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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은성 Jul 14. 2023

아플 때 찾는 음식은 우리의 진짜 성격을 보여주는 걸까

랜선미식회 시즌 1

“아픈 나 자신에게 화딱지가 난다. 아픈 상태를 재빨리 벗어나고 싶은 조바심 때문에 더 스트레스를 받아서 나쁜 음식을 먹어댄다"는 은성과 “아플 때는 사람을 안 보고 싶다. 부드럽고 달콤한 음식으로부터 보호받는 느낌이 좋다"는 연주가 번갈아가며 5분씩 타이머를 맞추고 함께 쓴 글입니다. 


이미지 출처 : Pinterest


연주

아픈 건 참 싫어요. ‘내일부터 열심히 살아야지!’ 하면 감기에 걸리고, 마감이 끝나서 ‘내일부터 놀아야지!’ 하면 몸살 기운이 올라오는 것 같아요. 아프면 괜히 마음이 약해져서 이제까지 잘못 살았던 것만 같고, 오늘부터 열심히 살려고 했는데 나는 그런 깜냥이 안 되는 사람 같고, 하여튼 땅을 파고 들어가서 드러누우려고 하는 거죠. 열만 내리면 다시 잊어버릴 일인데! 


그런데 저는 죽을 참 좋아하거든요. 보통 죽 가게에는 환자가 손님으로 가니까 진상이 별로 없다고들 하잖아요? 저는 아프지 않아도 가끔 죽을 포장해서 먹어요. 예전에 잡지 회사에 다닐 때는 주말에 마감하려고 출근하면서 밥이라도 먹고 싶은 거 먹고 싶어서 죽을 포장해갔거든요. 그걸 빈 회의실에서 먹고 있으니까 지나가는 사람마다 어디 아프냐고 물어보더라고요. 어딜 봐도 아픈 사람은 아니었는데, 죽이라는 음식에는 참 강렬한 ‘환자의 음식’이라는 이미지가 있나봐요. 


그렇게 죽을 좋아하는 것이 아플 때는 위안이 되는 것 같아요. 장염에 걸려서 속을 비우는 쪽이 나을 때를 제외하면 저는 아프다고 식욕이 떨어지지는 않거든요. 사실 장염이어도 식욕은 사라지지 않아서 괴롭긴 하죠. 그런데 이제 아프면 기분은 가라앉아도 한 가지 위안은 생기는 거예요. 에휴, 이 핑계로 죽이나 먹어야겠다. 무슨 죽을 먹지? 참치야채죽? 쇠고기 전복죽? 삼계죽? 아, 소고기 장조림도 하나 추가해야지. 난 죽에 장조림 국물을 똑똑 떨어뜨려서 먹는게 그렇게 좋더라. 먹고 죽은 귀신이 때깔도 좋다는데, 먹어서 회복하겠어. 


그러니까 저에게는 죽이 환자가 좋아하는 음식이기도 해서 심신의 건강을 회복시켜주는 음식인 거죠! 아프면 너무 자극적인 것만 아니면 먹고 싶은 거 먹고 기분이라도 좋아져서 회복하려 하잖아요. ‘아파도 식욕이 있으니 다행이다, 곧 낫겠다.’ 하면서요. 


은성은 아프면 식욕이 없어지는 쪽인가요? 


이미지 출처 : Pinterest


은성

저에게는 병과 식욕에 대한 미스테리가 있어요. 아프면 엄청나게 먹어댑니다. 예전에 과로로 병이 나서 드러누웠을 적에 진짜 희한했어요. 제가 돈주고 사 먹는 일이 없는 피자를 시켰죠. 고급스러운 화덕피자도 아니고 피자헛 도미노 파파존스도 아닌 스쿨푸드 피자 한 판을 사왔어요. 앉을 힘도 없어서 누워서 한 조각씩 먹었어요! 거울에 비친 나를 보고 헛웃음이 나오더라고요. 스쿨피자 다음에는 교촌치킨 매운 맛을 주문했고, 그 다음에는 퇴근하는 동생에게 베스킨라빈스 초콜릿 맛을 부탁해서 먹었습니다. 평소에는 배달음식을 주문하는 일도 아이스크림을 사먹는 일도 거의 없는데요!


고 칼로리, 그리고 ‘배드 푸드’라고 불리우는 것들을 환자인 내가 왜 먹은 걸까….


알아요. 파괴심리죠. 아파서 일도 못하는 너 따위 짜증나, 그냥 망가려버려, 라는 심산이었을까요? 아픈 나를 나쁜 음식으로 ‘조져 버리겠다’는 복수심이었을까요? 


아무튼 저는 아파도 결코 죽을 먹지 않습니다.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유산이죠. 환자식으로 라면을 칼칼하게 끓여드시는 분이시거든요. 게다가 해외에 살면서는 더욱 라면파가 되었어요. 신라면 진라면 너구리 등이 해외러의 요양 푸드인 건 아마 저 뿐만이 아닐 거예요. 


이미지 출처 : Pinterest


연주

오 맞아요. 아플 때는 뭔가 평소에 억울했던 점까지 보상심리로 채우려고 들게 되는 것 같아요. 어릴 때 생각했던 아픈 사람의 이미지는 뭔가 연약하고, 기운이 없고, 여리고, 그런 느낌이었는데, 생각해보면 아픈 사람은 신경질적이고 예민한 쪽이 더 , 이렇게 말하면 뭔가 이상하기도 하지만 ‘정상’인 것이 아닐까 싶어요. 예컨대 동화 <비밀의 화원>의 메리는 처음에는 굉장히 예민하고 말을 툭툭 내뱉는 아이였는데, 맛있는 음식을 잘 먹으미 통통하니 살이 오르면서 행복하고 다정해져요. 


하여간, 아프면 오히려 그동안 참았던 음식을 폭발하듯이 먹는 것이 더 익숙한 모양새이기는 하네요. 사실 저는 죽을 먹고 싶은데 참고 있거든요. 죽은 탄수화물 폭탄이니까! 하지만 ‘나는 아프니까 탄수화물 먹어도 돼!’ 라고 죽을 먹는 것 같아요. 그것도 일종의 보상심리? 


이미지 출처 : 알라딘


은성 

<비밀의 화원> 이야기라면, 1박 2일로 할 수 있어요! 어른이 되어서도 종종 그 음식들을 떠올리거든요. 지난번에 뺑오레장 에세이를 쓸 때는 <비밀의 화원>에서 디콘의 어머니가 아이들에게 구워주는 “뜨끈뜨끈 김이 오르는” 건포도 빵을 너무 먹고 싶었죠. 힐링푸드 이야기하다가 건포도빵 이야기로 새버렸네요. 하지만 음식에 관한 이야기는 언제나 삼천포! 먹으면서 먹는 이야기하면서 다같이 삼천포에 빠지는 게 바로 음식수다의 묘미죠. 한상위에 차려진 여러 음식을 섞어 먹는 한식처럼요. 차례대로 서빙되고 순서를 지켜서 하나씩 먹는 프랑스식 식탁매너가 아니라요. 


아무튼, 힐링푸드 이야기로 돌아와서. 저는 언제나 나쁜 음식에 대한 억제와 폭발의 릴레이로 살아왔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연주와의 글쓰기 릴레이가 셀프 상담이 되는군요? 언제나 언제나 언제나 소주와 맥주와 와인과 코냑과 데킬라와 막걸리와 그 외의 모든 사랑하는 술과, 세상의 모든 몸에 안 좋은 음식을, 타인이 인상 찌푸릴 만한 말들과 나쁜 마음들에 관한 속내를 마구 털어놓으며 떠들다 먹고 먹고 또 먹다 잠들고 싶어요. 진정한 릴렉스죠. 


연주

피자와 치킨과 아이스크림… 그런데 이런 메뉴도 뭐랄까, 분명 성인이 된 우리의 위장에는 어느 정도 배드 푸드가 되기는 했지만, 어린 시절에 즐겁게 먹던 메뉴이기는 하잖아요? 음, 술은 그렇지 않겠지만, 술은 흔히 아플 때는 마시고 싶어도 좀 참으니까.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모르겠네요. 하하. 


아무튼, 만화나 소설 같은 매체에서 감기에 걸려서 드러누운 누군가, 그러니까 오래가는 병세가 아니어서 ‘병간호’가 특별한 이벤트가 되는 그런 순간을 그린 모습을 보면, 아이가 아플 때 엄마가 줬던 음식이 모티프로 나오죠. 


그런데 정말로 그런가? 음, 우리 엄마는 흰죽에 간장을 주기는 했죠. 배드 푸드라는 것이 정말 나쁜 음식인 걸까? 누구에게, 어디에게 나쁜 것일까? 왜 어른은 어른이 된 것이 아니라 그냥 어른인 척 하는 것일 뿐이라는 대충 뭐 이런 말이 있잖아요. 그렇다면 우리가 이성적인 척 누르고 있던, 우리 속의 아이가 나 먹고 싶어! 하는 음식을 주고 싶은 것이 아닐까? 


물론 제가 먹고 싶은 만큼 아이스크림을 먹는다면 이제는 조금 혈당과 그 외 많은 것들을 걱정해야 하는 나이이기는 하죠. 배드는 배드지. 새삼 20대 중반까지는 참으로 아이였구나 하는 생각이 드네요. 그때는 나도 성인인 줄 알았는데. 근데 제가 하반기를 계획하기 위해서 반년 전의 기록을 살펴봤는데 그때도 한참 철없는 소리를 적어놓고 있었더라고요. 아, 아프면 얘들이 이성을 뚫고 뛰쳐나오는 것 같아요. 나 먹고 싶은 거 있어! 나 죽 좋아하는데 탄수를 줄이긴 왜 줄여! 죽에 다대기에 소고기 장조림을 곁들여서 얼른 대령해! 그리고 아이스크림도 먹어! 뭐 이렇게? 기승전결 죽이다. 


그런데 정말로 그런가?

그런데, 정말로, 그런가?

이 문장을 곱씹게 돼요. 

정말로, 우리가, 그런가?


은성

저는 이런 이유로 글쓰기를 해요. 사람들이 그렇다고 생각하는 관념에 반하는 것들이요. 흰죽에 간장을 드시라고 의사는 말하지만, 사람들은 제각각 알아서 먹잖아요? 소주에 고춧가루를 쳐서 먹는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요. 연주 말대로, 배드 푸드는 정말 나쁜 음식인 걸까? 누구에게 나쁜 걸까? 하는 물음표들이 우리가 글쓰게 만드는 것 같아요. 우리가 이성적인 척, 혹은 진짜 이성으로 누르고 있던 것을 먹는 것. 어쩌면 그게 저에겐 힐링푸드일 수도 있겠어요. 


저를 이루는 키워드는 억제거든요. 현재의 저는 비글처럼 굴 때가 있고, “너 ENFP지?” 라는 소리를 듣는 사람이에요. 하지만 몇년 전까지는 인생의 모토가 ‘억제’였어요. 좋은 것을 너무! 좋아하고, 웃음을 너무! 크게 웃고, 흥이 너무! 나는 사람으로 살아온지는 겨우 7년 됐어요. 그래서 예전엔 아플 때마다 그 억제를 “에이 시발!”하면서 푸르고는, 타인에게는 결코 보여주지 않는 모습으로 혼자 식사를 한 거예요. 누워서 피자 먹기, 입에 아이스크림 묻히고 먹기, 이런 거 너무 최악이다, 너무 방만하고, 너무 더럽고, 너무 엉망이다, 기자답지 않다, 선생님답지 않다, 어른답지 않다….이런 마음이요.


어쩐지 눈물이 나는데, 이건 제가 하는 말이 진실이라는 저만의 신호예요. 


아플 때는…..늘, 언제나, 항상


과로였어요. 


내가 되고 싶은 직업이 되어 남들이 하란 만큼 일하던 시절에. 잡지 마감을 마치고 나면 꼭 몸져 누웠는데,그게 억제에 대한 반동인 걸 몰랐어요. 그렇게 온몸이 물에 젖은 솜이 되면, 그제야 힐링푸드를 먹었으니, 맑은 간장 한 술 얹은 흰죽일리가 없는 거죠. 제게 흰죽에 대한 기피는 ‘약하고 아픈 사람’의 이미지로부터의 도망이죠. 절대 환자가 되지 않겠다는 연기죠. 일하는 여자라면 공감할 마음, 아닐까요.


어쩌면 한국인 모두가요! 한국인은 아파도 김치낙지죽을 화끈하게 먹는 민족이다! 


연주

너무 알죠! 사실 제가 가장 바라는 모습은, “난 편안하고 부드러운 걸 좋아하는 사람이지만 그게 프로페셔널하지 않은 건 아니야” 같아요. 소위 ‘여성적’이라고 불리는 편안하고 부드러운 모습은 일 잘하는 프로페셔널의 이미지와 상반된다는 고정관념이 있잖아요? 하지만 저는 내가 다정한 사람이라고 해서 만만한 사람인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아니, 이야기가 어디로 흘러가는 것이지? 모르겠다! 


저는 가장 화가 나고 짜증이 나고 분노에 차 있을 때는 짠 것도 매운 것도 술도 찾지만, 아파서 온전히 나를 회복시키는 데에만 집중해야 할 때는 부드러운 것, 단 것, 다정한 것에만 둘러싸여 있고 싶어요. 이 말은 은성의 말과 모양은 다르지만 같은 의미 같아요. 아플 때는 우리 안의 아이가 튀어나오죠. 제 속의 아이는 부드럽고 다정하고 공감이 만연하는 곳에 있고 싶은 성격 같아요. 


어쩌면 아플 때 스스로가 찾아가는 음식은 우리의 진짜 성격을 보여주는 걸까요? 예컨대 아플때의 mbti, 일할 때의 mbti가 다른 거죠. 아프지 않게 되었을 때 계속 죽이랑 과일이랑 아이스크림만 먹고 싶냐고 하면 또 그렇지는 않은 것 같아요. 제 사회적 자아는 “넌 이제 그런 것만 먹을 나이가 아니야.” 거든요. 이 사회적 자아 녀석 강력하네요!


작가소개 
프랑스 알비의 은성 작가와 한국 서울의 연주 작가, 이들의 공통점은 글쓰기로 최대 출력의 도파민을 얻는다는 것! 쓰는 사람만큼 보는 사람도 즐거운, 도파민 힐링을 선사하는 작가 듀오의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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