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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은성 Jul 15. 2023

뺑오레장, 그 소용돌이 같은 매력

랜선미식회 시즌1

랜선미식회 의뢰인 : 정연주


은성, 저는 발견하면 꼭 사는 빵이 있어요. 여기에는 여러 가지 의미가 있는데 첫째로 우리 나라 빵집에 반드시 있을 거라고 확신할 수 없고 둘째로 일단 있기만 하면 제 안에서 다른 모든 빵을 누를 수 있다는 뜻이예요. 그게 뭐냐면…


뺑오레장이예요. 아, 이름만 말해도 눈물이 난다. 저는 사실 ‘겉바속촉’에 있어서 ‘겉바’보다 ‘속촉’을 아주 중요시하는 사람이거든요. 그리고 호불호가 심하게 갈리는 건포도를 아주 ‘극호’하는 사람이죠. 버터가 켜켜이 들어간 퍼프 페이스트리에 달콤한 페이스트리 크림을 바르고, 럼에 절인 통통한 건포도를 잔뜩 뿌려서, 돌돌 말아 송송 썰어서 달팽이 같은 모양으로 구워내는 바로 그 페이스트리.


이게 한국에서는 솜씨 좋은 빵집이라고 해서 반드시 팔지는 않거든요. 한 번 호텔 조식에서 발견한 적이 있는데 정말 기적 같았어요. 그날 카페라테 두 잔을 곁들여서 한 다섯 개 정도는 먹은 것 같아요. 크기는 그야말로 한 입 짜리였지만, 그 한 입이 진짜 완벽한 한 입인 거 아시죠. 겉은 바삭, 속은 촉촉한 페이스트리, 달콤함에 촉촉함을 배가시키는 페이스트리 크림, 달콤새콤질척한 건포도…. 완벽한 조화…


진심 빵집에 들어갔을 때 제일 마주치고 싶은 메뉴 1위인데, 프랑스에서는 어때요? 분명 한국보다 많이 팔겠죠? 너무 부럽다…


이미지 출처 : Unsplash


랜선미식회 해결사 : 소은성


연주의 편지를 받고 바로 빵집에 들렀어요. 세상에! 오후라서 뺑오레장이 똑 떨어진 거예요. 그런 광경은 쉽게 보기 어려워요. 뺑오레장은 히트템이었던 적이 없거든요! 보통 아무 빵이나 사들고 나오겠죠? 하지만 그날 아침엔 반드시 빵오레장이어야만 해서 빈손으로 나왔어요. 내일 아침에 꼭 수북한 빵오레장을 마주하고야 말겠다고요. 다른 비에누아즈리에 한 눈 팔지 않겠다는 의리입니다. 


프랑스에서는 버터, 설탕, 달걀을 넉넉히 넣어 발효 반죽으로 만든 빵을 비에누아즈리라고 부르는데, 주로 아침 세트 메뉴로 팔아요. 프랑스에 살면서 여행을 떠나는 날의 기쁨은 이거예요. 저는 기차역에 일찍 도착해서 이 아침세트를 들고 기차 좌석에 딱 앉았을 때의 기분을 너무 좋아해요. 고소한 빵 냄새, 따끈한 커피, 출발하는 설렘, 그리고 프랑스 기차가 제 시간에 왔다는(!) 안정감이죠.


프랑스는 자유의 나라라고 하는데, 한편 엄청난 규정의 나라이기도 해요. 뭐든 정해두는 걸 되게 좋아하고 전국이 다 비슷한 문화인 것 같아요. 어떤 베이커리에 가든 같은 세트가 있다는 것은 이들에게 안정감을 주는 걸까요? 카페라테와 크로아상, 에스프레소와 뺑오쇼콜라 등 자기가 원하는 음료와 빵을 조합해 고르는데, 모두 같은 가격이죠. 저는 꼭 에스프레소와 뺑오레장을 고르는데, 아침 메뉴에 뺑오레장이 아예 없는 빵집을 보면 주인에게 물어보고 싶어요. 대체 이유가 뭔지! 


“아니. 싫어하진 않아. 뺑오레장 위에 설탕옷이 입혀진 게 싫을 뿐이야. 설탕옷의 들큼한 맛이 없는 뺑오레장은 좋아해.”

“싫어하는 건 아니야. 크로아상이나 뺑오쇼콜라를 먹곤 하니까 뺑오레장을 먹을 기회가 없더라고.”

“중앙에 든 크림이 너무 많으면 물렁물렁해서 별로야. 크림의 양이 적절한 뺑오레장은 좋아해.”

“크로아상, 뺑오쇼콜라는 확실히 아침식사지. 하지만 뺑오레장은 오후 간식의 이미지가 강해. 오후에 난 간식을 안 먹으니까 뺑오레장을 먹을 일이 없어….”

여러 대답을 들었으나 여전히 의심스럽습니다. 혹시 건포도 때문일까요? 한국에서도 롤케익이나 백설기에 건포도가 있으면 골라내고 먹는 분들이 있잖아요. 저는 그걸 보면 ‘모아서 나한테 줘…’라고 말하고 싶어집니다. 그러고 보니, 프랑스인 중에 건포도를 좋아하는 사람은 많지 않은 듯 해요. 견과 세트에 건포도가 섞여 있으면 “에이, 난 크렌베리가 더 좋은데.” 하는 건 봤죠! 

저에게 뺑오레장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건. 포. 도 예요. 실력없는 빵집에서 사면 건포도가 럼에 통통하게 불려있지 않고 좀 말라있어요. 특히 겉면에 건포도를 잔뜩 붙여서 시간이 지나 마른 건, 너무 안타까워요. 그런 맛없는 뺑오레장을 먹고 자란 어린이가 뺑오레장에 편견을 가진 어른이 되면 어떡해요! 


이미지 출처 : Pinterest


연주는 뺑오레장을 어떤 순서로 먹어요? 붕어빵 머리부터 먹는지 꼬리부터 먹는지와 같은 질문이죠? 붕어빵이나 뺑오레장처럼 빵의 구조가 단일하지 않은 빵은 순서를 고민하게 되어요. 바삭한 바깥부터 돌돌돌 벗겨가며 먹다가 가장 안쪽의 촉촉하고 부드러운 크림으로 다가갈 것인가, 아니면 그냥 한입 한입 크게 베어물으며 바삭과 촉촉을 한번에 느낄 것인가. 이건 마시멜로우 실험에 버금가는 실험입니다. 사람의 성향을 보여주죠. 고진감래형 인간은 뺑오레장의 겉면부터 먹다가 가장 최후의 순간에 중앙의 크림 부분을 음미합니다. 반면 저는 빵의 아무 데서나 시작해 왕 왕 왕 베어 먹습니다. “빵 가운데의 크림 부분을 맨 마지막에 먹으면…아니, 그건 뺑오레장이 아니라 크림을 떠먹는 게 아닌가요?” 라고 묻고 십습니다. 바삭하고 고소한 페스트리와 달고 부드러운 크림을 한입에 섞어 먹어야한다고, 바로 그것이 뺑오레장의 철학을 먹는 것이라고 이 연사는 주장합니다!


그러고보니, 프랑스에 와서 달라진 점은 이거예요. 음식에 대해 천천히 오래 생각하기. 천천히 오래 대화하기. 이곳에 사는 사람들과는 뺑오레장을 어떻게 먹는지에 대해 아주 오래 이야기하는 마음의 여유가 있죠. 한국과는 시간의 속도가 다른 느낌인데, 처음엔 이게 너무 느리고 졸리고 시간 낭비 같아서 저는 종종 식탁 밑으로 손목시계를 보곤 했어요. “대체…언제 끝나지?” 매일은 아니지만 모임, 파티에서 프랑스 식사 시간은 때로 4시간에 육박해요. 식사에 와인을 곁들여 알딸딸해진 상태로 자정쯤에 차와 케이크가 식사의 마무리인 디저트로 나오는 것을 볼 때, 지금도 종종 놀라곤 해요. 이 긴 식사 시간 동안 사람들은 메뉴 하나 하나에 대해 길고 다채롭게 이야기를 나누어요. 그래서 저는 여전히 불어 초보이지만 희한하게도 요리 단어들은 익숙해요.그런데, 그때마다 사람들이 메뉴 하나 하나에 대해 길고 다채롭게 이야기를 나누어요. 그 덕에 저는 음식에 관한 프랑스어 단어들을 가장 잘 압니다.


이야기와 음식. 음식과 이야기. 이 빵에 대한 사랑도 이야기에서 시작됐어요. 동화 <소공녀>의 결말을 기억하나요? 소공녀 세라는 잃어버렸던 재산을 되찾아 그 돈으로 배고픈 아이들에게 빵을 나눠주기 시작해요. 세라가 아주 춥고 배고팠던 겨울날 우연히 얻은 따끈한 건포도빵 여섯 개 중에 다섯 개를 배고픈 거지 소녀에게 나눠 준 적이 있어요. 그때 세라는 자신의 영혼이 고귀하다는 것을, 돈과 지위가 사라져도 자신은 소공녀라는 것을 스스로 깨닫게 돼요. 이야기 속의 음식들이 얼마나 맛있을지를 상상하던 어린 시절, 건포도빵은 따끈하고 부드럽고 달콤한 판타지였어요. 어른이 되어 뺑오레장을 만난 순간, 동화 속 건포도빵이 이거로구나 한 거죠. 내일 아침에는 꼭 이 빵을 먹을 겁니다. 


작가소개 
프랑스 알비의 은성 작가와 한국 서울의 연주 작가, 이들의 공통점은 글쓰기로 최대 출력의 도파민을 얻는다는 것! 쓰는 사람만큼 보는 사람도 즐거운, 도파민 힐링을 선사하는 작가 듀오의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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