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주 목요일, 퇴근 후 2시간 걸려 글쓰기 수업을 들으러 갔다.
‘글쓰기 가는 목요일이네.’
같이 사는 친구도, 함께 일하는 동료도 내가 맨 백팩에 13인치 노트북을 넣어 가방 모서리 부분이 빳빳해진 걸 보고는 한 마디 건넨다. 매일같이 똑같은 일상을 살면서도 ‘글쓰기 수업 가는 목요일’이 기준점이 된다. 퇴근 후 친구와의 저녁 약속을 잡을 때 목요일은 피하고, 여러 명이 모이는 회의를 잡을 때조차 일정 잡는 데 힘을 미치는 직급은 아니지만 마음 속으로 ‘목요일은 피하시죠’하는 문장을 주문처럼 외운다.
분명 글을 잘 쓰고 싶어 갔는데 좋은 시간을 보내고 오는 것만으로 마음이 꽉 찬다. 내가 이전에 글쓰기 수업을 듣는 사람을 만났다면 할 법한 질문들을 친구들에게서 받는다. ‘글쓰기 수업 어때? 나도 글 잘 쓰고 싶은데...’
이런 질문을 여럿 받다 보면 글을 잘 쓰고 싶은 마음은 모든 사람의 열망처럼 느껴진다.
이런 질문은 대학원에서 심리학을 전공할 때에도 주변에서 듣던 말과 비슷하다.
‘심리학 공부 어때? 나도 심리학에 한 때 관심 있었는데 말야.’
이럴 때 보면 자기 자신을 잘 알고 싶은 마음과 잘 쓰고 싶은 마음은 비슷하다는 생각이 스친다. 이렇게 주변 사람들이 알 정도가 되면 나의 글쓰기 실력을 궁금해한다. 수강생 중에는 실제로 1, 2달 만에 브런치 작가가 되었다. 그래, 이건 좀 부럽다. 그리고 많이들 이야기하는 ‘에세이의 홍수’ 시대에 개나 소가 내는 에세이를 내는 만큼의 필력을 기대한다.
그러나 불행히도 개나 소는 아닌 나는 그 어느 쪽도 이루지 못했다. 개와 소가 얼마나 부지런하면 평일 중 하루에 글쓰기 수업을 듣고, 긴 글쓰기를 하고, 퇴고를 거치게 되는 건지 통 모르겠다. 출퇴근 길이 택시로 치면 서울과 경기도 간 시계외 할증이 붙는 거리를 매일같이 오고 가는 직장인은 퇴근 버스에서 내린 뒤엔 모니터 앞에 앉아 허리를 세우는 시간을 따로 가지지 않는다. 그러니 브런치 작가가 되는 일이나, 부지런한 (개나 소처럼. 누구는 개나소나 에세이작가라고 핀잔하기에) 에세이 작가가 되는 일도, 심지어 글쓰기 수업에서 15분 내외의 시간에서 짧은 액티비티를 긴 글로 고쳐 쓰는 과제도 하지 못한다.
그런데 소글 수업에서 나는 계속해서 쓰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이 마음이 얼마나 강력한지 매주 목요일 1년을 꼬박 퇴근 후에 집으로 향하는 시간보다 50분 정도를 더 멀리가는 장면을 들여다 보면 알아 챌 수 있다.
경기도 외곽의 한 대학 캠퍼스, 퇴근하고 한 줄로 모인 사람들이 세 줄로 서서 통근버스를 기다린다. 3대의 버스가 나란히 내려온다. 그 중 2번째 차인 ‘잠실행’노선 을 탄다. 탑승하는 시간은 오후 5시 40분, 각 부서의 사람들과 어색한 눈 인사를 하고 모두 창가 자리 한 자리씩 차지한다. 뒷 자리에 사람이 있는지 확인한 다음에야 의자를 뒤로 뉘이고 핸드폰에 좋아하는 음악을 선곡해놓는다. 캠퍼스 정문을 떠날 즘 버스 기사님이 직원용 통근버스의 실내등을 모두 끈다. 그렇게 버스 안이 조용해지면 사무실에서 들고 나온 과자 하나를 꺼낸다. 그리고 목요일엔 항상 과자를 두 개즘 더 챙긴다.
잠실역 출구에 버스가 정차하는 시간 6시 40분. 어두워진 하늘을 보며 버스에서 내린다. 소글 수업은 7시 30분 시작이라 비가 내리는 날이라도 생기면 교통체증이 늘어나면 초조해진다. 예상 도착시간 보다 늦는 날에는 통근버스에서 내리기 전부터 지하철 어플을 켜서 확인한다. 잠실역에서 6시 45분에 나를 태우고 갈 예정이었던 열차를 버스에서 하나 보내고, 다음 열차는 몇 분 간격으로 오는지, ‘잠실역’을 살짝 눌러 출발지로, ‘합정역’ 찍고 도착으로 누른다. 열차에 타서 퇴근길 2호선 자리 경쟁도 치열하다.
버스를 오래 타고 왔지만 그럼에도 앉아서 가고 싶은 날도 있고, 진 빼지 않은 날이라 적당한 체력이 남아 있는 날엔 다른 이들을 배려하고 싶은 날도 있다. 합정역 도착시간을 확인하고, 도착지 전 알림을 설정해놓는다.
그리고 8시 전후로 늦게 되면 소글 플러스 친구에 카톡으로 메시지를 띄운다. ‘7:50분 도착 예정입니다. 오늘도 늦어요. 얼른 갈게요. (눈물 이모티콘)’-수업 시작이 7시 30분인데 합정역에 내리면 시작 시간을 지나있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아주 멋진 타이밍의 도움과 때에 맞는 운이 모여 수업 시작 10분 전 도착하는 날은 역사 편의점으로 들어가 늘 고르는 계란 샌드위치와 아몬드 음료를 산다. 합정역의 혼잡함을 빠져나가 작업실로 향하는 골목길로 들어서면 마음이 편해진다. 한 손에는 이미 샌드위치를 뜯은 채로 씀씀 작업실에 도착한다.
수업 시작보다 늦게 와서 마주하는 기쁨은 작업실 앞 계단을 오를 때 가장 벅찬다. 창문 너머의 따뜻한 불빛과 웃음 소리를 들으며 ‘나도 얼른 저 곳에 녹아들고 싶다’는 마음으로 이어폰을 빼고 문 앞에 선다. 수업 시작보다 늦는 날이 많아지자 은성은 도어락 비밀번호를 메시지로 보내주기도 했다. ‘0000 누르고 들어와요.’하는 메시지를 찾아 소글의 터줏대감처럼 도어락 비번을 누른다. 이내 마주한 익숙한 얼굴들, 큰 테이블에 둘러 앉아 있는 옹기종기함. 마음이 쭉 펴진다. 사무실 문을 등 뒤로 닫고서 소글 수업의 문을 여는 데 걸린 2시간 30분의 시간이 신발을 벗고 실내화를 신는 순간에 사라져버린다.
함께 한 공간에서 키보드 치는 소리는 이야기가 되었다. 어느 날엔 키보드 소리 사이에 굵은 안경을 낀 엄마또래의 수강생이 마주 앉아 노트에 펜을 옮기는 모습이 글이 되었다.
어떤 이는 카페 알바를 하며 진상 손님들의 이야기를
어떤 이는 빛나게 아름다웠던 학창시절의 추억을 어제 일처럼 쓰고,
어떤 이는 육아를 하면서 떠오르는 이중적인 마음을
어떤 이는 대학 행정실 담당자가 돌아가신 아버지의 동문이었다는 사실을 알게된 일화를,
어떤 이는 어린 시절 경험한 폭력의 경험으로 성인이 된 자신의 몸을 웅크리게 하는 마음을 쓴다.
글을 쓰기 위해 모인 사람들이 물리적인 시간을 내어 따뜻한 공간 안에서 썼다. 한 세기 전에 영국의 버지니아 울프가 던진 질문은 한국, 그마저도 서울, 합정동 작은 작업실에 모여 앉은 여성들이 대답하고 있다.
글쓰기 수업을 일주일에 한번, 일년동안 꾸준히 다녀보니 아쉽게도 글쓰기 실력이 빠르게 늘지는 않았다. 분명한 진실은 ‘글쓰기는 오로지 글쓰기만을 통해서 배울 수 있다’는 것. 직접 앉아 시간을 들여 글쓰기를 온 몸으로 통과해야만 한다. 지켜본 바 수업 시간 15분동안 함께 적은 짧은 글을 주말까지의 과제인 ‘긴글쓰기’를 꾸준히 한 수강생들은 부쩍 글쓰기 실력이 나아졌다.
그럼에도 매주 여러명의 솔직한 글을 꾸준히 접하는 시간이 쌓이면서 나는 마음을 담아 솔직하게 쓰는 글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마음이 담긴 글과 아닌 글을 구분하는 일은 당시 대학의 성평등센터에서 일하던 나에게 중요한 영역이었다. 가해학생이 써온 사과문에서, 피신고인으로 지목된 학생의 프레임에 박힌 진술문에서, 미투를 처리하면서 훨씬 더 많이 배운 교수의 글까지. '나는 억울하다'는 활자가 지면을 가득 채웠다.
진솔하게 쓴 글을 소리내어 읽을 때 ‘용기’가 샘솟았던 것과는 확연히 다른 감각이다. 마음이 담기지 ‘않은’ 글이라는 걸 단번에 알 수 있다.
수강생간의 솔직한 이야기가 오갈 수 있던 팔할은 선생님이자 글쓰기동료인 은성이 먼저 내준 길 덕분이었다. 수업을 들은지 얼마 되지 않아 그의 첫 에세이집이 출간되었다. 당시, 은성의 고민들은 강의안에 다 담기지 못한 이야기였다. 그는 ‘책을 쓰고 난 뒤 성장한 자신과 과거의 이야기 속 자신’의 차이에 대한 고민을 우리에게 나누었다. 그 고백들은 망설이는 우리가 글을 쓰도록 이끌었다.
그때 나는 내 손톱 및 가시만 종일 생각했다. 내 글과 인생은 이렇게도 어려운데 남의 글이 쉽게 쓰이는 줄 알았다. 잘 읽히는 글이기에 이 책 역시 쉽게 쓰여진 걸로 생각했다. '매일 울면서 나아가는 한 걸음으로 쓴다'는 말이 희한한 위로가 되었다. 글을 쓰고, 자신이 좋아졌다는 말은 지금 내가 쓰는 글의 자양분이 되었다.
작가가 된 후에 성장하는 모습과 자기노출을 하는 은성의 용기는 강의안 너머에 있었다. 글을 쓰기 전의 두려운 마음을 먼저 알아주고, 단 한점이라도 글의 매력을 칭찬해주는 집단이기에 마음의 허들 없이 쓰게 했다. 혼자 쓴 글이 광장에서 읽혀질 때 어쩔 수 없이 생기고 마는 마음의 구멍을 메꾸어 주었다.
삶과 글의 경계가 너무 얇은 때엔 한 줄도 적지 못했지만 은성은 그마저도 존중해 주었다. 이렇게 오래 걸려 쓰이는 글도 있을 수 있다고, 이렇게 한 자도 쓸 수도 없는 글이 있을 수 있다고, 내 인생이라고 긍정해주었다.
돌이켜보면 은성의 태도는 소글 수업의 문화였다. 비슷한 결을 가진 사람들이 모였고 어색함을 희석시키기 위해 존재를 쉽게 위로하려드는 사람이 없었다. 서로의 안전한 제1의 독자가 되어주는 그 곳에서 우리는 동등했다.
나의 첫 액티비티였던 ‘엄마의 꽃분홍 지갑형 핸드폰 케이스’ 이야기’를 적은지 13개월만에 은성의 온라인 글쓰기 수업에서 탈혼 이야기를 글로 썼다. 첨삭지에 적힌 ‘직면하는 문장이 아름답다.’는 문장은 내 삶이 괜찮다고 이야기 해주었다.
덕분에 지금의 나는 쓰는 사람이 되었다. 과거에 내가 도망치려 했던 모든 것들로부터 실패한 이야기를 글로 쓰면서 살면서 다 못한 내 몫을 옹호하고 있다.
그리고 글을 쓰고 목소리를 내는 동안 주변의 사람들이 바뀌었다. 비슷한 세계관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서 함께 쓰고, 말하고 있다. 소글 수업이 방학일 때는 씀씀에 모여 글을 썼고, 토요일마다 소글 후속 모임에서 글을 쓴다. 소글의 문화를 입고서 앉아 서로의 이야기를 꾸준히 궁금해 하고, 읽고 싶은 ‘당신만의’ 이야기를 써달라고 다정하게 채근한다.
나는 앞으로도 계속 쓰고 싶다.
적극적이고 입체적인 내가, 나의 삶을 지지한다.
그렇게 한 걸음 더 나아간다.
목요일 퇴근 후 걸음 하나가 더 먼 곳의 좋은 삶으로 나를 데려다 주었다.
마몬도
심리학 전공자이지만 말이 많아 내 마음은 다른 말로 종종 덮는다 .
글로 풀어 내 마음을 짧게 말하고 싶다.
소글 오프라인 수업 멤버들과 친목도모에 힘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