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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은성 Jul 27. 2023

라이스 푸딩, 미식과 괴식 사이의 국경

랜선미식회 시즌1

'라이스 푸딩은 감언이설로 꼬셔도 거의 먹지 않았다'는 은성과
 '약밥도 디저트이니 성립 가능하지 않은가?'라는 연주가
번갈아가며 5분씩 타이머를 맞추고 함께 쓴 글입니다.


사진 출처: pinterest


연주

은성, 라이스 푸딩을 좋아하나요? 달콤한 바닐라맛 우유에 쌀을 익혀서 만드는, 달콤한 쌀 디저트. 죽 같기도 하고 리소토 같기도 한데 달콤한 크림 속에서 꼭꼭 씹히는 밥알이 정말 아이들이 좋아할 것 같은 메뉴. 저는 그걸 르 꼬르동 블루 숙명 아카데미에서 프랑스 요리를 배울 때 같이 배웠거든요. 정확히 어디서 처음 들었는지는 몰라도 아마 어린 시절에 많이 봤던 영미 아동문학 한 귀퉁이에서 라이스 푸딩이라는 단어를 봤던 것 같아요. 그런 식으로 접한 다른 음식과 마찬가지로 이것도 맛있을 것 같았고 궁금했죠. 그리고 처음 먹어본 라이스 푸딩은 당연히, 맛있었어요. 그런데 같이 먹어본 같은 클래스 사람들은 영 떨떠름한 태도더라고요. 나중에 인터넷에서 라이스 푸딩에 대한 반응을 봤을 때도 밥을 달게 만든다니 말도 안 된다는 소리가  많았어요.


우리는 간도 하지 않고 지어서 반찬과 함께 먹는 밥에, 설탕과 우유를 듬뿍 넣어서 디저트로 먹는다라… 확실히 이렇게 들으면 좀 낯설기도 하네요. 거부감이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예요. 하지만 동시에 생각하는 거죠. 아니, 그런데 우리도 약밥을 지어서 먹잖아…? 그건 달콤한 디저트류인데 괜찮은 건가? 간장이 들어가서 그런가? 말하자면 떡의 재료도 쌀인데, 그건 쌀알의 형태가 사라져 있어서 괜찮은 건가? 궁금하다!


솔직히 모든 편견을 없애고 한 입 먹어보면 그냥 취향에 맞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는 평범한 디저트라고 생각하거든요. 달콤한 바닐라 우유맛, 위에 과일을 올리거나 시나몬 파우더를 뿌릴 수도 있는 쌀 디저트. 아, ‘밥 디저트’라고 생각해서 그런가. ‘쌀 디저트’라고 하면 거부감이 덜할까요? 그런 사람들은 망고에 달콤한 찰밥을 곁들이는 태국의 망고 스티키 라이스도 싫어할까요? 싫어할 것 같다. 싫어할 수도 있죠. 그냥 저는 궁금해요. 그런 사람을 붙잡고 ‘그럼 약밥은 좋아하세요? 밥알이 씹히도록 찧은 밥알찹쌀떡은 어떠세요? 혹시 버블티는 좋아하세요?’ 하고 물어보고 싶어요. 아마 그럼 저를 싫어하게 되겠죠…? 



캐러멜, 건포도 등 여러 재료를 넣어 만드는 프랑스의 리올레 제품


은성

프랑스에서 riz au lait 리올레라는 이름의 디저트.  riz au lait는 ‘우유 안의 쌀’이란 뜻이니 아주 정확한 이름이죠? 이 디저트는 한국인들이 가장 낯설어하는 종류일 거예요. 수퍼마켓 냉장코너에는 푸딩, 요거트 류 옆에 리올레가 어엿하게 있어요. 미국에선 저렴한 이미지의 간식이고 맛도 다양하지 않고 이 라이스푸딩을 싫어하는 아이들이 많다는 자료를 읽었어요. 그런데 프랑스 마트에는 밤쨈, 캬라멜 소스, 건포도 등을 섞은 여러 맛이 구비돼 있고, 이 디저트를 좋아하는 아이들도 많던데요? 


미국의 라이스푸딩과 프랑스의 리올레. 터키에서는 쌀알이 씹히는 쉬틀라치, 쌀알이 씹히지 않는 무할레비로 존재한대요. 그렇다면 각 나라의 라이스 푸딩은 본질은 같지만 디테일은 다르죠. 요네하라 마리의 음식 에세이 <미식견문록>의 할바가 떠올라요. 꿀엿의 일종인 할바는 여러 나라에서 비슷하고도 다르게 존재해요. 러시아 친구 이라가 준 디저트 ‘할바’에 꽂힌 작가는 그 환상적인 맛을 잊지 못하고 그 후 진짜 할바를 찾기 위해 노력하는데요. “땅콩과 꿀맛에 여러 가지 향신료가 섞인 맛”이 씹을수록 우러나오는 그 할바! 모스크바 출장을 다녀온 아버지가 “시장 할머니가 할바라고 하기에 사왔다”며 꺼내놓은 건 실망스럽기만 하죠. 작가는 사마르칸트, 바자르, 타슈켄트, 몰다비아, 프라하 등에서 만든  ‘할바 같은 것’을 구해서 먹어보지만 이라가 준 그 할바 맛은 아니었는데, 결국 그리스 아테네의 할바를 먹고 어릴 적 추억의 맛이 되살아나는 걸 느껴요. 이 에세이의 결론은 ‘내가 먹어본 그 많은 ‘할바 같은 것’들은 모두 혈연관계’라는 거예요. “고대에서 중세에 걸쳐 유라시아 대륙이 여러 유목민이나 상인들로 맺어져 있던 정경이 눈앞에 어린다.” 


그런데 한국인에게는 이게 참 미묘한 디저트란 말이죠? 프랑스에 오래 살면서도 이걸 한번도 안 먹어본 한국인도 많을 듯요? 하지만 저희 집에서는 인기 최고입니다. 프랑스인인 제 파트너 B는 식사 후에는 바로 냉장고로 가서 “디저트 거리가 있나?” 하는데, 리올레가 있으면 환호성을 지르고 춤을 추어요. 서너 입이면 끝나는, 조그만 유리병 안의 리올레가 식사의 마무리이자 휴식의 밤의 시작을 기쁨으로 물들이는 거죠. 우리 집은 어떤 디저트보다도  리올레가 사랑받는 집이에요. 저는 B가 먹을 때 찻숟가락 한 입 정도 얻어먹을 정도로만 좋아하구요. 


한번은 프랑스인들에게 “쌀밥에 우유를 섞는 건 한국인에게 괴식”이라고 농담하니, “태국에선 찰밥에 연유 뿌리고 망고 곁들여 먹잖아.” 라고 제가 딱 예상한 반응을 했어요. 동북 아시아와 동남 아시아의 먹는 습관은 좀 다른 것이라고 설명하면서, 한국에서는 쌀밥에 뭘 곁들이는지로 몇 십 분 수다를 떤 기억이 납니다. 



연주

쌀밥에 우유를 섞는 건 확실히 괴식이라고 느껴져요. 뭐랄까, 어릴 때는 반찬이 꼭 내가 먹고 싶은 것만 있지는 않잖아요. 저는 할머니 할아버지랑 커서 식탁에 있는 음식 중에 (안 그래도 입이 짧은데) 오늘은 무엇으로 밥을 먹어야 하나… 싶은 반찬만 즐비할 때가 많았거든요. 그러면 세 가지 선택지가 있는데 하나는 밥에 치즈랑 간장을 비비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날달걀을 섞어서 전자레인지에 돌리는 것이고, 마지막 하나가 밥에 물을 마는 것이었어요. 그러니까 ‘밥에 우유를 만다’라고 하면 그건 너무나 괴식인 것 같은 거죠! ‘밥에 콜라를 만다’는 이야기도 초등학교 때 친구들이랑 마치 괴담 이야기를 하듯이 ‘우엑~’ 거리면서 이야기한 기억이 있거든요. 


이건 밥에 대한 터부와 비슷한 것일까요? ‘밥으로 장난치는 거 아니다’라고 할 때 사실 우리는 전반적인 음식을 가지고 말한다고 받아들이기는 하지만, 그러니까 ‘밥 먹었니’라고 할 때의 밥은 진짜 쌀밥이 아니라 끼니를 말하고, 하지만 어른들 중에는 꼭 마지막으로 밥 한 숟갈을 먹지 않으면 ‘밥 안 먹었다’라고 할 때의 ‘밥’은 진짜 쌀밥이죠. 이렇게 하나의 메뉴가 밥상에서(여기도 밥이다!) 중요한 위상을 차지하는 건 생각해보면 굉장히 신기한 일인 것 같긴 해요. 외국인에게 ‘하지만 동남 아시아에서는 쌀밥에 망고를 먹잖아?’하는 생각은 어떻게 보면 당연한 것도 같은 것이, 반찬 한 입에 밥 한 입을 먹고 우선 밥을 차린 다음에 이 밥을 먹게 하는 ‘밥도둑’ 반찬을 부차적으로 설계하는 이 문화권의 감각 자체를 이해해야 하지 않나 싶어요. 하지만 또 우리는 밥과 함께 자랐으니까 그 근본적인 부분부터 설명해야 한다는 걸 빨리 캐치하지 못하는 거죠. 


아니 하지만, 그래도 결국 간장과 흑설탕으로 간을 한 약밥도 먹고 밥알이 남아 있도록 거칠게 찧은 찹쌀떡(확인 필요, 예전에 먹었던 맛있는 떡이 있었는데)도 먹는데 왜 밥과 우유의 달콤한 만남이라는 점에는 그렇게까지 거부감이 먼저 드는 것일까? 콜라를 만 밥은 정말 존재하기 힘든 것일까? 그것이 짠 반찬과의 조합이 힘들기 때문일까 아니면 ‘밥’이라는 존재의 위상이 높아서 ‘밥으로 장난치면 안된다’는 터부 때문인 것일까? 많은 생각이 드네요. 



은성

밥에 대한 터부, 라는 표현에 공감해요. 우리에게 쌀밥은 ‘밥상에 없어서는 안 되는 소중한 존재’라는 개념도 있으니까요. 같은 동북아시아 문화권인 중국, 일본 친구들은 한국인들이 밥을 많이 지어서 냉동밥 용기에 담아 저장해 두는 문화를 재밌어 해요. 맛있는 찌개나 조림을 했는데 냉동실에 밥이 없어서 당황했다는 이야기를 한국인들은 종종 하잖아요. 닭갈비, 떡볶이 등의 메뉴를 먹은 뒤 남은 양념으로 볶음밥을 만들어서 ‘밥 마무리’를 꼭 하는 문화고요. 


쌀밥은 그만큼 소중하고 꼭 있어야 하는, 그래서 망치면 안 되는 존재인 걸까요. 

혹은 ‘000은 이래야 한다’는 이야기 자체를 한국인이 많이 하는 듯도 해요. 

부먹인가, 찍먹인가. 

탕수육은 바삭바삭한 튀김을 소스에 찍어야지/아니다. 소스를 흡수해 윤기있게 쫀득해져야 한다. 

같은 논쟁을 보면 식문화에도 must 와 must not에 대해 대화하는 걸 좋아하는 듯도 합니다. 모든 것을 비비고, 덧칠하고, 섞는 식으로 엄청난 선넘기의 문화기도 하고요. 

하지만 크로아상을 와플기에 구운 크로플이나, 동양의 단팥과 서양의 버터를 하나의 빵에 끼운 앙버터를 보면 ‘해서 안되는 건 없다’의 문화기도 한데, 

유독 쌀밥과 우유의 만남만은 결사반대하는 건 재밌네요. 내 눈에 흙이 들어가도 이 결혼은 안 된다! 



사진 출처: pinterest


연주

생각해보면 그냥 밥과 우유만 섞으면 이상한 건 맞을지도… 모르지만 밥에 우유를 말아서 먹는 사람도 있다고들 하니까 이렇게 말하면 안되겠죠. 하지만 저는 설탕이 들어가서 밥이 ‘달콤해’지면서 비로소 밥과 우유의 조합이 ‘말이 되게’ 된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런 의미로 약밥은 간장의 존재가 이것은 먹어도 되는 달콤한 밥이라고 뭔가 윤허해주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기는 해요. 


저는 사실 망고 찹쌀밥을 먹어본 적이 없거든요. 진지하게 망고 찹쌀밥을 좋아하는 사람과 라이스 푸딩을 좋아하는 사람이 겹칠까? 하는 궁금증이 들기도 하고요. 음식에 대한 허용치가 높아야 하는 것일까? 어째서 라이스 푸딩이 존재하는 나라에서도 사먹지 않는 것일까. ‘쌀’이라는 부분에서 허용할 만도 한데. 아니 ‘디저트’와 ‘잘 아는 재료’의 조합이면 눈 앞에 있는 제품을 요거트 사듯이 사볼만 하다고 생각하거든요. 무엇이 그 손을 막는 것일까요?


갑자기 트위터에서 독일 마트의 과일 스시 사진을 보고 다같이 기함했던 순간이 기억나요. 누군가는 망고찹쌀밥을 생각하면 가능한 조합이다, 라이스푸딩에 과일 들어가는 조합을 스시로 만든거 아니냐, 라고 말하기도 했죠. 저도 처음에는 과일 스시 사진을 보고 이건 말도 안된다, 라고 생각했지만 이후의 설명을 들으니까 생각보다 성립 가능할 수도 있겠다 싶었어요. 


아니 정말 제가 궁금해서 그런데, 은성은 약밥을 좋아하나요? 간식으로? 밥으로? 라이스푸딩과 비교했을 때 본인의 거부도는? 



은성

겹칩니다, 겹쳐요. 우선 저는 방콕여행 중에 곤충튀김을 도전해 보고 싶을 정도로 흥이 났지만 유일하게 망고찰밥은 사 먹지 않았답니다! 리올레(라이스 푸딩)이 맛있는 디저트라고 객관적으로 생각하지만, 파트너가 권해도 거의 얻어먹지 않네요. 이건 캬라멜맛이라 달라 먹어봐, 이건 밤쨈이 들어갔어 정말 맛있네, 이건 체리가 들어가서 정말 상큼해..온갖 감언이설로 꼬셔도 거의 안 먹고요. 약밥은 네…정말 배가 고프면….아, 그래도 잘 안 먹어요. 저는 배를 채우기 위해 삼각김밥을 사먹으러 편의점에 갑니다. 극단의 솔트 파입이다. 짠 맛 좋아 인간입니다. 


그나저나 과일 스시 만드는 법 찾아보고 잠이 다 깼네요 “리조토를 만들 듯이 쌀에 설탕과 우유를 넣어 끓여줍니다. 과일과 잘 어울리도록 식초는 넣지 않습니다. 이 달달한 스시용 밥은 프랑스의 쌀 디저트 'Riz Au Lait(리올레)'와 같은 방법으로 만듭니다.” 내가 과일스시를 먹어서 내 원수가 망한대도 저는 안 먹을래요. 과일은 알록달록 컬러풀한 재료라 과일 스시가 파티 테이블에 놓이면 사진이 정말 예쁠 것 같습니다. 사진만 찍을래….


그러고 보니 과일을 아주 좋아하지만 음식에 과일이 얹어지면 먹지 않는데요. 콩국수 위의 방울 토마토, 냉면 위의 수박, 냉모밀 위의 레몬 같은 것들이요. 솔직히 말하자면, 소중한 과일이 더럽혀진 느낌이 듭니다. 너무 과격한 말이네요. 하하. 


출처: google


연주

와, 곤충 튀김이라니! 저는 인류를 식량 위기에서 벗어나게 해줄 차세대 식량원으로 곤충을 소개하는 세미나에 갔을 때도 곤충으로 만든 음식은 아직 먹어보기에 용기가 많이 필요했어요. 특히나 즐거운 경험만 하고 싶은 여행에서는 정말 손이 가지 않을 것 같아요. 어릴 때는 바닷가 앞에서 팔던 번데기도 가끔 먹었던 것 같은데, 이제는 도저히 입에 넣기 힘들 것 같네요. 어릴 때는 쥐며느리도 만지면서 놀고 음식에 대한 거부감도 덜했던 것 같은데, 왜 나이가 드니까 ‘곤충’이라는 부분이 유난히 머리에 와서 박히는 것일지.


오, 혹시 라이스 푸딩에 대한 거부감이란 이런 걸까요? 한 문화권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음식을 어린 시절부터 특정한 형태로만 먹어 왔다면 오히려 조금만 형태가 바뀌어도 부담감을 강력하게 느끼게 되는 것일까요? 어쩌면 그 변화의 시도나 색다른 형태를 ‘외세의 침략’으로 간주하고 함께 거부하는 방식으로 공동체 의식을 견고히 해 소속감으로 안정감을 느끼게 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어요. 


하지만 저의 경우에는 직업(푸드 에디터) 때문에 음식에 대한 거부감은 최대한 없애야 한다는 의무감을 가지고 있거든요. 곤충 음식도 정말 싫지만 그래도 앞으로의 단백질원일지도 모르고 어쨌든 식재료라는 면에서는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고 억지로라도 알아보고는 있어요. 처음 잡지 기자를 시작할 때에는 싫어하는 음식도 열심히 먹으면서 나는 이게 왜 싫고,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 것인지 생각해보곤 했죠. 


물론 싫어하는 음식을 억지로 먹을 필요는 절대!! 없다고 진심으로 생각하지만, 신입 당시에 했던 ‘먹어보기’ 시도를 통해 깨달은 것이 있다면 생각보다 ‘덮어놓고 싫어하는 음식’이 많다는 것이었어요. 먹어보니 맛있을 수도 있고, 이렇게 하면 싫지만 저렇게 만들면 좋을 수도 있고(회는 싫지만 육회는 좋아, 그럼 참치 포케는 어떨까?), 낯설어서 그렇지 자꾸 보면 모두가 받아들이게 되기도 하고, 따져보면 이미 익숙한 음식일 수도 있죠. 라이스 푸딩은 달콤한 밥 아니야? 나 약밥은 좋아하는데? 아 디저트에 밥이 들어가는 경우가 이미 있구나? 이런 식으로요. 


그것을 깨달으면 무엇보다 본인의 음식 지평이 넓어지잖아요. 어쩌면 정말 힘들 때 마음을 달래줄 힐링 디저트가 하나 더 늘어날 수도 있고, 새로운 취향에 눈을 떠서 해보고 싶은 경험이 늘어날 수도 있고, 여행지에서의 잊지 못할 추억이 될 수도 있고요. 그 부분이 저는 항상 안타까워요. 특히 사람들이 거부감을 많이 느끼는 음식을 보고 있으면, 최대한 그와 비슷하고 익숙한 음식을 찾아서 ‘이런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먹어보면 어때요?’라고 말하고 싶어져요. 물론 절대 강요라고 생각되지 않을 선에서요. 어쩌면 ‘몰랐던 내 맛’일지도 모르니까, 맛 사전을 늘린다고 한 입만 먹어보면 어때요? 커스터드 크림에 달콤하게 익힌 쌀, 생각보다 맛있어요, 하고.


작가소개 
프랑스 알비의 은성 작가와 한국 서울의 연주 작가, 이들의 공통점은 글쓰기로 최대 출력의 도파민을 얻는다는 것! 쓰는 사람만큼 보는 사람도 즐거운, 도파민 힐링을 선사하는 작가 듀오의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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