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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은성 May 17. 2018

문장을 잘 쓰려면? 레고 쌓듯 조립만 잘 하자

잘 짜인 문장 쓰기 = 생각 쏟아 붓고 필요한 것만 제 위치에 놓기

어그로 끄는 법, 관종의 글쓰기 Ⅱ.



어그로 잘 끄는 관종 글쟁이가 되려면? 글을 잘 써야지. 이게 무슨 뜬금없는 발언이냐 할 수도 있겠다. 전편에서는 그렇게 제목이랑 첫 문장이랑 중제 등등을 잘 끌면 좋은 어그로를 낸다고 실컷 말해놓고서. 인정한다.     


하지만 지금 할 얘기는 너무도 당연하고 어쩔 수 없이 거쳐야 한다. 제목이랑 시작만 뻔지르르한 채 그 아래로 아무것도 없으면 그게 곧 속 빈 강정이고 앙꼬 없는 찐빵이고 골 못 넣는 리오넬 메시일 뿐 아니겠는가. 본 훈련을 시작하기 전 철사장을 한다 생각하고 이해해달라.


소림사 수련생들이 철사장을 거치듯 글쓰기에도 기본기 연습이 요구된다 (사진=조선일보)


말하는 대로’ 쓰면 안 된다필터링을 거쳐야     


그래서 글을 잘 쓰는 것란 무엇일까? 여기에 많은 정의와 해석이 있겠으나 내 생각에는 짜임새 있게 쓰는 게 가장 먼저다. 기승전결 같은 구성도 구성이지만 일단 했던 말 또 하지 않는 것, 문장 하나 안에 주어 하나 서술어 하나 식으로 기본 형태와 호응을 지켜주는 것 그리고 읽으면서 숨 쉴 시간은 주게 적당한 선에서 끊어주는 것까지.     


이것만 돼도 최소한 사람이 문장을 읽으면서 ‘아, 얘가 뭘 말하려는 거구나’ 하며 알아먹기가 쉬워진다. 영어도 문장 가지고 5형식씩이나 외우던 나라인데 우리말 문장도 이 정도까지는 아닐지언정 얼추 챙기기는 해야지 않겠는가.     


이를테면 이렇게 되는 거다. 만약 말하는 그대로를 글로 쓴다면 어떻게 될까?    

 

“일단은 몇 달 만에 다시 하는 일이기 때문에, 네 뭐 그렇게 공백기가 길지는 않았기 때문에, 딱히 뭐 그렇게 엄청 힘들다거나 엄청 어렵지는 않은 거 같고요. 그래서 그래도 그냥 집에서 있는 것보다는 일을 하는 게 성취감도 있고 좋은 것 같습니다.”     


말하는 대로를 받아 적으면 대략 이런 식으로 쭉 쓰인다. 물론 말하기 스킬에 따라 이보다 더 장황하게 횡설수설 발언하는 이들도 허다하다. 여러분도 여러분이 내뱉는 말을 녹음했다가 고스란히 따라 적어보라.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당신이 하고 싶은 말을 글로 쓰고 싶다고 해서 정말 그대로 그 말을 받아 적기만 하고 끝내면 곤란하다는 말이다.      


이게 과한 주장이라 생각할지 모르겠다. ‘에이, 그렇게 쓰는 사람이 어디 있어?’ 허나 실제로 이렇게 쓰는 분들이 있다! 보여줄게. 전에 내가 고쳐 써야 했던 원고 중 일부다.     


‘곤충을 무서워하는 아이들이 친근감을 느끼고 예뻐하면서 생명의 소중함을 느끼고 참여를 꺼리는 아빠들도 아이들과 함께 물도 날라주고 짐도 옮겨주면서 점점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서로 친해져서 놀이터에서 아이들을 만나도 서로 돌봐주는 가까운 이웃으로 발전함’     


‘준비하는 과정과 실행과정에 상당히 어려웠지만 지금에 와서 서로의 마음을 토탁토탁여주는 여유와 남의 일이 아니라 서로가 자기 일처럼 걱정해주고 같이 울어주고 웃어주는 모임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지역의 많은 사람들이 함께 할 수 있는 공간, 아이들을 안심하고 맡길 수 있는 공간, 엄마들이 배우고 싶은 것을 여럿이서 함께 배울 수 있는 공간, 시니어어르신들이 부담 없이 오셔서 커피마시고 쉬실 수 있는. 더 나아가 많은 경력단절여성과 일자리를 찾으시는 시니어 어르신에게 일자리를 찾을 수 있도록 하는 그런 지역 커뮤니티공간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말하는 대로를 문장화하면 이러한 문제들이 발생한다. 처음에 읽을 때에야 누가 말하는 걸 옆에서 직접 듣는 기분으로 지나갈 수 있으나 돌아오는 건 짧은 의문문 하나다. ‘무슨 말이야?’ 문장이 끝없이 이어지면서 비슷한 낱말이나 어구가 반복되고 문장의 앞뒤가 긴밀하게 연결되지도 않아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단박에 파악하기 어렵다.     


글쓰기는 눈덩이를 눈사람으로 만들어내는 과정과도 비슷하다


나누기 다듬기 빼기 잘 정리된 문장     


그럼 이것들을 어떻게 할 것이냐? 위 문제점들의 정반대로 하면 문제없다. 1, 문장 나누기, 2. 할 말 안 할 말 중 할 말만 남기기. 3. 문장 구조 갖추기 등 다듬기. 이 세 가지가 머릿속 뒤엉킨 생각을 가지런한 한 문장으로 만드는 방법이다.      


방금 위 세 가지 예시 중 하나만 골라서 같이 고쳐보자. 두 번째 걸로 해볼까?      


먼저 문장부터 나누자. 한 문장에 들어간 글자 수만 무려 84자다. 문장을 나누려면 이 덩어리 하나가 담은 주요 의미들이 총 몇 개나 되는지부터 챙겨보면 된다. 내가 직접 나누기로는 다음과 같다. 나눴으면 그에 맞게 한 문장씩 정리해주자.      


‘준비하는 과정과 실행과정에 상당히 어려웠지만 / 지금에 와서 서로의 마음을 토탁토탁여주는 여유와 / 남의 일이 아니라 서로가 자기 일처럼 걱정해주고 같이 울어주고 웃어주는 모임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다음은 이 속에서 군더더기를 없애는 일이다. 이 때 ‘이 문구는 반드시 있어야 해’ 라는 강박은 갖지 말자. 제발. 방구석을 정리할 때 ‘얘는 버리기 아까운데’ 같이 그러지 말라는 거다. 문장은 억지로 꾸밀 필요가 없다. 괜한 미사여구는 가급적 지양하자. 할 말만 정확하게 갖추면 그 문장은 이미 빛을 발한다. 걱정 마라. 없어도 된다. 정말로.     


‘준비(하는 과정과) 실행과정이 상당히 어려웠다. 하지만 지금(에 와서) 서로의 (마음을 토탁토탁여주는) 여유가 생겼다. 또 (남의 일이 아니라) 서로가 자기 일처럼 걱정해주고 같이 울어(주고) 웃어(주는) 모임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군살을 쫙 빼고 사포질하듯 약간만 마저 손질하면 아래와 같이 완성된다. 참 쉽죠?      


‘준비 및 실행과정이 상당히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서로를 다독여주는 여유가 생겼습니다. 또 서로를 자기 일처럼 걱정해주며 같이 울고 웃는 모임이 됐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내가 이처럼 고쳤다 해서 저 안이 100% 정답은 아니다. 여러분은 여러분 나름의 방식으로 또 바꿀 수 있다. 나머지 예제들도 연습해보자. 위 방법을 따라 해체하고 재조립하는 거다.   

  

레고 쌓듯 네 생각을 갖고 놀아보라     


글쓰기는 사실 자기 생각을 표현하는 것 이상의 플러스알파를 크게 요구하지 않는다. 문장 쓰기 자체는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행위가 아니다. 생각만 있으면 누구나 그걸 바로 옮겨 쓸 수 있다.   

   

다만 좋은 문장을 만드는 일은 뭘 더하느냐가 아니라 이를 어떻게 뜯어보고 어떻게 다시 짜 맞추느냐에 달렸다. 일단 들입다 쏟아 놓고 그 다음 레고를 만지듯이 알맞게 착착 쌓고 나열해 정리만 잘 하면 충분히 예뻐진다는 말이다.     


잘 읽히는 문장을 쓰는 일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 당장 부담을 갖기 전에 일단 무조건 써내려가자. 그리고 필요한 것들만 남겨 보기 좋게 배치하자. 익숙해지면 당신도 곧 사람을 끌어들이는 깔끔한 문장을 구사할 수 있을 것이다.     



〈어그로 끄는 법, 관종의 글쓰기〉 글 | 니스 '더 글리에이터 The Geuliator'

글쓰기를 축구로 시작해 메이커프로레슬링을 갖고도 이것저것 써나가고 있다. 헌데 내 지인들은 축구에도 메이커에도 프로레슬링에도 관심 없고 오로지 “나 글쓰기 교육이나 좀 시켜줘라” 하는 거다. 그래서 출발선을 끊었다. 어쨌든 이런저런 덕질 다 하더라도 모두 글쓰기로 해왔고 결국은 이게 나랑 가장 잘 맞겠구나, 해서. 확 그냥 유튜브도 열어버려?

https://www.instagram.com/nice_jangzziway/

junnisljnk@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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