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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은성 Jul 18. 2023

매운 탄수 인간의 꿈과 로망, 떡볶이

랜선미식회 시즌1

'이민 중에는 원수가 초대해도 떡볶이 디너라면 갈 것이다'라는 은성과 
'내가 생각하는 떡볶이 이데아를 찾아 헤멘다'는 연주가 
번갈아가며 5분씩 타이머를 맞추고 함께 쓴 글입니다.


사진 출처: pinterest


은성

이민자들은 밤 루틴이 있어요. 바깥에서의 외국어 생활을 끝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한국 음식 인스타나 유튜브 등을 보는 거죠. 저는 이민 초기에 인스타에 주로 떡볶이, 라볶이, 쫄볶이 등을 검색했어요. 소파에 벌러덩 누워서 작은 폰으로 그 빨갛고 부글부글대는 영상을 보고 있는 모습이란, 외부에서 보기에는 스파이시 푸드 어딕트 같을 거예요. 떡볶이처럼 한국에서는 싸고 평범하지만 외국에서는 그 재료 하나하나가 귀한 것을 그리워하는 게 이민생활 같아요.


 이민자들이 한국에 오면 친구들은 귀한 음식을, 예컨대 한정식 같은 것을 대접하고 싶어하는데 오우, 노우! 김밥천국에 데려가 주세요 플리즈, 가 됩니다. 떡볶이, 김밥, 순대, 쫄면 같은 걸 한상 차려주는 게 최고의 대접이에요. 하여튼 저는 이민 생활 내내 떡볶이 신드롬에 시달리고 있는데요. 원수가 초대해도 떡볶이 디너라면 한번 가볼까 고민이 될 정도로요. 


그래도 저는 떡을 직접 뽑아보는 건 안했는데, 이민 온지 몇 개월 안 된 한국 친구가 집에서 밀떡을 만들었는데 만드는 건 3시간 먹는 건 5분이더라며 허무하다고 하더라고요. 밀가루 반죽을 해서 손가락 굵기로 밀어서 짧게 잘라서 물에 한번 데쳐서 적당히 말리면, 네. 시장에서 3천원이면 산더미처럼 살 수 있는 밀떡이, 소박하게 완성된답니다. 


그런 걸 매일 매일 하는 게 불행한 한식 러버의 이민생활 같아요. 떡, 고추장, 오뎅 등을 다 살 수 있긴 한데…저희 집은 아주 외지라서 한인마트가 없고 한식 쇼핑몰 배송비는 너무 비싸고….전세계 물가는 오르고….아아, 하다가 결국 대장금이 됩니다. 고추장을 만들고 떡을 뽑고 김치를 담그고, 그러다 저는 떡뽑는 기계까지 알아봤다니까요!


사진 출처: 쿠팡


연주

어떡해 라볶이 너무 맛있을 것 같아요(의식의 흐름으로 말하기 시작하기)


원수가 초대한 떡볶이 디너라니! 너무 음식 추리소설의 도입부 같아서 가보고 싶어졌어요!


저는 사실 떡볶이에 크게 어떤 감정을 안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거든요. 그러니까 떡볶이가 그렇게 특별한 음식이 아니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근데 이민 생활에서 떡볶이를 그리워하는 이야기를 들으니까… 그러게, 그건 어떻게 보면 떡볶이가 사방팔방에 존재하는 환경에 사니까 귀한 줄을 몰랐기 때문이었던 것 같기도 해요. 아니면 매운 음식을 먹을 수 있게 된 것이 비교적 최근, 그러니까 성인이 된 후에도 최소 7~8년은 지난 이후여서 그런 것일 수도 있고요. 그런데 어릴 적에 먹은 매운 음식들 중에서 그렇게 좋아하는 것은 없거든요. 예컨대 라면도 저는 매운 라면은 일절 먹지 않아요. 제가 먹을 수 있는 최대한으로 매운 라면은 비빔면? 매워서 저를 괴롭게 하는 음식 중에 그렇게 당기는 것은 거의 없달까. 하지만 떡볶이는 안 맵고 맛있는 것을 찾아 헤맸던 것을 생각하면 사실 굉장히 좋아했던 것이 아닐까요. 


매운 것을 조금은 먹을 수 있게 되면서, 그 당시에 ‘죠스떡볶이’가 대학교 앞에 생기면서 가끔 사먹었거든요. 하지만 청양고춧가루일 것 같은 매운맛에 사실 몇 개 먹지는 못했어요. 그런데 아직도 기억하는 순간이 있는데, 저희 대학교에 600주년 기념관이라는 건물이 있거든요. 그 건물 학생 식당에서 떡볶이가 나온 적이 있는데 그 떡볶이가 너무너무 제 입맛에 딱 맞았던 거예요. 지금 생각하면 거의 물엿에 고춧가루를 갠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빨갛고, 윤기가 흐르고, 살짝 맵지만 달콤했어요. 와 내가 먹고 싶었던 떡볶이가 이거인 것 같아!

 

그리고 매운 것을 먹지 못하지만 떡볶이는 좋아하는 저는 계속 제가 먹고 싶던 그 떡볶이를 찾아다니고 있는 거죠. 말하자면 이민 중에 떡볶이 자체를 그리워하는 은성처럼, 저는 내가 먹고 싶던 그 떡볶이… 어디에 있어…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야… 심지어 내가 만들어도 그 맛이 아니야(제일 괴로운 파트) 이렇게, 망령처럼요.


사진 출처: 무신사


은성

진라면 순한맛 절대 사라지지 말라! 는 트위터리안들이 있던데 혹시 연주도 그들 중 한명인가요. 너구리 순한맛, 진라면 순한맛, 모든 순한맛의 옹호자들이요. 저는 그들은 존중합니다. 다만 함께하지 않을 뿐. 하지만 저도 무식하게 매운 건 안 먹어요. 그건 매운 맛에 대한 모독입니다. 지금은 안정되었지만 전에는 한국에 방문할 때마다 떡볶이집부터 갔는데요. 1차 방문, 2차 방문…점점 떡볶이들이 실망스럽기만 하더군요. 얼마 전에는 한 떡볶이 맛집에 갔다가 주인 아주머니와 스몰톡을 했는데요. 고춧가루 가격이 천정부지로 올라서 다른 집은 고춧가루 분량을 줄이고 그만큼 캡사이신을 넣는다, 우리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 진짜 떡볶이는 질 좋은 한국 고춧가루가 생명이다, 라고 하셨어요. 과연 그 집 떡볶이는 양념을 사서 수트케이스에 넣어가고 싶을 정도로 깔끔하게 매큼한 맛이었답니다. 


연주가 말한 떡볶이는 쌀떡인가요 밀떡인가요. 너무 맵지 않고 단맛이 강한 건 인천공단 떡볶이라고 들었어요. 허여멀건해 보일 정도로 맵지 않고 달달한, 하지만 이건 밀떡이라서 일단 그대의 떡 취향을 알아야 권할 수가 있습니다. 국민학교 앞에서 컵에 담아 파는 그런 단순, 안맵, 달달 떡볶이라면….요즘의 대한민국에서는 멸종 상태예요. 저는 이 종류도 아주 좋아하는데, 그래서 종종 초등학교 앞을 어슬렁거립니다. 컵볶이 1천냥짜리를 사들고 행복해하는 중년이라니…오싹하지만 귀엽지요?


연주

후 진라면 순한맛…. 제가 가장 사랑하는 라면이예요. 제가 먹는 라면 1위, 진순이. 2위, 스낵면. 3위, 짜파게티. 진라면 순한맛의 매력은 여기서 말하기 시작하면…! 끝도 없으니까 우리 라면 편에서 다시 이야기하기로 해요. 맵지 않은만큼 추가적인 매력이 엄청난…! 아무튼, 일단 진정하자.


쌀떡파냐 밀떡파냐 라고 물으신다면 저는 솔직히 작년까지는 아묻따 밀떡파였거든요? 속까지 양념이 잘 배니까 밀떡이 진리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이게, 당연하다면 당연하지만 떡의 품질에 따라 달라진다는 걸 한 번 경험하니까 더 이상 저를 ‘무슨파’로 정의내릴 수가 없더라고요. 맛있는 쌀떡, 멋진 가래떡으로 만들었다면 당연히 쌀떡파가 될 것 같고… 아 하지만 역시 양념이 잘 배어든 밀떡은 맛있고… 식으면 딱딱해진다지만 애초에 식을 만큼이라면 저에게는 너무 많은 양의 떡볶이인 거예요. 


그런데 만약에 여기서 제 평생의 사랑, 부산러의 자랑, 떡볶이의 친구, 물떡이 등장한다? 그럼 쌀떡 자체의 매력을 논하지 않을 수 없잖아요? 다시 국물에 통통하게 불어버린 물떡. 이렇게 데친 쌀떡으로 만든 떡볶이. 이런 곳은 멸치 국물도 아주 진하게 내고, 떡볶이 소스 자체의 맛을 보증할 수 있는 곳이예요. 그렇다면 역시 쌀떡볶이가 맛있는 곳을 선택하겠다, 그것도 부산에서 물떡과 함께 파는 곳으로 가겠다, 이런 결론이 나버리겠네요. 


하지만 기억해야 할 것은 역시 작년까지는 일직선으로 밀떡파였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그 달달한 떡볶이는 인천공단에 있다고요…? 우리의 다음 만남은 떡볶이가 될까요…? 솔직히 초등학교 앞 종이컵 떡볶이 만한 것이 어디 있겠어요. 지금도 맛있는 떡볶이를 딱 그만큼만 먹고 싶긴 하거든요? 나트륨과 탄수화물일 뿐이니까… 어른에게는 쓸데없이 양심이라는 것이 있어서… 


근데 컵떡볶이 말이 나와서 말이지만, 저는 사실 떡볶이는 주문하자마자 받아드는 것이 매력인 듯 하여 즉석떡볶이는 그렇게 즐기지 않아요. 혹시 은성은 즉석떡볶이는 좋아하나요? 완전히 다른 종류의 떡볶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저는.


은성

요즘 한국에 와 있으면서, 갈망에 대해 생각해요. 한달 전이었다면 이 글을 쓸 때 반미치광이 상태였을 거예요. 지금은 밀떡 1킬로그램을 사와서 모든 매운 음식에 넣어 먹은 상태의 배부른 돼지이기 때문에 소크라테스 떡볶이러가 될 수 없네요. 관조하는 태도로 떡볶이를 바라보는 중입니다. 즉석 떡볶이라…제 친구들은 은성 이즈 떡볶이 먹는 사람, 으로 인지하기에 집초대를 해도 떡볶이를 주고 약속을 잡아도 즉떡 집을 가요. 즉떡은 신당동 골목을 가고 홍대 또보겠다 떡볶이 모든 브랜치를 갈 정도로 사랑해왔죠. 즉떡의 포인트는 파티 분위기잖아요? 쫄면일지 라면일지 우동면일지, 야끼만두일지 김말이일지 선택의 폭이 넓다는 점이 흥을 돋게 하고, 코리안 바베큐처럼 식탁에서 조리한다는 점이 아주 매력포인트죠. 결론은, 없어서 못 먹어요 즉떡!


탄수화물에 나트륨이라…제 파트너도 그렇게 이야기하면서 제가 아무리 맛있는 떡볶이를 해도 안 먹어요. *노잼음식, 이라면서요. 너무 단순하고 영양가가 없다는 거죠. 하지만 그는 밀가루와 설탕으로만 된 바클라바/한국 약과같이 찐득달콤한 터키 디저트/를 와구와구 먹습니다. 단 탄수냐 매운 탄수냐. 인간은 크게 그 2종으로 나뉩니다. 전자는 당뇨 후자는 고혈압을 주의해야 한다는 슬픈 결론을 내면서…


매운 탄수 인간이 해외러가 되면 뇨끼를 사다 떡볶이를 만들어요. 떡이 비싸니까 뇨끼를 사다가 떡볶이 양념과 야채에 넣고 끓이는데…저는….한번 해보고 울면서 다 버렸어요…뇨끼를 넣느니 차라리 라면만 넣고 라볶이를 먹겠어요. 국물에 다 퍼지더라고요.


연주

즉떡의 포인트는 파티…. 정말 그러네요. 아까 원수가 초대한 떡볶이 파티도 실존한다면 분명 두끼?(업체명 확인해야) 같은 맞춤형 재료를 넣어서 끓이는 즉석 떡볶이 형식이었을 것 같아요. 그리고 특이하게 이 사람만 먹는 재료에 독약 같은 걸 넣어서 살인사건이 벌어지는 거죠…! 피 대신 여기저기 떨어진 떡볶이 소스… 아 누가 좀 써 주면 좋겠다. 


저는 타고나길 고지혈증을 조심해야 하는 단 탄수 인간인데… 조금 더 슬퍼지네요. 근데 뇨끼는 정말 떡볶이로 만들기에는 질감이 너무, 필로이pillow-y 할 것 같아요. 차라리 수제비 반죽 같은 것이 쫀득, 하기로는 떡볶이로 낫지 않을까? 진짜 가래떡은 외국에서 직접 뽑을 수도 없고, 음식에 대한 애국심으로 DIY 마니아가 되는 이민러에게는 너무나 슬픈 음식이네요.


지금 돌아보면 그동안은 저도 떡볶이 방황 기간을 거쳤던 것 같아요. 엽떡(매워보여서 먹어본 적은 없지만)을 필두로 배달시장이 성업을 이루면서 여기저기 떡볶이 가게가 생길 때 이것저것 시켜서 먹어보긴 했거든요. 그 중에 떡볶이와 치킨을 함께 파는 한 곳 말고는, 이상하게 떡볶이에 부탁하지도 않은 작은 비엔나 소시지를 기본으로 넣어주는 거예요. 그 맛이 소스 전체에 퍼져서 저는 전혀 먹고 싶지 않은 냄새를 풍기는데. 문제는 같이 먹는 사람은 그걸 또 좋아해서, 빼달라고 말도 못하고… 그리고 배달 떡볶이는 또 양이 너무 많아요. 적당한 양에 적당한 가격으로 팔면 얼마나 좋을까? 근데 한참 먹다가 남기고 나면 다시 데워서 먹기에는 좀 구차해지는 상태가 되는 거죠. 딱 맛있을 때 맛있는 만큼만 먹고 싶은데. 근데 떡볶이란 것이 그렇잖아요. 한번 그런 생각이 들어도 쿨타임이 차고 나면 또 시키고 싶고. 


그런데 확실히 밀키트 시장이 커지면서부터는 맛있는 떡볶이 밀키트에 정착해서, 더 이상 배달은 시키지 않는 것 같아요. 그냥 집에서 밀키트로 해먹는 거죠. 적당한 양에, 약간의 양심을 달래는 채소와 달걀 등을 추가해가면서, 딱 한 끼 나눠 먹고 정리하기 좋은 메뉴로. 지금도 제 입맛에 딱 맞는 떡볶이 소스를 직접 만들 수 있게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버리지 않았지만, 그래도 급할 때 간편하게 바로 만들 수 있는 밀키트가 등장한 건 참 감사할 일이예요. 


갈망의 정도는 다르겠지만, 역시 누구나 내가 생각하는 떡볶이의 이데아를 찾게 만든다는 점에서 떡볶이라는 녀석… 한국인의 영혼에 각인된 소울 푸드라면 얘가 아닐까 싶네요.


작가소개 
프랑스 알비의 은성 작가와 한국 서울의 연주 작가, 이들의 공통점은 글쓰기로 최대 출력의 도파민을 얻는다는 것! 쓰는 사람만큼 보는 사람도 즐거운, 도파민 힐링을 선사하는 작가 듀오의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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