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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은성 Nov 09. 2018

술값을 아껴주고
간을 보호해 준 글쓰기

스스로를 견딜 수 없으면 맥주 캔을 따고, 글을 썼다

스스로를 견딜 수 없으면, 맥주 캔을 딴다. 그럴 때 어떤 사람들은 친구를 불러낸다. 자신이 얼마나 못난이고 세상이 얼마나 더러운지 토로하며 술잔을 기울이겠지. 그런데 나는 못 한다. 술을 마시면 마음을 헤쳐 보여줄 텐데, 그러기 싫어서. 온전한 위로가 돌아오지 않으면 쓸쓸하게 집에 돌아와야 할 텐데, 그건 두려운 일이다. 혼자서 홀짝거리는 건 가장 간편한 위로.


어떤 날은 마셔도 취하지 않는다. 점점 정신이 또렷해질 뿐. 그럴 때면 늘 뭔가 쓰고 싶어진다. 마시기를 그만 두는 순간이다. 두 손은 타자를 치느라 바쁘니까. 술값을 아껴주고 간을 보호해 준 나의 글쓰기. 


쓰는 동안은 언제나 두근거리고 행복하다. 가장 좋은 건 안전함이다. 글은 나를 비난하지 않는다는 사실. 내가 만들어낸 작고 공고한 진공 세계. 그 안에서 마음껏 유영하는 시간이 아마 치유일 것이다. 아무것도 바라지 않으며 나의 무언가를 많이 바꿔놓지도 않는, 아주 안전한 치유. 


회사 생활을 하던 때에 특히 많이 썼다. 나는 많은 것을 견디지 못하는 사람이다. 매일 매일 같은 사람들과 한 공간에 머무는 게 힘이 들었다. 일하면서 콧노래를 부르지 못하는 게 괴로웠다. 나의 부족한 점을 솔직하게 말하면 단점과 약점으로 평가서에 기록된다는 게 갑갑했다. 뭐라도 쓰지 않으면 도무지 견딜 수가 없을 때 파티션 아래에서 '보고서에 집중한 엄숙한 표정'을 짓고는 '인생은 지옥'이라고 썼다. 어떤 날은 블로그에 어떤 날은 <듀나의 영화 낙서판>에 썼다. 누가 들어주기를 굳이 바라진 않았지만, 아무도 듣지 않는 건 외로우니까. 


어떤 날은 당신의 일기에 큰 위로를 받았다는 비밀 댓글이 돌아왔다. 먼 우주로부터 미세한 신호를 받은 느낌. '여기, 너와 비슷한 사람이 있다' 내 이야기에 등장하는 인물을 그린 스케치를 받았을 때는 소리 내어 웃을 정도로 감격스러웠다. 세상에는 목적 없이 따뜻한 사람이 참 많구나. 아, 사는 거 너무너무 재밌네! 


쓰기를 마치고 나면, 세상은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는데 나는 조금 바뀌어 있다. 타자를 치는 열 손가락이 마음에 얼기설기 돋은 뾰족한 가시를 꼭꼭 눌러버린다. 가시 뿌리를 뽑을 순 없었지만, 가시의 날카로움이 마음을 더 이상 찌르지는 않는다. 그렇게 나는, 둥글게 누그러진다. 


내 글을 읽고 엄마는 자꾸만 하트 이모티콘을 보낸다. 작은 것도 보내고 큰 것도 보내고 색깔이 화려한 것도 보낸다. 엄마가 가진 이모티콘을 모두 보낸다. 우리 딸 잘한다, 똑똑하다, 멋지다, 얼마나 멋져지려고 그래. 금색으로 이름이 새겨진 상장을 받는 것 같다. 어른이 되어서도 상을 받는 기분을 느끼다니, 기분이 좋다. 빛나고 커다란 무엇이 된 것도 아닌데, 내 이야기를 하는 것만으로 칭찬을 받다니 신기하다. 


어쩌면 모든 글은 편지인지도 모른다. 사랑하는 친구들에게 내가 얼마나 사랑하는지 느낄 때마다 말하고 싶지만 그럴 수 없어서 적었다. 자주 울적한 표정을 짓는 건 우리의 운명이니까, 행여 나의 표정에 어두운 구름이 깃들어 너를 상처받게 할지라도 그건 그저 표면이라고. 


우습게도, 내가 너에게 아무 말도 하지 못할 정도로 가라앉은 시간에 바보처럼 너를 몹시 그리워하고 있다고, 그 모순을 부디 이해해 달라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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