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은성 May 15. 2018

프랑스의 고부갈등 <1>

남편이 프랑스 사람이라고 말하면, 여성 동지들이 궁금해 하는 게 있었습니다. 바로 시.어.머.니. 질문은 극과 극입니다.

“프랑스도 고부 사이는 별로겠지?” 혹은 “서양 사람들은 시어머니 며느리 사이도 남남이라며?”


그럴 리가 있습니까. 유럽이어도 같은 인간이고 가족관계인데요. 다만 세세한 차이가 존재할 뿐입니다. 대답은 쉽게 나오지 않더라고요. 물론 글로벌 가족을 다루는 예능 프로그램에서는 좀 얄팍할지언정 명쾌한 결론을 턱턱 내놓더군요. ‘단짝 친구 같은 고부 사이!’ ‘외국인 시어머니도 한국 시어머니와 다르지 않네요~’ 하는 식으로요.


하지만 실제 인간관계란 텔레비전의 평면적 리얼리티보다 결이 훨씬 복잡다단합니다. 도미니크와 김은성의 관계를 대체 어떻게 정의해야 할까요? 분명한 건 고부관계에 대한 흔한 오해로부터 그녀를 보호하고 싶은 마음이 들어버렸단 겁니다.

“그립고 보고 싶어. 먼 나라에 사는 할머니 같아. 친할머니처럼 허물없는 건 아니니까. 우아하고 다정한 이모 할머니 정도랄까.”


감정을 언어로 정리하고서야 깨달았어요.

‘그녀를 끈끈하게 사랑하는지는 모르겠어. 하지만 한 인간으로 좋아하는 건 분명해.’


하긴 이게 당연한 거죠. 우리 만난 지 겨우 2년째인데! 어떻게 사랑하기까지. 앞으로 어떻게 변화할지 모를 유동적 관계지만, 현재로선 호감이 가득한 관계 정도로 정리할 수 있겠습니다. 네 번의 휴가를 한 집에서 보내고 난 후의 변화인데요. 처음에 그녀를 향한 내 맘이 어땠는가 하면...떠올리기만 해도 벽장에 숨고 싶네요. B급 며느리 정도가 아니라 미친 며느리였어요. 리터럴리 CRAZY.     


(바티가 한국의 무사 사진을 열심히 뒤져서 그려 주었다)



남편이 그렸어요. ‘당신은 나를 평가할 수 없다’ ‘모두를 지배하는 24개의 반찬’ ‘크리처 레벨2’. 영화 ‘반지의 제왕’를 레퍼런스로 한 대사라고 하네요 :) 





서먹했던 고부 사이, 원인은 ‘시어머니 트라우마’

재작년 여름이었습니다. 남프랑스 시댁에서 휴가를 보내던 중, 그때는 남자친구였던 남편, 시어머니와 함께 미술관에 가기로 했습니다. 일년 간 못 만난 아들과 시시콜콜 담소를 나누며 드라이브 즐기시길 권하는 속깊은 며느리처럼 보이고 싶었을까요? 어쩐 일인지 제가 남편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도미니크더러 앞좌석 앉으시라고 말해 줘.”


우리 엄마라면 “아이고. 됐어. 커플끼리 앉아라.”라고 했을 것 같은데. 도미니크는 한번 묻더니(두세 번도 아니고!) 제 말대로 하더군요. 분노한 저는 자동차 뒷좌석에 깡패처럼 드러누워서 한 마디도 안 했습니다. 친구에게 보낼 폭풍 카톡을 미리 써두면서요.

“와. 미쳤나봐. 커플 떼어놓고 자기가 앞자리에 왜 앉아? 아들이 이뻐 죽겠나 봐. 지금 20분째 쉬지 않고 이야기해. 불어도 징글징글해진다.”


드라마 속 ‘시어머니’ 이미지를 머릿속에서 떨칠 수가 없었다.




그날 찍은 사진을 보면 제가 꽤 분위기 있게 나왔더군요? 두 사람과 멀찍이 떨어져 벤치에 앉아 깊은 사색에 잠겨있었으니까요. 돌아와서는 난생 처음으로 싸우다 물건을 던지는 행동을 했습니다.

    

우울한 마음에 방에서 맥주 한 캔 하겠다 했더니 남편은 놀라더군요.

“오늘 햇볕이 너무 아름다운데 정원에서 마시는 건 어때? 테이블 가져다 줄게.”

기가 막혔습니다. 각자의 방에서 혼술을 자주 하는 한국인과 달리 유럽인들은 알코홀릭일까 봐 좀 걱정하는 것은 알고 있었어요. 그래도 그렇지 이토록 눈치가 없을 줄이야.

“이 꽉 막힌 양반아! 시부모 눈 피해서 마시고 싶다고. 혼자서! 몰래! 시어머니가 바쁘게 집안일 하는데 며느리가 선글래스 끼고 맥주 마시라고? 정원에서? 마리 앙트와네트처럼?”


그때 남편은 제 말을 전혀 해독하지 못했습니다. 그때는 너무 흥분해서 영어도 더 안 들리고 패닉 상태여서 정확한 워딩은 다 잊어버렸는데 아마 이런 요지였을 겁니다.


남프랑스 시댁 정원의 테이블과 의자.



“은성은 손님이고 도미니크가 이 집의 주인이에요. 그녀가 자기 집안일 하는데 왜 마음이 불편해요? 여름이니까 더워서 차가운 맥주 마시는 건데 왜 불편하죠? 정 마음이 꺼림직하면 일을 좀 도울지 물어봐도 좋구요. 물론 괜찮다고 할 것 같지만요.

그런데 정말 이해가 안 가요. 오후 일정도 즐겁게 보냈는데 왜 갑자기 이렇게 화를 내는 거죠? 나에게 털어놓지 않은 무슨 중대한 문제가 있는 거죠? 솔직히 말해 주세요. 아니야. 은성 마음에 뭔가 숨어 있어요. 나에게 불만이 있는 것 같아...”


한국에선 사랑스럽던 연인이 갑자기 히스테릭한 몬스터로 변한 게 슬펐는지, 남편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하던 기억이 납니다. 계속해서 자신에게 무슨 불만이 있는 건지 물어보면서 슬퍼했어요.   


   

뻔한 며느리가 되지 않으려 모두를 불편하게 하다

그때 저는 내 안의 ‘시어머니 트라우마와 격렬하게 싸웠던 것 같아요. 어릴 적 우리집에선 거의 매일 큰소리가 났거든요.(간단히 쓰자면, 2년간 며느리 병수발을 받다 돌아가신 친할머니 침대 바닥에서 ‘며느리 악행 기록’이 발견됐던 정도? 물론 100% 거짓말이었구요)


저는 한국의 장녀답게 저는 “엄마 울지 마 왜 울어!” 하며 엄마의 기를 세워주는 한편, 무서운 친할머니와 투쟁하며 자랐구요. “네 이 똑똑한 년. 말 참~ 잘하네. 커서 변호사나 되라!”라는 악담(축복?)을 듬뿍 받았습니다.     


시어머니라는 존재가 두려우면서도 절대로 지고 싶지 않은 두 개의 마음. 저렇게 우아하게 미소 짓고있어도 속으론 하나하나 평가하고 있겠지,라는 의심. 그래서 하루는 참한 며느리인 척 하다가 하루는 굉장히 무뚝뚝하게 구는 이상행동을 반복했습니다.


어떤 태도를 취해도 결국 나답지가 않으니 하루 종일 갈팡질팡했던 거죠. 머릿 속에 계속 빨간 경고등이 깜빡거리는 기분 아세요? 평소처럼 호탕하게 웃으면 너무 호들갑스러운 사람으로 보이지 않을지, 권하는 음식을 모두 먹으면 게걸스러워 보이지 않을지, 그렇다고 깨작거리면 성의를 무시하는 걸로 보이지 않을지...사소한 행동 하나 하나에 제동이 걸렸어요. 머리가 터질 것 같은 고민에 지쳐 자꾸만 잠만 쏟아졌습니다.      


주변은 평화롭고 마음은 지옥...


어떤 인간 관계도 전형적이진 않을 거예요. 하지만 한국의 고부 관계는 꽤 전형적입니다. <아침마당>과 아침 드라마와 내 친구들의 하소연이 가르쳐 줬거든요. 도미니크를 마주할 적마다 내 머릿 속 ‘미경언니’가 혀를 찼어요. (김미경 강사의 이름에서 빌어 옴)


“긴장 풀지 마라. 외국 시어머니는 다를 거 같지? 오버하지 말고 적당히 거리를 둬. 지금은 별일 없으니 우리 며느리 예쁘다 예쁘다 하지? 당신 아들과 너 사이에 분란 생기면 태도 변하는 거 한순간이야.”     

그렇지, 철저히 공부해서 대비하자! 불안한 마음에 온라인 서점에서 ‘프랑스+고부관계’를 검색하기 시작했어요. 그런 책은 없더라구요? 그래서 남편을 지식in 삼았습니다.


“프랑스 며느리는 시댁에 안부전화 자주 해?”

“음...궁금하면 하겠지? 참. 요즘은 ‘아들이 아니라 며느리에게 전화 자주 하는 시어머니 현상’이 생겼다는 기사가 났더라. 그럼 화난 며느리가 대화 중에 종료 버튼을 꾹 눌러버린대. 하하하하.”


‘옳거니! 역시 자유의 나라 프랑스군’ 싶었죠. 파리지엔처럼 최대한 도도하고 독립적인 며느리가 되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식사 마치고 설거지도 돕지 않았습니다. 지금 와서 돌아보니...그런 건 친구네  놀러가도 합니다.


나중에 들은 건데, 제가 식사를 거르거나 화난 표정으로 책을 읽을 때면 시부모님들은 굉장히 걱정하셨다고 합니다. 남편에게 넌지시 이렇게 말하면서요.

“아이고. 한국 말을 하지 못해서 쓸쓸한가 보구나. 다음엔 꼭 은성의 친구들도 데려오렴. 머물 방도 많은데 뭐가 문제니. 다함께 남프랑스로 여행오면 되잖아.”     


다음 회에서 이어집니다.    


<프코부부>

글: 김은성 그림: 바티
프랑스어 모르는 한국여자, 한국어 배우는 프랑스 남자의 이야기입니다. 어느나라 말로 부르건 들은 척 안하는 고양이 미코와 한국에서 살고 있습니다. 국제부부의 생생한 삶을 담은 다큐적 에세이를 써 볼게요.


1 화요일마다 '더퍼스트미디어'에도 연재됩니다.


2 마감 있어야 굴러가는 인간...

원고 더 쓰고 싶어요. 편한 맘으로 원고 의뢰 주세요:) purplewater@hanmail.net



                          


매거진의 이전글 국제커플은 어느 나라 말로 싸우나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