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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은성 May 18. 2018

욱하는 성질 죽이기

흰둥이와 검둥이의 한방 살이 에피소드 2 

버릴 건 버리자, 아끼다 똥 돼.

자매가 한 방에서 살기 시작한 다음 제일 먼저 시작한 것이 쓰지 않는 물건 버리기였다. 20살 이후에 책 읽는 습관이 생긴 나와는 다르게 검둥이(언니)는 어릴 때부터 소설책, 한국문학, 청소년이 읽어야할 책, 역사 장르를 넘나드는 책벌레였다. E-북이 절대로 종이 책을 대체할 수 없을거라고 입을 모으고 매년 다이어리를 2-3권을 기본으로 써내려가는 자매의 클래식한 취향 덕에 책창을 가득 채우도고 넘쳤다. 특히 검둥이의 인생 만화책은 20권이 훌쩍 넘는 시리즈물이라 책장을 가득 채우는데 큰 공을 세웠다. 버릴 책과 물건들을 정리하니 2박스가 넘게 나왔고 한숨 돌리자 깔끔하게 정리된 검둥이 책장에 꽂혀있는 책에 눈이 갔다. <욱하는 성질 죽이기>.


“성격이 어떤 편이에요?” 그냥 어쩌다가 듣게 되는 식상한 질문에 나도 “둥그스름한 편이에요, 모난 성격은 아닌 것 같아요.”라는 도형을 묘사하듯 대충 대답을 던지고 나서 혼자 한참 생각했다. 나는 어떤 성격인지. 사실은 어떤 질문을 받으면 이런 대답은 실례가 아닐지, 이런 답은 너무 과도하게 잘 보이려는 속셈이 들킨 것 같기도 하고, 이렇게 돌려 말하면 뭔가 수작 부리는 듯한 태도같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3초 동안 고민하고 결국엔 입을 닫아버리는 소심한 성격이라는걸 솔직하게 말하고 싶지 않았다.


몇 가지 얘기를 해보면, 휴대폰 번호가 바뀌었다며 연락한 동기가 “나 누군지 맞춰봐!, 나 모르겠어?” 하다가 끝까지 본인을 밝히지 않던 친구에게 언니는 불같이 화를 냈고 몇 년 만에 연락한 대학동기와는 연락이 완전히 끊겼다. 어릴 때부터 알고 지내는 어른들이 어깨를 툭툭 건들이며 “안본 사이 예뻐졌네?” 하는 안부인사에도 “왜 때리세요?”라며 정색을 일삼아 어른들도 검둥이를 조심스럽게 다뤄야 할 사람으로 여겼다. 집에서는 더 한편인데..검둥이의 인내선을 넘어서면 얼굴의 근육이 모두 사라진듯한 무표정에 나를 따라 눈알만 움직인다. 그러다가 심해지면 소리도 지르고. 아마 기분이 안좋아 보이는 검둥이에게 무슨일 있냐고 물어본 것 뿐인데.. 포인트는 그 인내선이 어느정도인지 가늠이 안 된다는거다. 갑자기 화를 낸다. 갑자기 화를 내고 있다.


<INSIDE OUT 'ANGER'>


욱하는 사람들은 자기가 욱하는 사람이라는 걸 안다. 검둥이가 몇 년 전에 <욱하는 성질 죽이기>라는 책을 사 들고 들어왔을 때 알았다. 민망한 듯 웃으면서 그 책을 책장에 꽂던 것이 몇 년 전인데 아마 그 책을 다 읽지는 못한 모양인지 여전히 불 같고 욱하는 성격은 여전하다. 욱하는 성질을 가진 검둥이는 다루기 힘들지만 조금 누그러지고 차분하게 이유를 들어보면 이해가 아주 안되는건 아니었다. 별 것 아닌 문제로 한 바탕 싸우고 나면 먼저 손 내밀던 것도 언제나 검둥이었다. 성격 탓에 욱하고 나서 사과하기, 먼저 인사하기 등의 여러가지 스킬도 터득한 듯 했다. 그녀는 소심한 나와 달리 불같이 화내고 언제 그랬냐는듯 웃으면서 사람들을 대했다. 나는 아직도 화가 나 있는데 치킨 시켜 먹자며 계산은 자기가 하겠다고 말한다. 어떻게 끝까지 화를 풀지 않을 수 있을까. 아마 나한테는 이런 단순한 방법이 먹히는 걸 깨달은 것 같아 약간 밉기도 했다. 종종 친구에게는 검둥이의 욱하는 성질을 욕하면서도 욱하는 성질의 장점 같은걸 생각했다. 그리곤 욱하는 성질을 꼭 죽여야만 하나 하고 생각했다. 단박에 버릴 수 없으니 조금 더 유연하고 먼저 사과할 수 있는 마음이 있다면 욱하는 것쯤 눈 감아줄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




흰둥이

자매에서 동생을 맡고 있으며, 언니에 대한 이야기를 쓴다.

매주 금요일에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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