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쓴다고 세상이 바뀌냐'는 말에 대하여

듀나게시판과 싸이 다이어리에 글을 올리다 기자가 되었다

by 소은성

자신을 견딜 수 없으면, 맥주 캔을 땄다. 스스로를 견디지 못할 때, 어떤 사람들은 친구에게 한잔 하자고 불러낸다. (부럽다) 자신이 얼마나 못난이고, 세상이 얼마나 더러운지 토로하며 술잔을 기울일테다. 그런데 나는 그러지 못했다. 술을 마시면 마음상태가 왜 이런지 자세하게 설명해야 할텐데, 그러기 싫었다.


분명 정성스럽게 설명할테고 분명 이해받고자 할테고, 온전한 위로가 돌아오지 않으면 더 참담한 기분으로 집에 돌아와야 할텐데, 그건 상상만 해도 공포스러운 일이었다. 누구도 만나고 싶지 않았다.


그렇다면, 맥주 캔을 땄다. 가장 간편한 위로였다. 어떤 날은 마셔도 취하지를 않았다.

점점 정신이 또렷해졌다. 그러면 희한하게도 뭔가를 쓰고 싶어졌다.



술값을 아껴주고 간을 보호해 준 글쓰기

회사생활을 하던 때에 특히 많이 썼다. 나는 많은 것을 견디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주로, 뭐라도 쓰지 않으면 도무지 견딜 수가 없을 때. 파티션 아래에서 '보고서에 집중한 엄숙한 표정'을 짓고는 '인생은 지옥'이라고 썼다. 어떤 날은 싸이월드 다이어리에 어떤 날은 네이버 블로그에 어떤 날은 <듀나의 영화 게시판>에 썼다.


소심한 마음으로 짤막한 픽션을 써서 '7분 소설'이라는 타이틀을 달았다. "이게 뭐....시간 들여 읽을 글은 아니고 7분 동안 읽으세요." 연애의 씁쓸한 사정이나 사소한 질투처럼, 친구에게 굳이 말하고 싶지 않은 기분을 픽션으로 만들어 올렸다. 누가 읽거나 말거나, 업로드 버튼을 누르고 나면 신이 났다.


누가 들어주기를 굳이 바라진 않았지만, 가상의 청자라도 있어야 했다. 아무도 듣지 않는 건 너무 외로우니까. 어떤 날은 싸이월드의 포도알이 어떤 날은 당신의 일기에 큰 위로를 받았다는 비밀댓글이 돌아왔다. 특별히 무언가를 받지는 않았지만, 미세한 신호를 받은 느낌이었다. '여기, 너와 비슷한 사람이 있어, 혼자가 아니다' '7분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인물을 그린 스케치를 받았을 때는 떨릴 정도로 감격스러웠다. 등단을 하지 않은 사람에게도, 팬이 존재할 수 있구나. 세상에는 목적없이 따뜻한 사람이 참 많구나. 아, 사는 거 너무 재밌네!





"혹시 내가 글쓰기에 재능이 있나?"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지만, 기자나 작가를 꿈꾸지 않았다. 학과에는 백일장 수상으로 입학을 하거나, 이미 소설을 발표한 천재들이 드글드글했다. 영화잡지를 허리께까지 모으고 가장 좋은 펜으로 밑줄을 치며 외우듯 읽으면서도 단 한번도 나는 글쓰는 직업을 가지고 싶다고 말하지 않았다.


졸업을 하고, 안정적인 직장에 들어가서, 지옥을 맛보고 그 지옥을 견디기 위해 인터넷 게시판에 글을 올리다가 그제서야 깨달았다. "어머, 나 글쓰기 너무 좋아하잖아...."


사설 아카데미에서 10강 정도의 글쓰기 교육을 받았다. 5번은 결석을 했다. 선생님의 코멘트도 무섭고, 어쩐지 마음이 무거워서 가지 않았다. 그래도 몇개의 과제로 포트폴리오가 씨앗이 되어, 프리랜서 기자가 되었다. 좋아하는 힘으로, 엄청난 공포를 밀어올리는 작은 씨앗이 된 기분이었다. 꽁꽁 언 흙을 머리로 밀어올리고야 마는 봄씨앗처럼. 흙을 온몸에 잔뜩 묻히고. 낑낑.




왜 그렇게 좋았을까, 글쓰기가? 가장 좋았던 건 안전함이었다. 글은 나를 비난하지 않았다. “남들은 다 잘 견디는데 넌 참 이상하다”고 말하지 않았다. 내가 만들어낸 작고 공고한 진공 세계. 그 안에서 마음껏 유영하는 시간이 아마 치유였을 것이다. 아무것도 바라지 않으며 나의 무언가를 많이 바꿔놓지도 않는, 아주 안전한 치유.


글을 마무리하고나면, 세상은 아무 것도 바뀌지 않았는데 나는 조금 바뀌어 있었다. 타자를 칠 수록, 열 손가락이 마음에 얼기설기 돋은 뾰족한 가시를 꼭꼭 눌러버리는 느낌이었다. 가시뿌리를 뽑을 순 없었지만, 가시의 날카로움이 내 마음을 더 이상 찌르지는 않았다. 누른 채로 궁글려져 거기 머물렀다. 내 말을 들어주는 사람의 마음을 찌를 걱정 없이, 허공 중에 내 가시같은 말들이 날아다닐 걱정 없이.


그렇게 나는 누그러졌다.




울고 싶거나

욕을 하고 싶거나

스스로를 미워하게 되거나

자신이 부끄러워서 잠못이룰 때


글을 쓰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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