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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은성 Aug 04. 2023

고등어찌개와 아버지, 그리고 야근의 미스터리

랜선미식회 시즌1


랜선미식회 의뢰인: 소은성


고등어를 보면 언제나 돌아가신 아버지 생각이 나요. 아버지는 생선가시 바르는 게 귀찮다고 생선구이를 안 드시던 분인데 자반 고등어 조림은 예외였어요. 맛있냐고 물어도 “뭐, 밥이 뭐, 밥이지..” 하는 찐 충청도 사람인 그가 유일하게 해달라고 부탁했던 음식은 다섯 손가락에 꼽아요. 감자를 납작납작 썰어 넣어 자작하게 조린 고등어 조림, 여름 가지를 잔뜩 썰어 넣어 뭉근하게 끓인 고추장 찌개, 닭개장, 스니커즈 초콜렛과 코카콜라 같은 것들이요. 몇 가지 안되는 메뉴였지만 아버지 식성에는 고집이 있었어요. 예컨대 고등어 조림에는 감자(묵은지 안됨), 된장찌개에는 무(감자 안됨) 등인데요. 어른이 되어 식당에서 묵은지 고등어 조림, 감자 된장찌개를 먹고 놀란 기억이 납니다. 이건 안되는 일인데....하고요! 


프랑스에서도 겨울이면 알큰달큰한 고등어 조림에 몸이 달았어요. 걸어서 40분 거리의 냉동식품점 <Picard>에 가서 냉동고등어 한 팩을 큰 맘 먹고 삽니다. 요즘 식료품 물가가 엄청나게 올라서 뭐 하나 살 때마다 깊이 고민을 하거든요. 이 재료가 아니면 안 되는가, 진짜 안 되는가….네. 안돼요. 고등어는 꼭 먹어야 직성이 풀립니다. 고등어 조림에 밥을 뚝딱 먹어야만 해소되는 그 갈망이 있다구요! 하지만 언제나 생각컨대 생선 요리는 재료의 퀄리티가 너무나 중요해서 프랑스에서 구할 수 있는 재료로 만든 제 고등어조림에는 빈 부분이 있습니다. 하긴 싱싱한 생물 고등어, 질 좋은 한국 고추가루가 받쳐줘야 하니 분명 만만한 요리는 아닙니다. 올해는 농부인 제 파트너가 고추를 재배하니 양념장 맛은 더 나아질 거고….혹시 좋은 레시피가 있나요? 



랜선미식회 해결사: 정연주


저 너무 신기해요. 우리 집에서도 고등어 찌개가 추억의 음식이거든요. 그것도 아버지와 연관된 추억의 음식! 우리 집의 고등어는 고등어’조림’이 아니라 고등어’찌개’예요. 국물의 양이 조림이 아니라 찌개의 그것이거든요. 고등어를 가르면 드러나는 하얀 속살과 대조적으로 빨간색을 띠는 넉넉한 국물. 제가 제일 좋아하는 생선 찌개가 바로 고등어 찌개예요.


은성:

“너무 맛있겠다! 추운 겨울 저녁에 매콤짭짤한 고등어찌개 국물에 쌀밥 비벼 먹으면! 아으, 침고여....

그러고 보니 저희 엄마는 생태찌개를 자주 끓였는데 저는 생선찌개를 안 좋아했어요. 하지만 고등어찌개라면 매주 먹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오, 우리 집에서도 생태찌개를 포함한 생선찌개가 자주 식탁에 올랐어요. 알고보면 당연하기도 한데 제 고향은 바로 부산 해운대거든요. 아버지는 부산 토박이이고 어머니는 서울 토박이예요. 아버지가 서울에서 대학을 다닐 때 어머니를 만났는데, 당시 서울에서 자반고등어를 보고 이런 걸 먹으라고 파는 건가 싶은 생각이 들었대요. 고등어는 빨리 상하니까 그때만 해도 바닷가 외의 지역에서는 거의 소금에 절인 자반고등어를 팔았잖아요. 하지만 아버지는 신선한 고등어가 넘쳐나는 부산에서 살다 올라간 사람이었던 거죠.

그리고 우리 어머니는 맛있는 걸 참 맛있게 드시는 분이예요. 뭘 사줘도 맛있게 잘 먹으면 다른 것도 사주고 싶어지잖아요. 한 번은 부산에서 아버지가 어머니를 데리고 ‘고갈비’를 사준다고 찾아갔대요. 어머니는 고갈비가 뭔지 모르니까 갈비 종류겠거니 했는데 연탄불에 맛있게 구운 고등어가 나와서 깜짝 놀랐다고 하더라고요. 이렇게 보면 사람을 속인 것 같겠지만, 연탄불에 구운 고갈비는 정말 맛있어요! 반으로 갈라서 깔끔하게 손질해 노릇노릇하게 구우면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하고, 담백하고 고소하고 난리가 나요. 요즘은 특히나 코로나를 지나면서 시장 골목길의 고갈비 집이 많이 사라졌다고 해요. 마음 아픈 일이죠.


은성:

“아 너무 멋져. 어떤 소설에서 해안가 출신의 여자가 내륙으로 결혼 이주를 한 뒤 고향의 신선한 생선, 해물을 그리워하는 장면이 나와요. 대체 이걸 이 돈주고 어떻게 먹냐면서, 너무 저렴하고 신선한 고향의 바닷것을 묘사하는데...그걸 읽으며 바다사람들에게 고향의 추억은 비린 내음이겠구나 했어요.


고갈비는 정말 이름이 다했어요. 그냥 고등어 구이잖아! 하지만 고갈비라고 하면 더 귀한 느낌이에요. 저 연탄불 생선구이 너무 사랑해서 이십대에 데이트할 때마다 생선골목을 가곤 했답니다. 집에서 구우면 그 맛의 3분의 1도 못 따라잡아요. 식당 앞에서 연탄불에 산더미같은 생선을 굽는 장면이 식욕에 불을 지피죠.”


그쵸, 서울에서 부산의 해산물을 그리워하던 아버지, 내려와서 신선한 해산물을 접하고 놀란 어머니. 두 분 다 그에 관련된 이야기만으로도 풀어놓을 것이 참 많아 보여요. 그 자체가 연애담이나 마찬가지인 기분인 것 같아요. 아, 사실 우리 집의 고등어 찌개에도 전설이 있어요. 그게 무엇인가 하면…  이건 정말 농담이 아니예요. 진짜 이상하게도, 어머니가 고등어 찌개만 끓이면 아버지가 그날 야근을 해요. 제가 초등학생일 때부터 거의 90% 정도는 그랬던 것 같아요.


아버지가 고등어 찌개를 싫어해서 안 들어온 것이 아닌가? 그런 의문이 들 수 있죠. 그런데 아니예요. 고등어는 잘 상한다고 했잖아요. 그래서 보통 어머니가 장을 보러 가서 신선한 생물 고등어가 있으면 오늘은 고등어 찌개를 끓여볼까? 하는 거죠. 그러다 아버지와 전화라도 하게 되면 저녁 메뉴를 말하기도 하지만, 아무 말 없이 혼자 마음 속으로 결정해도 갑자기 아버지가 통보를 하는 거예요. 오늘은 저녁에 약속이 생겼다. 오늘은 아무래도 저녁을 먹고 들어가야겠다. 그때 가족 카톡방이 있던 것도 아니고, 저녁 메뉴를 알 리가 없는데도 말이죠.


그래서 어머니와 우리 자매는 저녁 메뉴가 고등어 찌개로 결정되면 과연 오늘은 아버지가 제 시간에 퇴근을 하실까? 고등어 찌개를 오랜만에 드실 수 있게 될까? 하고 수다를 떨곤 했어요. 그러다 정말 높은 확률로 또 야근을 하면 셋이 둘러앉아 고등어 찌개로 상추쌈을 싸 먹으면서 아버지가 진짜 좋아하는 맛인데 오늘도 아쉽네, 그런 이야기를 나누는 거예요.


은성:

“옛날에는 엄마가 밥해놓고 기다리면 아빠가 야근하느라 연락 없이 안 오는 장면이 일상적이었던 것 같아요. 카톡메시지가 없던 시절이라 그럴까요. 아주 어릴 적에 할머니가 아버지 밥 데펴둔다고 아랫목에 밥공기를 두고 요로 덮어두던 기억이...제로웨이스트 전기밥솥인가....

아, 안되겠다.....오늘 저녁은 고등어찌개에 상추쌈을 먹겠어요.”


상추쌈! 맞아요. 고등어 찌개와 상추쌈. 우리 집에서는 고등어 살점을 잘 발라내서 찌개 국물을 약간 묻힌 다음 상추에 올리고, 마늘과 쌈장을 얹어서 밥과 함께 쌈을 싸서 먹어요. 그게 저에게는 정말 별미였어요. 다른 생선 찌개로는 그렇게 먹고 싶어지지가 않아요. 딱 유일하게 통통한 고등어 찌개, 비린내라고는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신선한 생고등어로 끓인 찌개를 보면 상추쌈을 싸고 싶어져요.



은성:

“쌈은 정말 베스트 푸드. 서양사람들에게 쌈은 어떤 의식처럼 보이나봐요. 쌈 문화를 알려주면 아주 천천히 정성껏 싸면서 흥미로워해요. 내 맘대로 아무거나 넣어도 되는 거냐고 묻고요. 그리고....쌈 하나를 두세번 베어먹습니다. 하하하하. 한국인들이 보면 너무 놀라운 광경!”


아니, 쌈은 한 입이 미어지도록 넣지 않으면 다 터져서 주섬주섬 주워야하지 않나요? (실제로 본인 입의 면적을 잘 파악하지 못해 자주 터트리는 사람으로서) 베어먹다니 당황스럽네요! 


그런데 저는 사실 지금 고등어찌개 냄새가 가득 찬 사무실에서 이 원고를 쓰고 있어요. 우리가 고등어찌개를 주제로 글을 쓰기로 결정한 이후로 사진 자료를 만들겠다는 핑계로 어머니한테 연락을 했거든요. 전화를 해서 ‘엄마, 고등어찌개 어떻게 만들어요?’ 하고 물어보니 이렇게 말씀하시는 거예요. ‘아니, 식당에 가면 감자 넣고 포근포근하게 익혀서 만드는 그게 있는데, 나는 아무리 해도 그렇게는 안되더라고~’


저는 약간 당황했어요. 저에게 있어서 고등어찌개의 디폴트값은 어머니가 만들어주는 찌개이거든요. 이게 무슨 대화인지 살짝 이해가 되지 않아서  ‘엄마, 난 엄마가 만들어주는 찌개가 먹고 싶은 건데? 난 그게 맛있어.’ 라고 말했죠. 그랬더니 조금 부끄러워하시면서 그래? 하고 멋쩍어하시더라고요. 그리고 다음 날 새벽(어머니는 이르면 새벽 3시에도 일어나시는 완.전.새벽형이예요), 어머니가 손으로 끄적끄적 기록한 고등어찌개 레시피가 사진으로 도착했어요. 우리 엄마, 너무 귀여워…



그래서 비가 오는 오늘, 사진을 찍겠다는 핑계로 방금 마트에 고등어를 사러 다녀왔죠. 부산에서 파는 것처럼 싱싱하니 때깔이 반짝거리지는 않지만 그래도 푸른 은빛을 띠는 고등어. 어머니가 적어준 양념과 김치를 넣고 폭폭 끓이는데, 제 생각보다 별로 들어가는 재료가 없더라고요. 이게 맞나? 하면서 상추를 씻고 마늘을 편으로 썰어서 점심상을 차리고 앉았는데, 


제가 기억하는 바로 그 국물 맛이 났어요. 어머니가 왔다가시기라도 한 양…..! 바로 사진을 찍어서 어머니와 동생이  있는 단톡방에 공유하고, 만들길 잘했다 하면서 밥 한 그릇을 상추와 깻잎쌈으로 싹 비우고 말았어요. 며칠간 마감에 시달리느라 지친 신경이 싹 정돈되는 기분이예요. 어머니의 찌개가 제 손에서 탄생할 수 있다니. 어쩜 손으로 이렇게 귀여운 레시피를 정확하게 적어줄 수가 있지. 어머니는 대단해. 


음, 다음에 부모님이 우리 집에 놀러 오시면 조용히 고등어 찌개와 상추쌈을 준비해야겠어요. 그럼 과연 아버지에게 급한 저녁 스케줄이 생기게 될 것인가? 이제는 고등어 찌개가 야근을 부르는 마법의 메뉴가 되는 일이 없을 것인가? 둘러 앉아서 그 이야기를 하며 저녁을 먹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아요. 아버지와 함께 먹은 기억이 거의 없는 아버지와의 추억의 메뉴, 고등어 찌개와 상추쌈.


작가소개 
프랑스 알비의 은성 작가와 한국 서울의 연주 작가, 이들의 공통점은 글쓰기로 최대 출력의 도파민을 얻는다는 것! 쓰는 사람만큼 보는 사람도 즐거운, 도파민 힐링을 선사하는 작가 듀오의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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