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친구들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만 울었다. 보이는 곳에서는 웃기만 했다. 우리는 슬픔과 분노를 처리하는 방식이 달랐다. 그래서 그들은 나를 자꾸만 걱정했다.
킴, 왜 화가 났어?
생각을 하는 중이야.
킴, 왜 슬퍼보여?
생각을 하는 중이라니까.
킴, 얼굴이 오늘 검은색이야. 어제는 저 들꽃처럼 예뻤는데.
나는 매일 생각을 하고 있어. 그러다 보면 사람은 슬프거나 화가 나 보일 수도 있는 거야!
쓰고 말하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는 것이 작가의 정체성이라면 그건 이민자를 위한 불어학교의 학생1로서는 곤란한 것이었다. 고국의 가족과 친구가 그리워서 슬플 때, 내 말을 남들이 알아듣지 못해 화가 날 때, 혹은 그저 책을 읽고 글을 쓰고 등교한 날 내 얼굴은 친구들이 낯설어하는 종류로 변했다. 입가가 굳었으며 눈 주위는 뜨거워졌다. 나는 필요에 따라 나의 겉면을 바꾸는 데에는 언제나 능숙했다. 그해 가을, 급하게 친구가 필요했으므로 나는 나를 화사하게 꾸몄다.
2 <보건교사 안은영>에는 해파리라는 별명의 캐릭터가 나온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투명하게 다 보이는 성격에서 나온 별명이다. 나에게는 해파리 역을 맡은 배우의 분위기가 인상깊었다. 예각이라고는 조금도 없는 얼굴. 하얗고 맥아리 없어보이는 피부 안으로, 해류에 뒤집어지지 않을 만큼만 단단한 뼈를 품고 있을 듯한 느낌. 해파리의 반대편에는 게가 있을 것 같다. 갑각류의 껍데기는 보드랍고 연약한 몸을 외부로부터 보호한다. 안쪽의 살들은 껍데기를 붙드는 힘으로 세상으로부터 자신을 지킨다.
코로나 시대의 유럽 이민자로서 나는 차츰 해파리가 되어갔다. 락다운 동안 모든 계획은 좌절됐다. 그해 여름에는 혼자가 될 수 있을 때마다 책상을 주먹으로 내려쳤다. 그 때는 게였기 때문에. 단단한 나무 상판과 일으킨 충격은 내 껍데기를 붙드는 내부의 살에 피가 고이게 할 뿐이었다. 무엇과라도 무리를 짓고 싶었다. 내 나라에서 내가 혼자 있는 시간을 즐겼던 것은, 내가 원하기만 하면 언제든 친구를 만들 수 있다는 가능성 때문이었을까. 내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사람들, 내가 누구인지 모르고 몰라도 되는 사람들 사이에 살게 되자 혼자 있는 시간은 차갑고 맛없는 샌드위치 같을 뿐이었다.
휴, 게로서는 도무지 버티지 못하겠네.
그래서 그해 가을에 나는 해파리가 되었다. 파도에 뒤집어져 이상한 모양이 될 때마다 내 귀에 속삭였다.
아하, 그건 원래 내가 추려던 동작이었어!
3 해파리가 되니까 친구가 쉽게 생겼다. 이민자를 위한 불어학교에는 정말 여러 나라의 친구들이 있었다. 모르는 것이 너무도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내가 모르는 나라는 내가 아는 나라보다 많았다.
각국에서 온 친구들과는 언어가 통하지 않았다. 우리는 몸으로 통했다.
말 말고 몸.
글 말고 몸.
생각 말고 몸.
나는 해파리다.
흐늘흐늘 춤을 춘다.
흐늘흐늘 춤을 춘다.
내 몸은 바깥의 신호를 쉴새없이 수신해서 적절하게 반응했다.
누군가 농담을 하면 나는 고개를 흔들며 웃었다. 고개를 흔드는 건 나의 우정. 아프리칸 액센트가 강한 불어를 나는 거의 못 알아들었다. 이야기의 디테일 따위 알 수가 없었다. 화자의 표정이 웃겨서 나는 깔깔거렸다. 시험이 끝난 후엔 누군가 자기 정수리를 가리키며 울먹였다. '테러. 테러. 테러 때문이야. 나는 바보가 아니라고. 여기 박힌 폭탄 조각 때문에 단어를 매번 잊어버리는 거야. 아무리 외워도 다음날이면 까맣게 돼. 나는 대학도 나온 사람인데.' 눈물을 흘리는 건 나의 우정.
반응은 결코 나의 내면 깊이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어야 했다. 해파리처럼 흐늘거리는 나를 그들이 좋아해주어서 나는 내가 좋아졌다.
킴, 웃어봐.
킴은 머리칼을 이렇게 넘겨. 다시 해 봐.
킴은 글씨를 잘 써. 아주 똑똑한 사람 같아.
곧은 머리가 너무 예뻐. 어쩌면 그래?
내가 부드럽고 향기로운 사람처럼 느껴졌다. 거울을 보고 싶지 않아서, 나는 그들의 눈동자를 통해 나를 보기로 했다.
나는 그들을 따라했다. 가장 먼저 그만둔 것은 글쓰기였다. 그 다음에는 깊이 생각하는 일 자체를 그만 두었다. 마지막으로 독서를 그만 두었다. 글이 뭔데? 책이 뭔데? 그게 중요해? 외로움보다? 행복보다?
4 책을 읽지 않으니 시간이 많아졌다. 아, 생각을 안 하는 건 너무 자유로운 거였다. 시간이 늘어졌지만, 농담 따먹기만으로도 하루를 채울 수 있었다. 나무 아래에 앉아 유행하는 힙합을 틀고 맥주병을 땄다. 일곱 모금이 겨우 될 정도로 조그만 병이 병정처럼 우리의 주변을 지켰다. 꿀색과 밤색의 맥주를 양손에 들고 한모금씩 마시며 흐늘거리자면 해질녘이 더는 걱정되지 않았다. 행복한 가족 식사를 하는 기분으로 농담을 이어가다가도, 화장실에 가고 싶어진다는 이유만으로도 갑자기 헤어질 수 있다는 점이 가장 좋았다.
나는 원래 사람과 갑자기 헤어지는 것을 좋아하는 편이었다. 우리가 모두 따로 살아서 언제든 안녕을 고하고 혼자가 될 수 있다는 점도 마음에 들었다. 우리는 모두 흩어진 점이었고 결코 선이 될 수 없었다.
남의 언어를 빌려사는 일은 왜 이토록 고단한지 느끼지 못하도록. 쇼윈도우에 비친 내 얼굴은 왜 길 위의 사람들의 그것과 다르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도록. 나는 그들처럼 했다. 이 삶은 무엇인지, 그것의 목적이 무엇인지 생각이란 것을 할 겨를이 없도록, 시끄럽게 굴었다. 나의 주위가 절대로 고요해지지 않도록, 땅에 발을 구르고 무엇이든 소리내기를 멈추지 않으려 했다. 고요가 가장 두려웠다. 고요를 피해 달아났던 몇 달을 떠올리자면 가장 먼저 칼리드 이야기를 해야 한다.
5 불어 학교의 사람들은 기억력과 우울 관리에 크고 작은 문제를 가지고 있었다. 초급반 학생 중 다수는 아프리카, 중동 여러 나라에서 내전과 독재, 지난한 경제 위기로부터 탈출해 왔다. 태어나서 학교에 처음 다니는 사람들도 많았다. 그중에 라힘과 칼리드가 최고였다. 라힘은 자신이 너무 슬퍼서 공부를 할 에너지가 없다고 했다. 칼리드는 연필을 아주 어색하게 쥐어서 손만 보면 서너 살 정도의 아기 같았다.
첫 주에 라힘과 칼리드는 나를 이 도시에서 가장 큰 펍으로 데리고 가서 맥주를 사 줬다. “날이 너무 좋다. 집에 가기엔 아쉬운 햇볕이네!” 하교길, 정확히 펍 앞에서 라힘이 준비한 대사를 어색하게 읊기에, 나는 그 제안이 깜찍해 속으로 깔깔 웃었다.
어제 나에게 ‘칭총’이라고 인사를 건네서 한 차례 혼난 칼리드와 마주 앉았다. ‘칭총은 중국인들 발음을 비하하는 말이고 그건 나에게 가운뎃 손가락을 들어올리는 제스처와 다르지 않으며, 그러므로 처벌로 너는 나에게 매일 아침 저녁 큰 소리로 ‘안녕’이라고 인사를 해야 한다’고 주입식 교육을 시켰다. 친해질 요량은 아니었고, 내 이후에 올 다른 아시안을 구하고자 하는 의협심이었는데 칼리드는 나의 가운뎃 손가락을 너무 좋아했다. 맙소사. 다음 날부터 칼리드는 나를 열심히 ‘안녕’이라고 불렀다. 나는 김안녕이 되었다.
한낮의 펍에서 나는 맥주를 홀짝 마시고 일종의 인터뷰를 시작했다. 햇볕에 머리칼이 달궈져서 정수리가 뜨거웠다. 가벼운 신변 조사는 매번 낭떠러지로 미끄러졌다.
칼: 너는 비행기 타고 왔어? 몇 나라 거쳐 왔어?
나: 네덜란드에서 경유했어. 비행기….그래, 당연히 비행기 탔는데?
칼: 와, 훌륭하다! (엄지를 들어올리며)
나: 그럼 너는 여기 비행기 안 타고 왔어? (농담이라는 것을 표내듯 콧주름을 만들며)
칼: (손가락으로 세면서) 에피오피아, 리비아, 이탈리아, 독일…열 나라다. 열일곱살에 에리티아에서 출발해서 스물 다섯에 프랑스에 도착한 거네.
나: 마망, 파파와 함께 살아?
열일곱살이 혼자 망명했을 것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하고 물었다. 칼리드가 자기 나름의 이상한 매너로 누구도 눈치채지 못하도록 신속하고 빠르게 맥주를 두 잔 더 주문하는 동안, 라힘이 대신 답했다. 그는 아프가니스탄에서 왔다.
라: 여기 애들 다 혼자 살아.
나: 정말? 외롭겠다. 혼자라서 싫겠다.
라: 너 모르는구나. 혼자면 얼마나 좋은데. 평화롭고 조용하고. 전에는 캠프에서 모두 다같이 자니까 시끄러웠어.
나: 우리 동네 너무 작아서 심심하지?
라: 난 대도시 싫어. 여기저기 거지가 돈 달라 하고, 그런 거 보고 싶지 않아. 여기 조용해서 좋아.
나: 근사한 펍도 공연장도 없고, 심지어 H&M도 스타벅스도 없잖아.
라: 에이, 너 이사 온 지 얼마 안 되어서 잘 모르는구나. 여기 있을 거 다 있어.
그새 서버가 가져 온 맥주를 내게 권하며 칼리드가 내 질문을 잊지 않고 답을 했다.
칼: 내 다리로 걸어서 왔어. (허벅지를 손가락으로 톡톡 건드리며) 리비아 들어봤어? 리비아에서는 나흘 동안 걸어서 통과했어. 하루에 쌀밥을 내 주먹만큼 주거든? 그러면 그걸 잘 나눠서 종일 먹는 거야. 정말 배가 고파. 계속 걷고 해지면 땅에서 잠을 자. 완전히 Shit이었어.
나: 수영은 안 했어?
칼: 바다를 건넌 적도 있지. 작은 보트에 넘치도록 사람들이 타. 사람이 무거워서 배가 뒤집어지고 가라앉아. 너희 나라에도 바다 있어? 나는 생선은 잘 안 먹어.
6 다음날 아침부터 우리는 강가에서 만나 함께 학교에 갔다. 이른바 등교 메이트가 된 것이다. 하교 후에 딱히 급한 일도 없어서 하교길 메이트도 되기로 했다. 나는 그들과 눈치 없고 바보 같은 대화를 매일 했다. 코로나 때문에 고양이를 데려오지 못했다는 말은 면목 없고 나는 자라와 에첸엠을 좋아하는데 여기 없어서 기분이 안 좋다는 말은 눈치없지만, 그런 말을 멈추면 자꾸만 유니세프 후원자처럼 과하게 자애롭거나 고아원 원장처럼 무섭게 굴게 될까 봐서다. 그래도 참다가 너무 걱정이 되면 결국 이런 말을 줄줄 한다.
공부, 공부, 공부 해야지. 시간이 이렇게 많은데 왜 안해, 집에서 맨날 뭐해, 불어 공부 왜 안해, 사람은 언어를 공부해야지, 공부해야 사기 안 당하고 돈 잘 모으지, 너 계약서 사기 당해도 못 읽을 거 아냐 (불어 몰라도 돼, 아프가니스탄 친구에게 물어보면 돼, 다 잘 도와줘. 너 그런 거 잘 모르는구나!), 마리화나 하지마, 두뇌에 안 좋아, 일찍 죽을 거야 대충 살다가?
하루는 칼리드와 둘이 있을 때 이런 말을 했다. 술기운에 내 귀에 흘려넣으려고 한 말일 뿐이었다.
나는 100퍼센트 한국인 아니야, 이제. 반반 사람이다. 너도 나처럼 반반 사람이다. 몸과 마음의 반은 에리티아, 반은 프랑스. 너는 이제 100퍼센트 에리티아인 아니다. 그걸 받아들여야 해. ‘슈와지’ 배웠지? 선택이란 불어잖아. 프랑스는 너의 슈와지야. 네가 이곳을 사랑하지 않아도 어쩔 수 없어. 자기가 선택한 것은 받아들이는 거야.
다음날부터 칼리드는 노트 필기를 하기 시작했다. 노트의 첫장이었다. 그의 모국어인 암하라어처럼 네모낳게 그린 불어 글씨를 매번 나에게 보여주었다.
소은성 <친구들에게>는 한국을 떠나 프랑스 남부 작은 도시에 사는 일상에 대한 이야기를 매주 메일로 보내드리는 에세이 메일링입니다. 새로운 시즌 구독은 작가소개에서 트위터나 인스타그램에서 확인하실 수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