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리나케 달려가서 쓴 글의 더없는 생생함
‘달려가서 쓴’ 글은 어딘가 다르다. 나는 종종 글을 쓰러, 문자 그대로 달려간다. 지금, 당장, 감정과 생각을 문장으로 남겨두고 싶어서 랩탑을 켜곤 한다. 그리고는 아무말이나 적는다. 아무말이라는 점이 중요하다. ‘아무말’이나 일단 쓰고 생각을 정리하기!
팟캐스트 <영혼의 노숙자> 에피에서 유니콘님이 일기를 쓸 때 “씨발”부터 쓰고 나면 자연스레 글이 풀려나온다고 한 것을 듣고 깔깔 웃고 공감했다.
나도 그런다. 보통은 “맨날 운다. 지겹다” “존나 짜증남” “내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듯” “글쓰기 싫다” “어렵다 글쓰기 어렵다” 정도다. 그럴듯한 첫문장으로 시작하는 적도 많다. 지금 이 글의 첫문장은 처음부터 쓴 것이다. 하지만 나의 유아적인, 수많은 초고를 공개하면 학생들이 안심할 것이다.
그러나 쿨하고 멋지게 시작하고 싶어서 “일단 메모하고 나중에”를 외치는 적도 흔하다. 그래서 에버노트나 폰 메모장에 단상을 기록했다가 나중에 써 본 적도 있다. 여러모로 아쉬웠다.
첫번째는, 메모한 것을 모두 글로 완성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지긋지긋한 자기검열이 끼어들더라. “재미없는 듯.” “자료를 더 찾아봐야 할 듯.” “다른 주제가 더 나은 듯” 등 벼라별 이유를 대어서 글의 탄생을 막는다. 일단 써보고 그래도 영 별로라면? Delete. 글을 버리면 될텐데, 그렇게 마음 먹기가 쉽지는 않더라. 요리를 해놓고 맛없으면 쏟아 버리기는 아깝고 화나는 것과 마찬가지일까.
두번째는 ‘저절로 툭 튀어나온 나만의 개성적인 표현’이나 날 것 그대로의 감정이 어느 정도 다듬어진다. 만약 본인이 생생한 표현을 별로 좋아하지 않거나 숙고를 통해 통찰을 뽑아내는 스타일의 창작을 좋아한다면 문제가 없다. 게다가 생각의 발효와 숙성은 글쓰기의 필수다.
하지만 그러한 숙고 과정은 ‘퇴고’ 과정을 통해 충분히 할 수 있다. 지긋지긋하게 하고 또 할 수 있다. 결국 ‘뜨거운 초고’를 뽑아내는 데 있어, ‘나중에’ 라는 핑계를 댈 필요는 없다는 거다.
“눈물 셀카를 찍는 장근석 씨의 마음으로” 글을 쓰면 어떨까. 눈물이 채 마르기 전에 쓰려면, 준비물이 필요하다. 스마트폰에 바로 쓸 수 있다면 가장 좋다.(지금 이 글은 출근을 하던 중, 카페에 들어와 스마트폰으로 브런치에 직접 쓰고 있다. 생각보다 할 만하네. 8년차 트위터리안의 내공이다)
얼마 전에 스마트폰에 연결해 쓸 수 있는 블루투스 키보드를 샀다. 자기 전에 하루치 감정 일기를 쓰는 용도로, 또는 여행 중에 카페에 들를 때마다 사용할 요량으로 샀다. 유럽 여행을 할 때마다 좋은 수첩과 볼펜을 새로 구입해 들고 다녔으나, 나에겐 맞지 않더라.
일상에서 수첩에 글을 쓰지 않으므로 먹고싶은 음식이나 쇼핑 리스트나 끄적일 뿐이었다. 크림 브륄레와 비프 스테이크 한 번 더 먹기, 봉막쉐 백화점에서 미니백 사기 등등의 문장으로 빼곡했던 나의 여행 수첩.
수첩을 버리고, 어느날은 카페에서 아이폰 메모장에 여행모먼트를 쓰고 있자니 남편이 자꾸 “또! 트위터해요!”라고 놀려댔다. 키보드를 쓰면 최소한 “나 지금 작가 모드!”라고 명패를 붙인 모양이지 않을까?
집에서는 언제나 마루 테이블에 랩탑을 펴둔다. 11월말에 발간될 내 에세이집의 50퍼센트 이상은 모두 이 랩탑으로 ‘달려와’ 쓴 글이다. 먹다가, 울다가, 다투다가, 자다 깨서, 요가를 하다, 설거지를 하다, 샤워를 하다, 청소를 하다가 달려와 글을 시작했다. 1-2시간 일어나지 않고 집중해서 초고를 완성해 버렸다.
의식의 흐름은 이렇다. 방금 전에 일어난 어떤 일이나 방금 들은 어떤 말이 과거의 기억을 자극해 주제와 에피소드를 자아낸다. 그러면 일단은 ‘방금 전의 일’부터 쓰기 시작한다. 그게 가장 쉽다(물론 퇴고 과정에서 이 부분은 삭제되는 경우도 많다) 중요한 건 목욕탕에서 ‘유레카’를 외치는 이의 심정을 이해한다는 것! 울고 싶을 때 당장 울고 먹고 싶을 때 당장 먹고 허그하고 싶을 때 당장 허그하는 것처럼, 글도 당장 쓰면 좋다.
물론 동거인은 좀 당황한다. 모카포트를 올려둔 가스불을 끄고 커피를 따라다 주거나 “도마에 양파가 울고 있어요!” 라고 외친다. 언제나, 참, 고맙습니다.
자, 오늘은 여기까지.
카페에서 충전도 다 했고 글도 (한편 대충) 썼으니
다시 작업실까지 걸어갈 요량이다. 오늘은 계획하지 않은 글을 썼다. 야호!
걸으면 아이디어가 잘 떠오르는 체질이라, 매서운 겨울이 오기 전까지는
종종 걷다 카페에 들어가 쓸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