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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언제나 사이좋아 보이게

애도의 글, 내 고양이 유키에게

by 소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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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키. 흰색인 줄 알고 yuki라고 이름지었다. 일본어로 유키는 눈(雪), 행복, 용기 등의 뜻이라기에. 흰 눈 같은 털을 가진 고양이가 용감하고 행복하게 살라고. 자라고 보니 카푸치노였다. 시골 정원을 오고가는 고양이 25%(얼룩의 정도로 이름지었다)가 낳은 아가 셋 중 하나를 데려가라기에 하얀 털 아가를 짚었다. 제일 꼬물꼬물 움직이는 것 같아 액티브한 성격이겠지 했다. 왠걸. 유키는 느긋하고 푸근하고...많이 안 움직이는 철푸덕 고양이로 자라났다.


한국에 넉달인가 있다가 프랑스 집에 갔을 때 B가 그랬던가. “놀라지마.” 청소년이 된 유키는 듬직한 아저씨 미가 흘렀다. 나는 너무 웃겨서 소파에서 굴렀다. 뻥튀기 기계에 들어갔다 나온 것인가! 나도 낯이 가려지고 유키도 낯을 가리는 하루가 지나고 언제나처럼 유키가 슬며시 내게 몸을 붙여왔다. 뜨끈!


그 해에 울 일이 자주 있었는데 그때마다 유키는 척척척 나에게 와서 푹, 하고 몸을 내게 붙였다. 푹. 그러면 뭔가가 채워지는 기분이 됐다 아주 쉽게도. 왠지 우는 게 재미없어져서는 침대에서 일어나 책도 보고 밥도 짓고....마루 소파에는 유키 털이 수북했다. ”아이고 내 팔자야.“ 이 말을 고양이 앞에서 꼭 해보고 싶어서 꼭 했다. ”나 심심할까봐 털 뿜어놨지!“


혼자 그렇게 생활인의 연기를 하다보면 다시 일상의 무드로 돌아오곤 했는데, 그새 유키는 내가 한참 못 일어나던 침대 내 자리에서 푹푹 자고 있었다. 나를 깨우고는 저가 잤다.


그러고 보면 유키가 이상하게 더블 침대의 내쪽 자리를 항시 탐낸 것 같다. 한번은 아침에 코가 간지러워 이게 무슨 꿈인가 하고 화들짝 깼는데, 유키가 내 얼굴을 털이 풍성한 꼬리로 덮고 자고 있었다. 내 베개를 호시탐탐 노리던 너. 그때마다 서둘러 사진으로 남겼다. 우리가 언제나 사이좋아 보이게.


유키는 아저씨나 할아버지 고양이는 되지 못하고, 어리게만 살다가 고양이 천국으로 떠났다. 신장이 아팠다는데 원체 엄청나게 무던한 고양이라 잘 먹고 잘 놀아서 사람들이 전혀 몰랐다. 하루인가 아프고 눈을 감았다. 프랑스 집에는 유키 털을 빗을 때마다 모아둔 유리병이 있다. 왜 모았는지는 모르겠다. 털이 이렇게나 많이 매일 매일 빠진다는 게 웃겨서 모아두었던 것 같다.


프랑스에서는 세탁기가 작아서, 왠지 세탁이 곤란해서 검정 옷을 아주 자주 입었다. 유키가 가족이 된 후 나는 옷이 모자랐다. 검정 옷은 유키 털 자석이 되어 곤란했다. 여행을 갈 때마다 옷과 가방에 유키 털이 붙어 있어 “이 녀석 여기까지 따라왔네” 하며 자주 웃었다. 지금 한국에서 입는 옷 어딘가에도 유키 털이 있을 거다.


애도의 글을 쓰려 했는데 어찌 끝낼 줄을 모르겠고 대충 털 이야기로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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