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 앞에 엄숙하기엔 인생이 너무 분주해서

화려한 글감옥에 갇혀서 연필로 한 자 한 자 쓰고 싶지만

by 소은성

연필로 글을 쓴다는 대작가의 산문을 홍보하는 트윗을 보았다. 칼로 깎은 연필로 원고지에 또각또각 글자를 박아넣으면 ‘몸이 글을 밀고 나간다’는 생각이 든다는 것이다. 그의 육필 원고를 가장 먼저 받아 읽고 워드 파일로 정리하는 기쁨을 표현한 한 편집자의 후기도 이어졌다. 흑연과 나무 향기, 고유의 문체가 자아내는 우아함이 클지 고대하던 원고가 도착했다는 기쁨이 클지를 알 수야 없지만. 모든 것이 평범하고 사소해진 시대에 몇 안 되는 ‘거장’이 예술가다운 호기와 허세를 지켜 나가는 모습이 보기 나쁠 리는 없다.


대작가는 테크놀로지를 몹시 싫어하는 듯 보인다.

"인터넷은 정보의 쓰레기가 모인 바다다. 기계로 쓰면 쓸데없이 속도가 빨라지고 문장이 늘어진다.”

원고지에 직접 글을 쓰면 쉽게 수정할 수 없으니 한결 신중해진다는 것을 모를 리가. 글을 쓰는 속도가 생각의 속도를 따라잡지 못할 때 발생하는 지체와 방해, 지연이 사고와 문장을 한결 심도있게 만들지도 모르겠다. 작가는 자신의 연필이 ‘구석기 사내의 주먹도끼, 대장장이의 망치, 뱃사공의 노를 닮기를 바란다’고도 했다. 이 거창한 수사는 무슨 소리인지 잘 모르겠지만, 그 망치와 노가 편집자의 업무를 늘린다는 것은 알겠다. 그의 필체를 본 적 없으되, 다만 악필이 아니길.


글쓰기론에 대한 기사를 볼 때 나는 언제나 직업상 내 학생들을 떠올린다. 그들의 글쓰기에 도움이 될지 아닐지만 고려한다. 내 답은 NO다. 근사한 이야기이지만, 신경 끄셔도 좋습니다.


오늘의 글쓰기를 대할 때 주눅들고 경직되는 이야기라면, 외면해도 좋다. 누군가의 예술론이 내 창작에 흥을 돋구는가, 아닌가. 내 사고가 얕고 문장이 늘어지는 것에 대해 질책을 받는 기분이 된다면 듣지 말라. 거장의 예술론을 들을 때, 취미 예술가들은 쉽게 반성을 한다. 게다가 토종 한국인이라면 다들 반성의 달인이다. 공중 화장실 문에도 나를 반성하게 하는 명언들이 빼곡한 나라다.




거장은 못될 팔자인지, 나는 대작가들의 예술론을 들을 때마다 궁금한 것이 많다. 화려한 글감옥을 논한 거장 A가 감옥에 스스로 갇혀 글과 사투를 벌일 동안 누가 아이들을 먹이고 씻기고 입혔는지를, 일생의 대작을 쓰기 위해 탈고 전까지 머리를 감지도 몸을 씻지도 않았다는 거장 B의 동반자는 그 시간들을 어떻게 견뎠는지를, 언제나 순백의 한복을 입고 작업하는 거장 C의 빨래는 누가 관리해 주는지를 궁금해 하는 것이 나의 취미다.




앞서의 트윗을 볼 때 마침 나는 잎채소를 팔고 있었다. 매일 오후 세 시간은 밥벌이와 관련된 어떤 중대한 의뢰가 오더라도(나는 생존형 프리랜서 기자다) 무조건 내 글을 쓰자고 작정했는데, 워드 파일을 열자마자 마침 농부 남편이 싱글벙글 이모티콘과 함께 '이번 주 채소 판매 목록'을 보내왔다. (외국인 남편은 아직 한국어가 능숙치 않아 판매와 홍보는 온전히 내가 맡는다) 같은 책상의 글쓰기 동료들은 창작 에너지에 둘러싸여 열렬히 키보드를 두드리는데 나 홀로 밥벌이 감옥에 갇힌 기분이 들었다. 나는 고독했다.


온전히 예술만 추구하고 싶다. 예술 때문에 고독해보고 싶다. 연필에 침을 묻혀가며 숙연하게 한 자 한 자, 몸으로 글을 밀어내고 싶다. 치앙마이든 하와이든 한국어가 들리지 않는 휴양지에 또는 흐리고 으스스하고 인적이 없어 할일은 오로지 글쓰기뿐인 베를린 에어비앤비에서 100일 정도 홀로 글을 쓰면 나는 얼마나 나은 작가가 될까. 아, 화려한 글감옥에 갇히고 싶어 안달이 난다.


작업-생계-가사의 트라이앵글 안에서 늘 같은 노래를 읊조리기만 할 뿐, 어쩔 방도가 없다는 것을 잘 안다. 내가 돌연 글 감옥에 갇혀 버리면 '나'의 역할은 누가 하나. 나는 하나 뿐인 가족의 친구이자 연인이자 때로 보호자다. 정서적 측면 뿐 아니다. 외국인 남편의 건강보험은 내가 납부해야 한다. 살림에 있어 한국어가 필요한 영역을 모두 맡아야 한다. 게다가 나는 우리집의 가장이다. 이쯤 되면 연필로 쓰든 붓으로 쓰든 거 나는 모르겠고요, 재빨리 글을 쓰고 수정하게 해주는 테크놀로지에 감사를 드려야 하는 게 예술가로서의 나의 공손한 자세다.



서재가 없어 공동 거실에서 온갖 종류의 방해를 받으며 소설을 쓴 작가는 제인 오스틴이다. 그녀는 방문객이나 하인, 가족친지의 의심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며 글을 썼다. 누가 지나갈 때마다 원고를 감추었을 그녀의 기민함을 떠올린다. 기분이 나아진다. 손에 익은 만년필이 없어지자 '워드 프로세서'를 거쳐 마침내 컴퓨터를 받아들여 적응해 수많은 작품을 남긴 박완서 작가의 유연성을 떠올린다. 다섯 자녀를 키우면서도 예술가로서의 자신을 포기하지 않았다. 기분이 조금 더 나아진다. (나는 혼자가 아니다)


갈망이 커져갈 때면 글쓰기 수업에서 만난 여성들을 떠올린다. 두 돌 아기를 혼자 돌보는 나날 속에서 잠시 숨 쉴 곳을 찾기 위해 글쓰기 수업을 온 K에게 나는 ‘아기를 돌보는 동안 어떤 감정이 드냐’고 물었다. 한참 고민하던 K가 대답했다. 감정을 느낄 틈은 없노라고. 우문에 부끄러워진 나는 ‘시간이 정 없으면 핸드폰 음성메모를 켜고 순간순간의 마음을 기록하라’고 보탤 수밖에 없었다. 출산과 육아 경험의 디테일을 증거하고 기록하기 위해서.


좋았던 순간을 적어보라는 과제에 ‘자정에 혼자 들꽃을 보러간 일’을 적은 N을 기억한다. 두 아이를 둔 직장인인 N은 매일 10시까지 야근하는 회사에 다녔다. 밤 버스에서 내려 걸어간 곳은 동네 공원이었다.

“아름다운 것을 보고 싶었어요.”

보고서 더미와 장보기 어플 사이에서 흘러가는 하루하루. 어두운 공원에서 작은 들꽃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앉은 뒷모습을 떠올린다. 누군가는 기어코 어떻게든 작은 구원을 향해 걷는다.


내가 아는 아름다움은 그런 것들이다.

내가 좋아하는 예술의 가치는 이런 것들이다.

삶과 유리되지 않되 삶을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끄는.


한 명 한 명이 예술가로 살아가게 하는.

비록 그것이 전혀 엄숙하지 않고

몹시 소박할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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