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너무 잘하고 싶어 죽겠는' 인간형을 위한 '연습용 마인드'
드디어 나도 늘 부러워하던 운동인이 되었다. 허리가 망가져서 1:1 필라테스 수업을 받았다. 지난 가을, 숨만 쉬어도 아픈 허리를 부여잡고 “살려주소서.” 심정으로 고액의 수강권을 샀다. 지난 가을부터 올해 봄까지, 매주 2-3회 아침 1시간씩, 트레이너와 보낸 시간은 난생 처음으로 느껴보는 감각 파티였다.
세상에, 몸의 근육을 효과적으로 움직인다는 것을 배우면서 새로운 세계를 조우한 것 같았다. 운동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너무나 익히 아는 감각들일 듯해 민망하지만, 태어나서 제대로 된 트레이닝을 처음 받아보는, 아니 운동이란 것을 본격적으로 처음 해보는 나 같은 사람에겐 아주 상투적인 표현으로 ‘봉사가 눈 뜬 것’과 같은 환희였다.
물론 실상은 아주 지겨워하면서 다녔다. 매번 재미가 있었다면, 그게 더 이상하다. 내가 그런 사람이었다면 내 나이 98세까지 운동의 운도 몰랐을 리 없잖아? 다만, ‘열심히 하는 것’의 새로운 정의를 알게 된 것은 몹시 즐겁고 새록새록했다. 삶의 지향에 큰 변화를 주었다.
태어나 살아오면서, 내가 아는 ‘열심히’의 포즈는 이랬다. 약간 북조선 뉴스와 같은 느낌의 에너지! 두 눈을 부릅떠야 하고, 눈썹에 힘을 주어야 하며, 양 어깨는 강력한 파워 숄더로 만든 뒤 호령한다. “나는 태릉인이다!” 에너지를 몰아서 써대니, 언제는 카리스마가 넘치는 모습이었다가 그러고 나면 좀비가 되었다가 하는 인간형으로 평생을 살아왔다.
그런데 어럽쇼? 그럴 때마다 필라테스 기구가 이상하게 휘거나 손에서 떨어져 나갈 듯 했다. 그때마다 트레이너는 나를 멈춰세웠다.
“포즈 다시! 은성님, 필라테스는 ‘그렇게’ 힘을 주는 게 아니에요.”
나는 속으로만 중얼거렸다. 아....쌤. ‘그렇게’가 뭔지 모르겠어요. 제 평생 배워 온 열심히는 빡! 딱! 빡! 인데요.
가장 중요한 것은 고르고 자연스럽게 호흡을 하는 것이었다. ‘숨쉬는 척만 하지 않고 제대로 깊게 숨을 들이쉬고 내쉬면서’ 유연하고 부드럽게 기구를 당기는 것. 그리고 그것을 같은 속도로 반복하는 것. ‘딱 한 번만 거창하게 잘하고 마는 것’은 언제나 교정의 대상이 됐다. 호흡을 멈추고 근육에 힘을 뭉쳐서 ‘으랏쌰쌰!’ 하고 당기는 것은 필라테스의 올바른 방법이 아니라고 했다.
마지막 수업에 다다르기 전까지, 늘 머릿속이 엉켜있었다. 몸에 힘을 쓰되 과하게 힘을 주지 않는‘ 게 무엇인지 도무지 파악이 되지 않아 머리가 혼란 대 파티.
게다가 '열심히 하자!'라는 생각조차 운동 중에는 '잡념'이었다. 그런 '쓸데없는 각오'를 되내다 보면, 억울하게도 스텝이 엉키기나 했다. 아, 정직한 몸님! '생각'은 호흡을 거꾸로 만들어버렸다. '생각'은 감각을 꼬아놓았다. 내쉴 때 들이쉬고, 오른손을 들라고 할 때 왼손을 들었다. 스타아아압을 스타아아트로 들어서, 난데없이 새로 동작을 시작했을 때는 급기야 헛웃음이 터졌다.
선생님, 저도 제가 너무 웃겨요. 어허허허허허허.
마지막 수업에서야, 나는 마음을 비웠다. “왠일입니까? 무슨 약을 드시고 오신 겁니까?” 트레이너가 놀랐다. 수업이 끝난다고 생각하니 에라 모르겠다 싶어 그제야 머릿속이 단순해졌다. 김연아 선수의 “(연습할 때) 무슨 생각을 해? 그냥 하는 거지.”라는 말을 이해했다. 그냥 했다. 아 무 생 각 없 이.
내가 올림픽에 나갈 것도 아니고 타고난 운동감각이 전국 최저에 가까우니 운동을 잘하게 될 리도 없고 그렇다면 욕심 부릴 것도 없고 더 잘하려고 궁리를 할 것도 없다. 그저 매일 1시간씩, ‘내가 운동을 안 하면 성안에 갇힌 공주가 풀려날 수 없다’ (건강문제로 매일 50분씩 러닝머신을 달리지 않으면 몸져눕는 선배가 늘 한다는 생각)는 마음으로 반복, 반복, 반복 뿐이다.
계속 트레이닝하다 보면 사후에 걸작 한 편 남기겠죠? 아니면 말고!
나는 ‘너무 너무 잘하고 싶은’ 그래서 ‘아예 시작을 안하는’ 인간으로 평생을 살았다.
다행히 몇 가지는 시작을 했다, 얼결에. 시작해서, 결국 잘하게 된 일은 공통점이 있었다. 우연히, 욱하는 마음에, 계획없이, 무작정 시작했다. 자료 서칭과 계획 세우기는 서서히 천천히 해나가며 보완했다. 다만 규칙적으로 함께 지속하도록 만들어주는 동료를 만들었다. 동료들 덕에 충분한 시간을 두고, 아무 생각 없이 계속해 나갈 수 있었다. 그것들 뿐이었다. 그 과정에서 세상의 거의 모든 일이 그러하다는 걸 알게 됐다. 단순하게, 무심하게 할수록 잘 하게 된다. 물론 그러기 위해서는 꼭 지켜 나가는 루틴을 만드는 게 필요하다.
글쓰기도 마찬가지였다. 200퍼센트의 에너지를 쏟아부어 한 편을 쓰고 만 일이 얼마나 많은지! (그리고 그 '일년에 한편'을 결코 무엇도 되지 못했다. 연재물도 못되고 책도 못되고....) 기자 일을 할 때도 그랬다. 있는 힘을 다해 한 편을 써낸 뒤, 녹다운되어 누워있거나 내가 정말 쓰고 싶은 에세이는 쓸 기운이 없거나. 무척 후회가 된다. 그때, 좀 슬렁슬렁 써내고 남은 에너지로 나만의 글을 쓰는 취미생활을 했다면 지금쯤 더 큰 작가가 되었을텐데(라고 믿어보기로 하자)
엄청난 비법을 써놓은 것처럼 홍보하는 작법서는 많다. 또 사고 또 읽는다. 물론 도움이 된다. 하지만 글쓰기 비결을 10개 습득하는 것보다, 하나를 골라 10일을 지속하는 게 당연히 효용이 있다. 필라테스 잘하는 방법 영상을 10개 보는 것보다 1개만 보고, 10번을 해보는 게 당연히 합리적이듯이.
오늘도 생각한다.
마라톤에 나갈 수 있을지, 성미산을 다 돌고 올 수 있을지, 그것도 아니라 10분을 넘길 수 있을지 에라 나는 모르겠고,
날씨도 좋으니 그냥 딱 10분만 달리고 올까?
하며 운동화에 발을 꿴다.
유명한 작가가 될 수 있을지
이 글이 완성도가 있을지
누가 나를 좋아해줄지
독자의 칭찬을 받을지
에라, 나는 신도 아니고
알 수가 없고
그냥 딱 10분만 쓰자.
뽀모도로 타이머를 맞추고 1시간이 훌쩍 지났다.
이렇게 50년을 살면,
사후에 걸작 한 편 남길지도 모르지,
뭐, 아니면 말고.
너무 너무 잘하고 싶어
머리가 터질 것 같은 사람에게는 슬프게도 기쁘게도
이 방법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