 늘 같은 구성, 늘 같은 분량, 늘 같은 감성. 이해는 되었습니다. 글을 한 번도 써보지 않은 수강생이 일정기간 내에 책원고를 제출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일괄적인 글 작성 스킬을 강요할 필요가 있었을 것이다.


수강생 스스로도 ‘이미 틀에 박혀버린’ 자신의 글쓰기 방식에 회의를 느끼고, 나아지려고 발버둥을 치고 있었다. “다른 수강생들이 창의적 표현을 쓸 때, 자신만의 독특한 감성을 자유자재로 표출할 때 너무 부러워요. 그런데 제가 그렇게 하려고 들면 뭔가 잘못을 하는 느낌이 들어요. 정해진 틀 안에 정해진 문장 개수를 채워 넣는 식으로 교육받았거든요. 기계처럼요....”


좋은 글을 써야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공저자들의 글 톤을 맞춰야 하니, 자신의 개성을 최대한 가려야 했을 것이다. 글쓸 때마다, 자신을 최대한 감추어야 했을 것이다. 할 말을 하지 말아야 했을 것이다. 뻔하고 당연한 소리만 써야 했을 것이다. 그런 책이니까.


책을 출간해서, 저자로 들어간 책을 들고 기업체 강사가 되는 길을 찾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했다. 그러니, 어떤 글이냐가 아니라 책이 나오는 게 중요했을 것이다. 목적이 불순한 글쓰기다. 나는 그 과정에서 상처받았을 그의 마음이 안쓰러웠다. 성공을 위해 희생되었을 그의 ‘진짜 자아’가 걱정되었다. 그의 모든 고유성은 스파르타식 글쓰기 교육에 매몰되었다. 다시, 살려낼 수 있을까?


그의 다크서클은 강의가 진행될 때마다, 점차 진해져갔다. 밤을 세워 책을 읽는다고 했다. 필사도 해보고, 좋은 글의 강점을 따라해 보려고 하는데도 변화하지 않는 자신에게 화가 난다고 했다. 한번 망가진 글쓰기

습관은 다시 되살리기가 그리 만만치 않다. 마음이 너무 힘든지 몇번 결석을 했다. 그럼에도, 10강 끝까지 완료해 준 것에 여전히 감사하는 마음이다.


자유기고가 입문반 수업을 하지 않는 지금도 종종 떠올리는 수강생이다. 꼭 글이 아니더라도, 자신을 표현할 수단 하나를 찾았기를, 그래서 자신만의 고유한 행복을 찾았기를 바래본다.


그리고,

K를 통해 내가 글쓰기에 관한 글을 쓸 이유를 하나 얻었다.


책을 잘 써서 그에게 택배로 보내고 싶다.

이제는 그가 다시 '나의 글'을 써볼 용기를 내고 있다면 좋겠다.

성공을 목적으로 두지 않은, 자기표현으로서의 글을 쓰기 위한 가이드로서, 보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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