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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은성 Jun 26. 2018

Shall we Dance? - 첫 글

커플댄스 혹은 손잡는 일의 정치학

 <샐 위 딴스1> 글/이은  


처음으로, 손을, 맞잡다  


스윙댄스에 입문한 것은 2005년 늦가을. 벌써 십년도 훨씬 더 된 일이다. 할리우드 영화 속 공중을 멋지게 나는 스윙댄서의 모습을 보고 반한 것...은 아니고, 이제는 별로 기억하는 이가 없는 한국영화 ‘바람의 전설’을 보고서였다. 시시하고 따분한 가장에서 사교계의 거물로 등극한 풍식(이성재 분)을 수사하기 위해 잠입한 형사 연화(박솔미 분)이 서로 교감하게 된다는 이 이야기의 줄거리도 가물거리지만, 춤을 연마하느라 머릿속이 춤으로 가득한 주인공이 횡단보도에 스텝을 내딛듯 발을 딛는 순간, 바람이 불어오던 장면만은 또렷하다. 다소 작위적이지만 이 순간은 춤을 추는 개인의 일상이 어떻게 춤으로 환치되는지를 잘 보여준다. 버스나 전철 손잡이를 잡으면서 자신의 무게중심(코어)을 생각하거나 누군가를 보고 저 사람과 춤추면 어떤 느낌일까 상상하게 된다면?! 이미 춤중독 중증 되시겠다.    


문제의 그 영화, <바람의 전설> 중에서. 꽃뱀 역할로 열연한 문정희 배우는 살사댄서이기도 하다.

당시 사회초년병으로 계약직 신분이던 나는 교회 바깥의 삶을 탐색하며 몸의 교류에 꽂혀있었고, 스물 무렵부터 춤을 춰온 아마추어 댄서였다. 스트릿 댄스의 발흥기였기에 내가 배운 것은 넓은 의미의 힙합이었고 그것이 락킹과 팝핀, 비보잉 등으로 세분화하며 춤 폐인을 양산하기 시작하던 즈음이었다. 미션스쿨인 출신 대학에서 이것을 수용해 CCD(Christian Contemporary Dance-기독교 대중음악에 맞춰 추는 춤)을 만들었고 전국 각지와 가스펠 콘서트, 그리고 (선교라는 명목으로) 태국과 인도 등지에서 공연한 것이 대학 시절 가장 열심히 했던 일이다. 유행하던 바닥을 쓸고 다니는 바지에 쫄티 차림의 나는 약간의 연예인 병을 보유한 신실한 청년이었고 잠시 CCM기획사의 백댄서로 연습하기도 했었다. 이 모든 것이 교회라는 안전한 울타리에서 이뤄졌기에 춤이 자신의 매력을 자랑하거나 연애의 수단이 된다는 일은 상상하기 힘들었다.  


 

사회초년생이 커플댄스를 만났을 때  


춤과 연극에 꽂힌 나머지 취업에 대한 아무 대비도 없이 졸업한 나는 어찌저찌 비영리단체 활동가나 글 쓰는 일로 연명하고 있었다. 여전히 뮤지컬에 대한 로망을 버리지 못한 상태로 대학로 근처를 맴도는 죽순이로 살았다. 그러다 스윙에 꽂히는 ‘덕통사고’가 일어나버렸다. 혼자 추는 춤이야 꽤 자신 있었지만 커플 춤의 문법에 전혀 익숙하지 않았고 자주 듣지 않던 스윙재즈 리듬이 어색해 처음에는 헤매기만 했다. 그러다 이 춤을 정복하고야 말리라는 오기가 생겨서 그만, 망해버린 것이다. 나의 ‘춤바람’이 대체 언제인지 명확하지는 않지만 옷깃이 이슬에 젖듯 삶과 춤이 뗄 수 없게 되어갔다. 직장에서도 나의 ‘특이점이 있는’ 취미를 모두 알고 있었고, 평일 저녁 시간에 잡힌 수업에 참가하기 위해 밤샘도 불사할 정도로 (다녀와서 남은 일을 밤새서 해치웠다) 어느 것도 춤과 나를 가로막지 못했다. 


술도 안 마시면서 밤샘 뒤풀이를 하거나 밤새 춤추고 새벽에 찬 플로어에서 쪽잠 자는 일도 마다하지 않았지만 정작 나는 누군가와 한 번도 연애를 못 해본 상태였다. 커플 댄스는 함께 손을 잡고 걷거나 눈을 맞추거나 도는 일로 이뤄져있고, 춤 고수(혹은 중독자)는 연애도 많이 했을 법한 선수 이미지지만, 정작 상대의 마음을 훔치는 일은 어디에서도 배울 수 없었다. 함께 춤을 춘다는 이유로 마음의 교류를 빼먹고 몸의 교류로 직행하고자 하는 ‘늑대’로 가득한 커뮤니티에서는 맞춤한 상대를 찾을 수가 없었다. 이제 사용할 단어가 시대착오적이라는 것을 알지만 실제 나의 과거였으므로 말해야겠다. ‘혼전 순결’이라는 신과의 서약을 성인이 된 후 십년 가까이 지켜왔기 때문이었다. 함께 서약을 했던 동지들이 하나 둘 은근슬쩍 파기했지만, 나는 좋아하던 사람을 보내면서도 가벼운 포옹이 고작이었다.  


아직 세상에 내놓지 못한, 나의 영화 <탱고와 스니커즈> 촬영 현장.


친밀감과 성에 대한 알러지 반응을 갖게 된 건 가족사와 성적인 괴롭힘을 포함한 왕따 경험 때문이다. 나는 첫 월경도 엄마에게 터놓고 말하지 못했다. 장롱 깊은 곳에서 생리대를 몰래 꺼내면서 얼마나 떨었는지 모른다. 부끄러움도 있었지만 내가 감당해야 할 두려움과 공포가 커진다는 것을 뜻했기 때문이다. 2년 터울이 지는 언니가 성추행을 당한 후 (성폭행으로 오인한) 가족들에게 폭언과 폭행을 당한 것을 봤고, 언니가 말 그대로 미쳐버린 것을 목격한 후였다. 성교육은커녕, 신세 망치지 않으려면 몸조심하라는 엄명을 들었다. 교복치마는 가능한 한 내려입었고 또래 남자애든 성인이든 둘이 있는 곳에 가지 않았으며 모든 섹슈얼하거나 친밀한 관계를 거부하며 살던 내게 일어난 변화는 스윙댄스와 함께 시작되었다.   


 

음침한 욕망보다 산뜻한 호흡으로 추기  


말도 안 되는 금욕주의는 방구석에 팽개친 지 오래건만, 정작 실제로 어떻게 손을 잡아야 하는지, 상대의 요구는 어디까지 수용해야 하는 것인지, 협상이나 미루는 것이 가능한지, 무엇이 성적인 지분거림이고 폭력인지 아무 것도 알지 못해서 피해를 입는 경우가 있었다. 적정한 시기에 연애서사나 몸의 언어를 알지 못하는 사람은 성격적으로나 문제가 있는 사람 취급을 당했으므로 나는 연애 경험이 없다는 것을 말하지 못했다. 어쩌면 내 결핍을 마주할 만한 용기가 없었는지도 모르지만. 결국은 거추장스러운 존재가 된 ‘처음’을 내치듯이 떨쳐버리고 얼마간 후회하기도 했다.          


때로 밀착해서 춤을 추는 사람이라고 해서 모두 연애친화적인 것은 아니지만 난 명백히 춤과 괴리된 삶을 살고 있었다. 안전한 스킨십으로서 춤을 활용했고 이성과 대화하는 루트로 삼았으나 그 이상의 관계는 거부한 채로 살고 있었고 결국 어느 순간 관계에서의 문제 혹은 부작용 때문에 춤에서 멀어진 채로 살기도 했다. 그럼에도 다시 춤을 추게 된 것은 당연한 귀결일 것이다. 한 번 춤의 역동과 마법 같은 순간을 경험한 사람은 헬스장에서 보내는 시간이 따분하게 느껴진다. 춤을 사랑하는 이들에게 가끔 찾아오는, 동작과 호흡이 합치되는 경험은 다른 무엇으로 대체하기 어렵다. 그리고 그것이 커플댄스를 추며 느낄 수 있는 가장 훌륭한 순간이기 때문이다.  


삶이라는 선택지에서 시간을 어떻게 보내고 몸의 언어에 어떤 관심을 기울일지 고민한다면 춤은 하나의 옵션이 될 수 있다. 춤으로 밥벌이가 될 확률은 낮지만, 용돈벌이 정도로 병행하는 것은 큰 무리가 없다. 춤에서는 자신의 모습이 드러나고, 서로의 호흡을 맞춰볼 수 있으니 배우자나 연인을 만나는 데도 큰 힌트가 된다. 당신이 어떻게 춤을 추는지, 춤추는 동안 합의된 스킨십이라 해도 얼마나 상대를 배려하면서 움직이는지는 어떤 사람인지를 말해주는 큰 힌트다. 춤은 내게 이성 혹은 동성친구이며 음악을 표현하는 가장 좋은 수단이고, 몸을 단련하는 방법 중에서 독보적으로 재밌는 일이기도 하다. 사람에 대한 기대가 있지만 그것을 관계에서 찾기보다 액티비티를 추구하는 나는 주말 혹은 평일 저녁에 시간이 남았을 때 고민하지 않고 댄스화 둘러메고 집을 나선다. 대개 지하공간에서 우리는 땀을 흘리지만 그것은 어두운 욕망의 표현이 아닌, 총천연의 색조합 같은 의미라고 말하고 싶다. 매순간 즐거울 수는 없지만 적어도 희로애락의 축소판, 그리고 인간관계의 복잡다단함도 그곳에 존재하니.           


춤이 주는 자유는 춤추는 자의 것. (Photo by Jakob Owens on Unsplash)


<샐 위 딴스> 글/이은  

[독립, 하셨습니까] 저자. 작가이자 영화 만드는 일을 하며 무규칙이종댄서로 불리고 싶은 사람. 현재는 웨스트코스트 스윙과 주크댄스를 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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