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소들: 6인용 식탁

by 소은성

다섯 명이다. 남자 두 명과 여자 세 명. 그 중 한 커플은 전에 한번 만났다. 그들은 영어를 할 줄 알아서 내가 나인 채로 대화할 수 있다. 그들이 말을 건네올 때, 나는 긴장을 조금 누그러뜨린다.


다른 남자 한 명과 여자 한 명은 오늘 처음 만났다. 두 사람은 하나의 거푸집에서 꺼낸 것처럼 닮았다. 진한 갈색 고수머리. 하얀 살갗은 포근하게 부풀어 있다. 남매라고 속여도 좋을 만큼 유사한 외관의 두 사람은 한 집에 사는 연인이다. 나와 눈을 절대로 마주치지 않고 대화를 나누는 낯선 연인 앞에서, 누그러졌던 긴장이 다시 솟아오른다.


나는 가볍게 그들을 스캔한다. 이방인이 되어 익힌 습관 중 하나는 타인의 겉모습에서 칭찬할 만한 꺼리를 찾아내는 것이다. 여기서 나는 상대의 옷이나 가방, 목걸이, 눈과 머리칼의 색깔 등을 유심히 본다. 인간의 몸과 몸에 걸친 무엇을 가볍게 칭찬하며 상대가 나에게 가지는 긴장과 이질감을 단번에 부수고 싶은 욕망은 어디서 올까.


불편하면 불안하다. 불안은 나의 진짜 모습을 감춘다. 나의 '진짜 모습'이 무엇이기에 이다지 집착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이 사회는 아직 나에게 익숙하지 않다. 나에게는 아직 상대의 외양에 근거해 그들의 지성이나 직업, 경제적 수준을 카테고라이징하는 기술이 없다. 좋은 점이라면 이런 것이다. 타인을 관성적으로 대하지 않게 된다. 호기심과 탐구심을 유지하기에는 이로운 상황이다. 아마 사람들이 모국과 공통점이 없는 곳으로 여행을 떠나고 싶어하는 이유가 이런 것이 아닐까. 천진하고 무구한 존재가 되고 싶어서.


검정 티셔츠에 검정 바지, 검정 탑에 치마. 티셔츠에는 레터링이나 캐릭터 하나 새겨져 있지 않아서, 나는 낙담한다. 안경을 쓰지 않은 스티브 잡스가 이성애자 남성과 여성으로 분화한 모습이다. 대화 소재를 찾지 못한 나는 술잔으로 시선을 돌리고 이내 그것을 다 마셔 버린다.


거짓말.

긍정성에서 비롯된 거짓말.

울고 싶지 않아서 빚어낸 찬란한 거짓말.


검정색을 좋아하는 취향이 재미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 무턱대고 솟아오르는 나의 불만은 실상 그들이 나의 존재를 모른 척 하는 상황에서 오는 모멸감을 외면하기 위한 까탈스러움이다. 그들은 마치 내가 없는 듯이 행동한다. 셋은 직장 동료다. 그들은 직장에서 있었던 일에 대해 수다를 떨기 시작한다. 나는 백신 의무화 반대 시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고 폭탄을 던져 버리고는 달리는 말에 깔려 죽어버리고 싶은 욕망을 애써 참는다.


내가 세상에서 가장 만나고 싶지 않은 교집합이 바로 이것이다. 외국인을 낯설어하며 먼저 말을 걸기 어려워하는 수줍은, 게다가 커플. 나는 취하지 않았을 때에는 착하게 말하고자 하는 사람이므로 '수줍다'라고 표현한다. 그러나 많은 외국인들이 그들은 '거만하다'고 말할 것이다.


프랑스 사람들은 왜 자기의 친구들을 한 저녁식사에 모아서 만나는 것일까. "미친 사람이 더 많을 수록 재밌죠."란 말이 있지만, 그건 모인 사람들이 모두 미친 사람일 때에 성립되는 극도의 재미다. 극도의 재미보다는 보장된 재미를 추구할 생각을 하지 못하는 것일까.


도무지 접점을 찾기 어려운 사람들을 한 곳에 모아놓았을 때 상념에 잠기는 건 언제나 외국인인 나다. 외국인은 보통 파티에서 단 한명의 존재가 된다. 타인들은 모르는 외국어로 쉴 새 없이 떠들어댄다. 그들은 말을 하다가 스마트폰으로 자기 나라 음악을 튼다. 내게는 전혀 흥이나 감동을 불러일으키지 않는 음악이지만, 그들은 눈을 감거나 어깨를 들썩이며 소리를 지른다. 목청 터져라 노래를 부르며 원형을 만들어 춤을 추기도 한다.


차라리 그 편이 낫다.

나는 그들의 함께 있는 열정에 박수를 보내는 일을 할 수 있다.

씰룩대는 엉덩이를 보며 깔깔거리며 술을 들이키면 시간이 흘러간다.


하지만 열정도 없는 쪽이라면?

오늘 만난 커플은 단조롭다. 이상한 소리를 내지도, 어깨를 덜썩이지도, 노래를 부르지도 않는다.

그저 간간이 웃으며 대화한다.


나는 어디 있는 걸까.

다정한 사람이나 미친 사람이 없는 파티에서 나는 마음이 찢어질 듯 아프다.


커플이 아니라면 나는 에너지를 그러모은다. 둘 중 한쪽에 다가가 굉장한 집중력으로 말을 건다. 몇 년 전 겨울에 만난 캐나다 사람 나타샤의 자아를 입고, 무엇이든 칭찬을 한다. 그녀는 오로지 실용성만 있을 뿐 어떤 디테일도 없는 나의 만원짜리 검정백팩을 바라보며 그녀는 그때의 눈이 다 녹아내릴 만한 미소를 지었다. "저렇게 예쁜 가방은 어디서 사요?" 정신을 차려보니 우리는 옆자리에 앉아 삼십분째 한국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고 우리는 페이스북 주소를 나누었다. 이후로 종종 나는 나타샤가 된다. 쉴 새 없이 떠든다. 향수 냄새가 봄 같아요, 귀걸이가 예뻐요. 이런 건 어디에서 사요? 수염은 언제부터 기르셨어요. 이런 수염은 프랑스어로 뭐라고 해요? 크리스마스 트리처럼 무성하네요. 배우 피에르 니네이 알아요? 그 사람과 너무 닮았어요. 조금만 비슷하더라도 무방하다. 정교함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긴장을 완화하기 위한 말일 뿐이니까.


상대가 타투를 했다면 소재를 찾을 노력을 할 필요도 없어진다. 타투 만세. 타투 화이팅.


오늘의 나는 여자 쪽에 희망을 건다. 모르는 사람에게 호기심을 보이지 않는 커플은 서로에게 집착이 강할 것이라는 희한한 편견 때문이다. 이성애자 커플이라면 여자 쪽에 말 거는 것이 안전하다. 첫인사를 나눈지 30분이 지나서야 한 마디를 건넨다.

"닭이 참 맛있네요."

나도 대답한다. "진짜 맛있네요."

누군가 뒤에서 끌어당기는 것처럼 몸이 가라앉는다.



일곱살 때부터 지겹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던 사람은 이민자가 되어서도 같은 감정으로 고통스러워 한다. 매일 게임처럼 아주 많은 고난이 펼쳐지지만 그것들이 공포스럽지는 않다. 배제와 차별에서 오는 분노는 두렵지 않다. 가장 두려운 것은 무기력이다. 다음의 사례는 분노 카테고리이므로, 최악은 아니다. 나에게 곤니찌와 라고 하기에 중지를 보여줬더니 반사를 하듯 똑같이 하며 뻑큐라고 외친 사내가 차라리 나에겐 더 재미있다. 그건 이야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야기에 굶주린 사람에게 이주는 어쩌면 유일한 선택지였을까.


헤픈 사람을 좋아한다. 헤프게 웃고 헤프게 농담하고 헤프게 마시고 헤프게 옷을 입은 사람을 대할 때 긴장을 푼다. 아니면 극도로 말이 적은 부류. 그런 부류에게는 다가가서 어처구니 없는 농담을 던지거나 (그 술은 화초에 주려고 그렇게 들고 있는 거예요?) 슬슬 약을 올린다(내가 아까부터 봤는데 오늘 대체 파티에 왜 온 거예요? 명상하는 줄 알았어요) 안타깝게도 이 커플에게는 헤픈 구석을 찾기가 어렵다. 단지 많이 먹을 뿐이다.


3년 전 일이 떠오른다. 파트너와 파트너의 친구와 길을 걷다가 파트너 친구의 친구 커플을 마주쳤다. 마주친 김에 그들은 저녁 식사를 함께 하기로 한다. 그 저녁 식사 자리에서 나는 전자책 리더기를 꺼내 소설을 읽었다. 디저트가 나오기까지 버티다가 더는 버티기 어려워져 양해를 구했다. 내가 소설을 읽는 사이, 그들은 대화를 나누었다. 나는 어른들이 밥을 다 먹을 때까지 식탁을 떠날 수 없는 프랑스 아이들의 처지를 동정하기 시작했다. 다음날 새벽에 나는 나를 꼭 안아주었다. 잠을 이룰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닭과 밥을 다 먹은 뒤, 타인들이 밥을 한 공기 더 청해 비울 때까지 성실하게 기다린 뒤 나는 가방을 챙긴다.

"이름이 뭐라고 했죠?"

여자 쪽은 나에게 이름을 알려주지 않았다는 것을 기억한다.

남자는 루이, 여자는 아델이라고 한다.


루이, 아델, 반가웠어요.

그들은 다음에 또 만나자며 미소를 지어보인다.

루이는 전생에 한국인이었던 것일까. 소름이 끼칠 정도로 내 이름을 정확히 발음한다.

잔뜩 화가 난 나는 그 점도 흥미롭지 않다.


내 친구들은 나를 킴이라고 불러요. 킴 카다시안!

갈색머리 커플은 이를 모두 내보이며 웃음을 터뜨린다.


현관문을 열 때마다 파트너는 내 표정을 읽는다.

내 사랑, 저녁을 재밌게 보냈어요.


아주 지루했다는 말을 삼키며 나는 문을 열쇠로 잠근다.

어쨌든 나는 나의 세계로 무사히 돌아왔다.




소은성 <친구들에게>는 한국을 떠나 프랑스 남부 작은 도시에 사는 일상에 대한 이야기를 매주 메일로 보내드리는 에세이 메일링입니다. 새로운 시즌 구독은 작가소개에서 트위터나 인스타그램에서 확인하실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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