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은성 Jul 16. 2023

떡만둣국이냐 떡국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랜선미식회 시즌1

랜선미식회 의뢰인 : 소은성


만둣국을 좋아하는 외국인을 보셨나요? 저와 파트너는(프랑스 사람입니다) 종종 ‘한식 올림픽’을 열어요. 감자탕, 순대국, 족발은 그가 매일 밤 노래를 부르니까 랭킹 1, 2, 3 위를 예상했죠. 헌데 4위가 무려 떡만둣국이었답니다. 뜨겁고 든든하고 걸쭉한 한식류를 좋아하는 입맛이야 진작에 알았지만요. 떡만둣국은 뭐랄까, 제게는 좀 밋밋한 한식이랄까요. 한식의 키워드인 매움과 뜨거움이 없잖아요? 하얗고..맵지도 않고…불에 구워가며 먹는 화끈함이 있거나….손에 들고 뜯는 고기도 아니고요. 


한국에서 살 때 그는 만두 킬러였어요. 시장에서 왕만두 2인분을 사면 집까지 오는 동안 그 뜨거운 왕만두를 호호 불어가며 한 알 두 알 먹다가 집에 와서 제가 1인분 먹는 것을 구경하곤 했지요. 딤섬, 교자, 그리고 한국의 만두...만두류를 좋아하는 좋아하는 서양인이야 많이 알아요. 그런데 만두도 아니고 굳이 떡만둣국이라니? 너무 좋아하는 만두를 너무 좋아하는 떡과 함께 끓이는 수프니까 너무 좋았을까요?


어쩌면 프랑스인에게 떵만두꾹, 이라는 단어의 소리와 리듬이 좋은지도 모르겠어요. 이런 디테일을 물어보면 답이 재미없어서 안 물어봅니다만. 프랑스인의 답 “싸데뻥(때마다 다르지).” 아니, 세상의 모든 대답이 때마다 다르죠! 이건 한국인의 “그냥!” 같기도 하네요. 


그냥 좋아! 떡만둣국! 


사실 만두는 한국 이민자의 로망이에요. 교자, 딤섬 말고 한국 만두. 두부 당면 고기 파 챱챱챱챱 다져서 만든 손만두. 푸드 프로세서로 다져서 흐물후물해진 야채 말고, 일일이 칼로 다져서 야채의 촉촉한 즙과 아작한 식감이 살아있는 야채로 만두속을 만들어야 그 야무진 맛이 나잖아요. 하지만 살림에 지친 해외러는 비비고 냉동만두에 만족할 때가 많답니다. 


떡만둣국은 설날 음식이죠. 그러고 보면 한국인은 명절마다 부모님 고향을 재확인하는 듯 해요. 저희 집은 완전히 서울, 아 재미없는 서울 입맛이랍니다! 엄마는 서울 신촌 사람, 아빠는 충청인이고요. 저희 집은 설날에 잘 익은 배추김치를 다져서 두부, 돼지고기, 당면 등으로 속을 채운 손만두로 떡만둣국을 끓여서, 어쩐지 늘 김치냉장고에 대기 중인 알맞게 익은 알타리 김치를 납작납작 썰어서 곁들이곤 했어요. 


“몇 개?”


엄마가 부엌에서 마루로 외치면 재빨리 대답해야만 해요. 요리하는 사람은 분주하고 국물은 끓고 있고, 이렇게 급박할 수가!


 “네개? 다섯개? 아, 여섯개!” 


조금만 먹으려다가 욕심을 부리게 됩니다. 어쨌던 개수를 빨리 결정해야 해요. 그리고 자신이 정한 개수는 모조리 먹어야만 합니다. 만두의 개수는 인간의 책임감을 증명합니다. 


제 친구는 떡만둣국을 싫어해서 설날에 떡만둣국의 고기 국물만 한 사발 떠서 쌀밥 한 공기를 곁들여 먹는다기에 놀랐었어요. “전, 잡채, 나물…그 맛있는 반찬을 먹을 때에는 반드시 흰쌀밥이어야지!” 라고 친구는 말하죠. 그 말 이후로 저는 떡만둣국도 먹고 쌀밥도 먹고 …….설날 오후에는 겨울곰처럼 잠이 들어버립니다. 


연주는 떡만둣국을 좋아하는지 궁금해요. 연주의 고향에서는 설날에 떡국, 만둣국, 떡만둣국 중 무엇을 먹는지도요! 


(이것은 캠핑장에서 시판 사골 국물로 순식간에 끓인 간단 떡만둣국!)


랜선미식회 해결사 : 정연주


저는 쫀득쫀득한 떡과 손만두가 들어간다는 점에서 항상 떡만둣국은 더없이 한국적인 음식이라고 생각했는데, ‘떵 + 만두 + 꾹’ 이라고 발음하니 외국 음식일 수도 있겠다는 기분이 들어요! 하긴 곡물로 만든 반죽을 얇게 펴서 이런저런 소를 넣고 빚은 만두 스타일 음식은 세계 곳곳에서 발견되기는 하죠. 폴란드의 피에로기, 네팔의 모모, 러시아의 펠메니... 손톱만큼 작게 빚기도 하는 이탈리아의 토르텔리니도 맑은 육수에  넣어 삶아 먹기도 하니까 만둣국이라는 형식 자체는 인류 공통의 유산일지도 모르겠네요. 


하지만 놀랍게도… 저에게는 만둣국에 대한 추억이… 없어요. 부산에서는 명절에 만두를 빚지 않거든요. 어릴 때야 본인이 사는 세상이 전부니까 그게 당연한 건 줄 알았죠. 나중에 알고 보니까 우리나라 지도에 수제 만두 빚기 경계선이 있더라고요. 기후가 따뜻한 남부 지방에서는 만두가 빨리 쉬기 때문에 잘 빚지 않았대요. 진짜로 제가 만두를 처음 빚어본 것은 서울로 대학을 오고 나서 이모네에 살기 시작했을 때였어요. 꼭 짜서 송송 썬 김치를 넣어서 슴슴한 속을 잔뜩 채우고 만두피로 예쁘게 만두를 빚었죠. 그걸 정성 들여 찌고, 만둣국을 끓이고. 맛있었어요! 맛있었지만 제 추억의 음식은 아니었던 거죠. 


하지만 떡국은 단연 제 최애 명절 음식이예요. 정말 좋아하지만 너무나 명절 음식이어서 가끔씩 ‘아니, 신정에만 떡국을 먹으라는 법은 없잖아?’ 하면서 아무 날도 아닌 날에 끓이죠. 떡국 본인은 그 사실을 알고 있을까요? ‘떡국을 먹으면 한 살을 먹는다’는 이야기 때문에 아이들은 퍼먹고 어른들은 한 그릇도 거부한다는 우스갯소리를? 다른 음식들은 말할 거예요. 넌 그래도 너만을 위한 날이 있잖아, 좋겠다. 하지만 떡국은 생각할지도 모르죠. 난 매일 평범하게 사랑받고 싶어. 


아니, 이게 무슨 소리야. 아무튼 제가 사랑하는 추억의 음식은 떡국이라는 이야기예요. 은성, 다음 날의 떡국을 먹어본 적이 있어요? 왜 ‘심야식당’에 나오잖아요, ‘어제의 카레’. 카레는 하루 묵어서 들어간 모든 재료의 맛이 완전히 어우러지고 걸쭉해진 것이 정말 맛있죠. 그런데 어제의 떡국은 어제와는 완전히 다른 모습을 하고 있어요. 만약에 삶은 파스타를 건져낼 때처럼 국물에서 모든 떡을 건져냈다면 문제가 없겠죠. 하지만 미처 그릇에 들어가지 못하고 그대로 국물 속에서 다음날을 맞이한 떡국떡은 이게 누구인가 싶을 정도로 퉁퉁 불잖아요. 


우리 엄마는 그걸 좋아했어요. 어제의 떡국. 그것도 식은 떡국이요. 제 생각에는 그래서 일부러 내일을 위한 분량까지 가늠해서 떡을 넉넉히 넣으신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해요. 명절 음식을 잔뜩 만든 다음날, 다들 나른하게 남은 명절 음식이나 데워 먹으면서 텔레비전을 보고 수다를 떨고 낮잠을 자는 날, 엄마는 마치 길티 플레저를 즐기듯이 식은 떡국을 따로 한 그릇 떠서 맛보곤 하셨어요. 


재미있는 건 저도 그걸 따라하다 이제 어제의 떡국을 좋아하게 되었다는 거예요. 지금도 누군가가 어떤 음식을 좋아한다 혹은 싫어한다고 말하면 왜 좋아하는지, 왜 싫어하는지가 너무너무 궁금해서 이유를 캐묻곤 하는데, 어릴 때는 혼자서 생각만 했지 제대로 물어볼 줄은 몰랐어요. 그래서 혼자 식은 떡국을 한 입씩 먹어보면서 생각하는 거예요. 


‘엄마는 왜 식은 떡국을 좋아하지? 얘는 어제 먹은 떡국이랑 뭐가 다른 거지? 하긴, 어제는 고명을 막 뿌린 참이어서 파가 아삭아삭 살아있었는데 지금은 숨이 죽어서 향도 맛도 거슬리지 않긴 해. 근데 떡은 어제의 두 배 크기는 되겠는데. 나도 딱히 싫은 건 아닌데. 왜 이렇게까지 커지는 거지? 아, 육수를 머금은 건가? 갓 끓인 떡국의 떡은 삶기 전보다는 부드럽지만 기본적으로 쫀득하잖아. 그런데 얘는 그냥 내 입 안의 일부인 것처럼 녹아드네. 엄마는 그게 좋은 걸까? 아, 그런데 이거 만약에 썰지 않았으면 물떡 아니야?’


그렇습니다. 저는 저만의 답을 찾았어요. 이건 얇게 저민 물떡이었던 거예요. 은성, 물떡을 알죠? 겨울에 부산의 길거리 분식집에 들어서면 어묵 국물에 푹 잠겨서 어묵 꼬치만큼이나 강력한 존재감을 자랑하는, 꼬챙이에 꽂은 굵은 가래떡. 국물에 아주 퉁퉁 불어서 간이 제대로 배어 있으면서 부드럽고 쫀득하기로는 따라올 떡이 없어요. 


그러니까 퉁퉁 불은 어제의 떡국은 얇게 썬 물떡이었던 거예요. 그런데 이제 진한 멸치 육수가 아니라 고기 육수를 머금은. 저희 집 떡국은 양지머리로 국물을 내거든요. 외할아버지가 실향민이어서 고기 육수로 만든 떡만둣국을 주로 먹고 자란 엄마가 만들어주던, 만두는 없지만 양지머리가 듬뿍 들어가고 대파를 송송 썰어 넣은 떡국. 엄마는 왜 본인이 먹고 자란 만두는 안 넣으셨을까요?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제 추억의 떡국은 이런 모양새입니다. 원래 제일 좋아하던 떡국이었죠.




그런데 엄마가 끓여주던 떡국을 먹던 시절이 인생 제 1막이라면, 제가 만든 떡국을 먹는 시절은 인생 제 2막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어요.제가 만든 가족과 함께 신정을 맞이하기 시작하면서 떡국을 직접 끓이기 시작했으니까요. 집에서 독립한지는 약 19년이 되었지만 지금도 뭔가를 만들 때면 엄마한테 전화해서 ‘그건 어떻게 만들어요?’ 하고 물어보곤 하죠. 처음에는 제가 만드는 떡국도 엄마가 만드는 것과 비슷한 형태였어요. 하지만 음식 공부를 하고 갖은 음식 컨텐츠를 접하면서 제 떡국이 바뀌어가는 거예요. 


재미있는 것은 그 근본은 변하지 않는다는 것. 국물은 양지머리 육수, 고명은 파와 달걀과 김가루, 곁들이는 김치는 김장 배추김치! 하지만 원래 깍둑 썬 양지머리를 폭폭 삶던 엄마 레시피 대신 양지 덩어리를 넣고 전날 국물을 낸 다음 고기는 결대로 찢어서 양념을 하기 시작했어요. 대파를 큼직하게 썰어 넣는 엄마식 대신 대파 흰부분이나 실파를 아주 곱게 송송 썰어서 넣고요. 무엇보다 달걀은 절대 지단을 부치지 않고 곱게 풀어서 달걀국을 만들듯이 둘러버립니다. 모든 재료가 부드럽게 씹히는 감각을 느끼고 싶거든요. 아삭거림은 오로지 파와 김치뿐이길. 


아 그리고, 두둥! 


만두를 넣기 시작했어요. 


제 파트너는 강원도 출신이거든요. 김치를 기가 막히게 담그시고 항상 맛깔난 밑반찬을 5~6종 이상 갖추고 있는 시댁에서는 바쁘지 않을 때면 김치를 듬뿍 넣은 손만두를 빚어서 냉동해두곤 하고요. 슴슴한 메밀배추전을 부치고 도토리묵도 직접 쑤어서 무친 다음 싸주세요. 떡국도 물론 떡만둣국이죠. 


하지만 제 주방을 지배하는 사람은 나. 그리고 파트너는 진짜 싫어하는 음식이 아닌 이상 덤덤하게 주는 대로 먹는 사람. 그러다보니 결혼 후 거의 8년이 되어가도록 제가 오로지 떡국만 끓였다는 사실을 인터넷의 ‘대한민국 만두 안 빚는 지역 지도’를 보고서야 깨달은 거예요. 아, 내 파트너의 떡국은 떡만둣국이었구나! 내가 먹고 자라질 않아서 정말 생각도 해보지 않았구나! 


사실 떡국을 떡만둣국으로 변신시키는 것이 어려워봤자 얼마나 어렵냐고요. 떡국떡을 넣기 전에 ‘만두 몇 개 먹을래?’ 물어보고 넣으면 그만이잖아요. 저는 먹기 싫으면 안 먹으면 되죠. 심지어 본인이 공식적으로 밝히길 ‘우리 집 손만두는 김치만두여서 내 취향이 아니다. 난 시판 고기만두가 좋다.’라고 했기 때문에 만두도 비비고 냉동만두를 넣으면 돼요. 이 쉬운 걸 그동안 떠올리지도 못하고 있었다니? 


그래서 우리 집 떡국은 커스터마이징 떡(만둣)국이 되었습니다. 떡을 넣기 전까지는 똑같이 끓이고, 떡국떡과 함께 파트너를 위한 만두를 ‘몇 개 먹을래?’ 물어보고 넣기. 달걀물을 풀고 김가루를 뿌리고, 김장김치를 꺼내 썰기. 음식을 가리지만 면은 좋아하는 아기를 위해서 따로 삶은 소면을 떡국 국물에 말아주기. 배부르게 먹은 다음 설거지까지 끝낸 후에도 저를 위한 다음 날의 떡국까지 기대할 수 있는, 인생 제 2막의 떡(만둣)국.



우리 집 떡(만둣)국 완전분석

국물: 양지머리 육수를 전날 내서 식힌 다음 고기를 결대로 잘게 찢을 것
고명: 결대로 찢은 고기에 양념, 파는 대파 흰 부분이나 실파 송송, 김가루
달걀: 지단 대신 곱게 풀어서 간을 한 다음 달걀국처럼 풀어서 익히기
곁들임: 김장 배추김치 

포인트: 만두는 가족이 원하는 만큼, 그리고 다음 날의 떡국이 맛있다.




작가소개 

프랑스 알비의 은성 작가와 한국 서울의 연주 작가, 이들의 공통점은 글쓰기로 최대 출력의 도파민을 얻는다는 것! 쓰는 사람만큼 보는 사람도 즐거운, 도파민 힐링을 선사하는 작가 듀오의 탄생.

매거진의 이전글 뺑오레장, 그 소용돌이 같은 매력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