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은성 Jul 29. 2019

엄마는 꽃처럼 김밥을 쌓아두었다

언젠가 '먹고 싶은 게 있어요'라고 말하게 될까?

“먹고 싶은 거 없어? 만들어 줄게. 작은 건 곧잘 말하는데 넌 왜 말을 안 해.” 

서운함 가득 담아 엄마는 종종 내게 묻는다. 동생은 엄마에게 자주 먹고 싶은 걸 말한다고 했다. 엄마가 담근 김장 김치는 동생이 다 가져다 먹고 있다고도. 잘 먹는 동생이 맛있게 먹으니 좋다는 말로 슬쩍 말을 돌렸다.  “내가 먹고 싶은 건 손이 많이 가. 힘들게 뭐 하러 만들어. 매일 힘들게 일하면서..다음에 먹고 싶으면 말할게.” 


먹고 싶은 음식이 있어도 해달라고 말하지 못하는 딸이 되었다. 음식을 만들 때 들이는 수고가 걱정되어 다음으로 미루는 내게 엄마는 섭섭하다 하신다. 그렇게 내게 마음을 주려는 그를 알면서도 그 수고마저 덜어주고 싶다. 그는 너무 오랜 시간 쉬지 못하고 늘 일을 하고 늘 자신을 다그쳐 살아왔다. 매일을 자기 몸과 마음을 추스를 잠깐의 여유도 없이, 그렇게 오래 살았다. 오늘도 그렇게 하루를 보낼 그다.  


평일에는 엄마가 만든 반찬과 국에 내가 한 밥으로 끼니를 해결했다. 작은 손으로 한 밥은 야무졌다. 하나부터 열까지 설명을 듣지 않아도 어렵지 않게 저녁까지 나와 동생을 책임질 수 있었다. 물론 그렇게 하기까지는 엄마가 미리 해둔 많은 것들이 집 곳곳에 가득했다.  

주말 아침이면 싱크대 앞 밥상 위에 김밥이 산처럼 쌓였다. 노란 단무지와 계란, 초록 시금치, 붉은 기가 도는 햄, 하얀 맛살에 고소한 참기름 냄새가 도는 밥이 한데 말려 있는 김밥. 그리고 그 옆에는 꼭 파가 들어간 달걀국이 함께다. 주말 아침에도 일찍 일어나 접시 위에 아무렇게나 놓인 김밥의 꽁다리를 집어먹으며 달걀국을 먹 었다. 앉아서 김밥을 먹고 있으면 엄마는 동그란 김밥을 곱게 잘라서 통에 쌓아 올린다. 

한 단을 쌓고 그 위에 깨소금을 뿌리고 다시 또 한 단을 쌓고. 쌓이는 김밥을 보면서 숟가락으로 노랗게 풀어진 계란을 입에 넣는다. 꽁다리로 배가 부를 참이면 김밥이 담긴 통 옆에는 꽃 모양으로 김밥이 한 단 쌓인다.  


김 위에 밥을 넓게 펼치고 가운데에 얇은 계란 지단을 올리고 그 위에 햄과 단무지, 시금치와 맛살을 올린다. 그 리고 김의 가장자리를 맞춰 반으로 접으면 동그란 김밥이 아닌 조금은 넓적한 김밥이 된다. 그 김밥을 잘라 끝 부분을 모아두면 꼭 꽃처럼 보인다. 엄마는 가끔 동그란 김밥 말고 꽃처럼 김밥을 접시에 담아두셨다.  


내가 더 어렸을 적, 엄마는 야무진 손으로 집 안 곳곳을 꾸몄다. 점토로 온갖 예쁜 것들을 만들었고 그 위에 색을 입히고. 항아리 위에 그가 키운 잘 여문 포도송이가 아직도 눈에 선하다. 우리가 살던 집 나무 마루는 늘 반들반들 윤이 났다. 지금의 나보다 더 젊었던 시절 그의 사진을 보면 예쁘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언제나 밝게 웃었다. 물론 여전히 그는 나보다 밝게 웃는 사람이다.  


삶이 고달파 가지고 싶은 예쁜 것보다는 지금 가진 것으로 살 수 있는 것들을 사며 살면서도 배곯게 살면 안 된다 말했다. 매일 힘들게 일하러 가면서도 새벽같이 일어나 밥을 하고 국을 끓이고, 반찬을 만들었다. 그리고 주말이면 종일 집에 있어야 하는 어린 두 딸에게 먹일 김밥을 쌌다. 먹기는 손쉬워도 만들기는 손이 많이 가는 김밥을 만들려 전날 밤부터 미리 재료를 준비해 두었다. 그렇게 산처럼 쌓은 김밥을 먹으면서 하루를 보내고 나면 엄마가 돌아왔다. 함께 없어도 김밥은 늘 맛있었다.  


할머니가 된 엄마. 조카들 간식을 사실 때에도 늘 내가 좋아하는 과자를 잊지 않고 사 오신다. 

“이건 이모가 좋아하는 거야.” 

엄마 집에 가면 냉장고에 내가 좋아하는 반찬들을 만들어 두시고는 하나씩 꺼내 상에 올려주신다. 먹고 싶다고 말하지 않아도 이미 너무 많은 음식들을 준비해 두셨다. 며칠 전부터 장을 봐 양념을 만들어 두고는 고된 하루를 보내고 돌아와, 늦은 밤을 낮 삼아 딸들에게 먹이려 음식을 만드는 그의 모습이 보인다. 


가진 게 없어 자신이 가진 모든 시간을 다 써서 배부르게 먹이려는 그 넘치는 마음 덕에 나도 누군가를 위해 음식을 만들 줄 알게 되었다. 얼마나 마음이 넘쳐야 그렇게 바지런히 준비하고 기꺼이 내 모든 것을 줄 수 있는지.  


여유 없이 살며 김밥을 싸던 그와 종일 엄마를 기다리며 김밥을 먹던 내가 생각나서 아직은 말하지 못하겠다. 그래도 가끔은 산처럼 쌓아뒀던 김밥이 먹고 싶다.   



by 운오 

자기소개글을 연습 중입니다.


소글매거진

소글워크숍 중에 초고를 쓴 뒤 발전시켜 완성한, 수강생들의 원고를 싣고 있습니다. 

여성전용 글쓰기 클래스 '소글워크숍' 카카오플러스친구 

http://pf.kakao.com/_xaMKLC






매거진의 이전글 교도관이 되려고  교사가 된 건 아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