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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은성 Jul 27. 2019

교도관이 되려고
교사가 된 건 아니다

'탈 모의고사 감독'을 기원하며

그들은 이따금 졸음이 오지 않는데도 자는 척 한다. 평소에 그리는 거라곤 동그라미 밖에 없는데 거대한 나무를 그리기도 했다. 한 번호로 운을 시험하기로 마음먹고, 8점이나 16점을 향해 내달려, 정직한 점수를 받은 친구들을 득의양양한 표정으로 지켜보곤 했다. 80분, 100분, 70분, 다시 100분. 350분을 버티기 위해 누구는 밤새 게임을 하고 누구는 sns 안에서 시간을 죽인다고 했다.  


나는 모의고사 감독을 하고 싶지 않다. 한 달에 한 번씩 교도관이 되는 기분을 아는가? 죄수는 왜 죄수인지 모르고, 교도관도 어떤 죄를 지었는지 모른다. 죄수는 10퍼센트 미만의 특별한 자유민을 위해 갇혀있다. 죄수와 자유민은 운명 공동체기 때문이다. 


자유민은 좋은 성적을 얻어야 하며, 죄수는 낮은 성적과 순종을 익힌다. 죄수의 시간은 시스템을 움직이는 사람들의 관심 밖이다. 관리자가 원하는 건 자유민의 점수다. 최저 등급을 맞출 수 있는가? SKY 합격자가 나오는가? 3등급 안은 몇 명인가? 결과를 알고 싶은 관리자는 교도관을 재촉한다. 성적을 감추고 싶은 마음은 깡그리 무시된다. '특혜'라는 미명 하에 개인의 약점은 까발려 분석된다. 


최저등급이나 정시 준비생 10퍼센트를 위해 90프로의 하루를 날리는 건 비효율적이다. 죄수 중 누군가 의문을 제기하면 교도관은 교칙이라고 소리를 지르거나 체념한 표정으로 대꾸한다. 권위적인 소리나 낙심한 어른의 모습을 보며 학생들은 무기력을 학습한다. ‘닥치고 있어야 안전하다’ 


혁신 교육은 ‘학생 개인의 개성과 자유를 최대한으로 보장하고 꿈을 설계하여 행복한 개인을 길러내기’를 목표로 한다. 교내 흡연이나 제멋대로인 학생에 관대하다. 교사는 혁신학교의 깃발 밑에서 '나 대화법'으로 '단 한 명의 학생도 포기하지 않아야'한다. 그러나 혁신교육의 장엄한 깃발도 입시 앞에서는 힘을 못 쓴다. 대부분의 학생을 실험실의 쥐로 만드는 모의고사 제도는 바뀌어야 한다. 


상위권 한 명의 성적보다 위기 학생, 위험 상황에 덩그러니 놓인 교사에게 관심을 돌려야 한다. 교사는 '학교에서 하라는 일'을 전달하는 녹음기가 아니다. 지식 전달자이자 혼란한 청소년 시기의 조력자여야 한다. 


‘우리 때는 다 그랬다’는 말은 의미가 있을까. 이전 세대는 학교 폭력을 당해도 말할 곳이 없었고 교사의 체벌을 학습했으며 공권력이 개인을 살해해도 따지지 못했다. 가정에서는 아내가 맞아 죽거나 ‘가스라이팅’이 뭔지도 모른 채 평생 집 안에서 아이를 낳고 길렀다. 전체가 개인보다 중요한 사회에서는 개인이 미래를 생각할 겨를이 없다. 폭력을 피하기 위한 방법에만 기민해진다. 미래 세대가 체념을 배우기를 바라는가. 


나는 350분간 언어의 기능을 가르치고 싶다. 침묵을 가르치고 싶지 않다. 학생들은 모두 스스로 주인공이 될 역량을 갖추고 있다. 그들은 누군가의 엑스트라가 되기 위해 태어나지 않았다.


우리를 교도관과 죄수 따위로 격하하지 말기를.

원래 우리 것이었던, 마땅한 역할을 돌려 달라!


by 하람 

꾸준히 글을 쓰고 싶습니다. 


소글매거진

소글워크숍 중에 초고를 쓴 뒤 발전시켜 완성한, 수강생들의 원고를 싣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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