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링됐다'는 말로 여러가지 감정을 뭉뚱그렸던 D
글쓰기는, 무섭다. 완벽하려는 노력은 글을 누덕누덕 기운 백과사전처럼 만들어 버린다. 누구에게도 인상적이지 않은 문장의 나열은 언뜻 대학 신입생의 서툰 레포트처럼 보인다. 한번은 편집자 친구가 메일함에 쌓인 에세이 투고 원고를 보여준 일이 있다. 어떤 원고는 유용해 보이는 자료를 모으고 배치해 쓴 후 여러 번 퇴고해 매끈하게 정리한 노력이 안타까울 정도였다. “이제는 인공지능도 이 정도 글은 쉽게 쓸 수 있어.” 기존에 나온 에세이들과 다른 점이 하나도 없으니 한두 챕터 이상을 더 읽어나가기 어렵다고 했다.
작가가 어떤 사람인지 전혀 손에 잡히지 않는 글이 읽는 사람을 감응시킬 리 없다. 어떤 작가는 씁쓸하게 웃으며 ‘매력적인 사람이 쓴 글이 잘 쓴 글을 이긴다’는 말을 하기도 한다. 관점이 우선이고 문장력이나 구성력은 그 다음이다. 구하지 못하는 자료가 없고 내가 아는 것은 남도 다 아는 세상이 되었다. 대단한 철학이 있다면 좋겠지만 글을 처음 쓰는 사람에게 그런 것이 단번에 생성될 리 만무하다. 그러므로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스스로에게 물어봐야 할 것은, “정말 그렇게 생각해? 그 문장은 진심이야?”
글쓰기 초보자 시절, 책상에 붙여놓은 문구가 있었다. “호랑이가 무섭다는 말은 쓰지 말자.” 호랑이가 무섭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나. 나에게 호랑이가 어떤 의미인지를 쓰자는 다짐이었다. 나에게만 보인 인터뷰이의 비밀은 무엇이었나, 내가 취재한 고장은 나에게 어떤 느낌을 주었나. 이 음식은 정말 맛있는가, 남들이 맛있다고 해서 나도 맛있다고 박수를 치지는 않았나. 그러므로, 나는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는가.
세상을 보는 관점은 ‘나’에서 출발한다. 글쓰기의 핵심은 내 삶에 기반한 관점으로 접근하는 것이다. 사랑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설파하기 전에, 내 삶의 사랑은 어떠했는지 돌아보는 시간이 필요한 이유다.
50-70대 여성을 대상으로 한 복지센터 글쓰기 강의에서의 일이다. 수강생 D는 평생 비서로 일했다. 비서는 보스의 목표와 욕구가 반영된 스케줄을 최대한 성취할 수 있도록 일한다. 클라이언트의 의중을 짐작하고 파악하는 많은 종류의 직업이 있다면 그 중 최고 레벨에 비서가 있을 것이다. D는 글을 쓸 때 감정을 배제하는 데 능숙했다.
한편 예술에 대한 농도 짙은 애정을 지닌 사람이란 점이 흥미로웠다. 한번은 그가 줄거리를 요약하고 잡지 리뷰를 인용하는 것에서 멈춰버린 영화 리뷰를 제출했다. 그 회차에서는 누구의 것도 참고하지 않은 생각과 감정을 써보는 것이 학습목표였다. 한 줄만 제출해도 좋다고 했으나 그는 원고지 20매 정도의 분량을 써냈다.
기관의 특성상 친교활동을 위해 등록한 수강생도 많았기에 그토록 성실한 과제는 감동적이기까지 했다. 몇몇 수강생은 글에 자기만의 생각과 감정을 담는 것에 거부감을 드러내기도 했기 때문이다. 소설이나 영화의 줄거리를 요약하고 ‘감동적이다, 힐링됐다’ 혹은 ‘수작이다, 멋있다, 잘 만든 영화다’는 문장을 나열한 후 격언이나 속담으로 마무리한 과제를 읽은 후 나는 되묻곤 했다.
“그 영화가 내 인생의 어떤 부분과 비슷했어요?” 혹은 여러 가지의 감정 단어를 예시로 들며 깊은 속내를 꺼내보고자 했다. 큰소리로 이렇게 말하고 나가버린 분도 있었다. “속 시끄럽게 만드는 영화는 안 봐요. 나는 유!쾌!한 영화만 봐. 사는 것도 정신 사나운데 머리 안 쓰고 싶어요. 심란해. 심란해.”
나의 감정을 불편해 하거나 아예 없는 것으로 간주하기. 사회와 가정에서 요구받는 역할만을 성실히 수행하며 살아 온 사람들은 자신의 느낌을 감추는 데 능숙했다. 타인의 기대에 부응하며 살아온 인생에는 감정이 끼어들 자리가 없다. 스스로의 감정을 억압하는 기술은 다른 사람의 감정에 공감하지 못하는 기술로 사용되기도 했다. “먹고 살기도 바쁜데 사소한 것에 일일이 신경쓰면서 어떻게 신경 써? 대충 살아.”
인생의 굽이굽이마다 느껴온 고독과 공포, 억울, 분노, 피로 등을 떠올리게 만드는 교사는 불편한 존재였을 것이다. 적극적으로 화를 표출하는 여성도 있었다. ‘당신의 이십대를 떠올리면 어떤 기분이 드냐’는 질문에 순식간에 눈물을 흘리면서 동시에 찡그린 얼굴을 한 60대 여성도 잊을 수 없다.
감정에 대해 질문하면 공격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분명 있다는 사실에 당황했지만, 문화센터에서 비슷한 경우를 숱하게 본다는 어머니의 말을 듣고 이해했다. “자기 인생 힘들었던 거 처음 보는 사람한테 말하고 싶겠어? 자식이 보내준 해외여행이나 손주 성적 같은 거나 들어줘.”
내가 무엇을 보고 듣고 느꼈는지 솔직하게 말하는 것은 두렵다. 그보다는 콘텐츠에 대한 '평가'가 더 쉽다. 이를테면 천만영화를 관람한 후 '역시 웰메이드'라고 엄지를 치켜드는 것.
평생 ‘역할’로 살아온 이에게 감정에 대한 질문은 곤란하다. 불편하다. 어긋난 인생은 되돌릴 수 없지만 어긋난 글은 다시 쓸 수 있다. 그럴 듯하게 꾸며내지 않은, 혹여 비판을 받을지도 모르는, 그렇지만 스스로에게 “정말 그렇게 생각해?”라고 물으면 열 번이고 고개를 끄덕일 의견을 단 한 줄 쓰는 순간, 수강생의 글쓰기에는 가속이 붙곤 했다. 예닐곱살의 어린이처럼 세상 모든 것에 정직하고 개성적인 견해를 쓸 수 있었다.
이러한 확신으로 나는 질문을 던졌다. 이런 경우 교사의 질문은 잘 세공될수록 덜 효과적이다. 우문이 수강생을 자극해 에너지를 끌어내는 면이 있다. 교실 안의 질문과 답변도 하나의 대화다. 인간은 대화의 완성도를 높이고자 노력하는 존재다.
“제 친구도 비서인데 저녁이면 밥 차릴 기운도 없다던데요. 그렇게 자주 뮤지컬 보러 가시는 거 안 피곤하세요?” 작품이 아니라 나의 ‘감정’에 집중하도록 유인하고 싶었다.
“괜찮아요. 힐링되거든요.”
그가 ‘힐링’이라는 단어를 쓴다면 그 단어를 동앗줄 삼아 나아가보기로 했다. 자신의 일상과 달리 희극과 비극의 색깔이 고루 강한 서사를 보며 현실의 자잘한 문제를 잠시 잊게 되는지,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화려한 배우들을 보면서 대리 만족을 느끼는 것인지. 서너 개의 질문과 대답을 주고 받았지만 그는 ‘힐링되었다’라는 문장을 조금씩 다르게 답할 뿐이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는 자신의 생각을 솔직하게 말할 때마다 불안해진다고 했다. 붉어진 뺨으로 되물었다. “뭘...어떻게 더 이야기하죠?” 현실은 심리 상담실이 아니라, 상대가 내가 굳이 드러내지 않은 나의 진짜 감정을 여러 번 묻는 일은 드물다. 남은 수업 시간 내내 그는 불편한 표정이었다.
우아해 보이는 방법을 안다. 나의 감정을 재잘거리지 말 것, 감정은 되도록 간명한 문장으로 정리해 표현할 것. 성인이 된 후 밥벌이를 위해 깨어있는 시간 대부분을 쓰게 되면, 개인의 내밀한 감정은 수트 안으로 굳게 잠겨진다. 자신의 감정에 대해 일목요연하게 말하는 습관을 만들기 위한 자기계발서들이 많다. 직장에서 단체생활을 하기 위해 필요한 덕목일지도 모르겠다. 그때 그때의 생각이나 감정을 구구절절 늘어놓거나 혹은 표정으로 드러내는 직원을 반겨하는 직장은 없다.
당시의 수업은 치유하는 글쓰기가 아니라, 뭉뚱그린 ‘글쓰기 강의’였다. 다음 수업에 그분이 오지 않으면 수강료를 돌려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D는 수업 시작 30분 전에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지난 번의 당혹, 억울, 짜증, 초조와 같은 빛은 얼굴에서 말끔히 사라져 있었다. 일주일 간 그에게 어떤 생각이 쏟아지고 흐르고 빠져나가고 보태졌을 것인지 몹시 궁금했다.
다른 수강생이 오기 전 그는 방금 발견한 엄청난 황금빛 보물을 보여주듯 내게 속삭였다. “글쓰기 수업이 재밌을 줄 몰랐어요. 블로그에 글을 꾸준히 쓰면 투잡이나 퇴사 후 전망이 좋다기에 신청했거든요. 그런데, 재밌어요. 뭐가 재밌는지 구체적으로 표현은 못하겠지만요.”
그는 특히 영화 <드림걸스>를 특히 좋아한다고 했다. 일주일 동안 자신이 그 화려한 무대 씬을 하염 없이 바라보는 일을 왜 좋아하는지 스스로에게 질문했다. 처음에는 ‘그냥 좋다’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앞선 수업 때 받은 감정 단어를 짚어보면서 스스로에게 물어봤다고 했다. 부러운가, 초조한가, 행복해지는가, 초라한 기분이 드는가, 다른 존재가 되어보고 싶은가.
“저는...그런 주목받는 삶은 상상도 안 해요. 타인의 입에 오르내리는 것도 좋아하지 않고요. 하지만 빛나는 사람들을 보는 것이 좋아요. 극장 안에서 나도 함께 번쩍번쩍하는 세상 속에 있는 것 같다가 불이 꺼지고 ‘아, 끝났다’할 때 기분이 좋더라구요. ‘편안하다’ ‘안도감을 느낀다’에 동그라미를 쳤어요. 음...저는 멋진 것을 보는 건 좋고, 멋지게 사는 건 부담스러운 사람인가 봐요.”
어떤 이들에게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것은 그것이 '평범한 것' '별것 아닌 것'일까봐 저어된다. 자신에 대해 글로 쓴다면 실마리가 될만한 마지막 문장을 내뱉고는 그는 부끄러움이 뒤덮은 표정을 지었다. 그것은 보기에 찬란했다. 영화평론가들처럼 문체가 유려한 글을 쓰고 싶다던 D는 어느새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 보기 시작한다. 마음을 관찰하는 동안엔 다른 작가들의 글과 자신의 글을 비교하고 슬퍼할 겨를이 없다.
이후 몇 번의 수업 동안 그는 뭉툭하게 표현되었던 그녀 인생의 수많은 마음을 꺼내어 세공하기 시작했다.찬란한 광경이었다. 마지막 수업에서 그는 짧은 문장 몇 개로 과제를 대신했다. ‘이번 해에 본 영화와 연극과 뮤지컬이 100편도 넘는다. 그 시간들에 모두 내 감정이 묻어있을까. 그러면 그 시간들은 그저 버려진 시간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그걸 찬찬히 들여다보면 글이 될까. 나는 슬며시 흥겨워지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