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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은성 Jul 03. 2018

[샐 위 딴스2]우리는 춤을 춘다, 몸에 갇힌 채로

댄서는 꼭 말라야만 할까 

 <샐 위 딴스2> 글/이은  

Photo by Liel Anapolsky on Unsplash


동네 학원에서 발레를 배운 적이 있다. 여러 장르의 춤을 배웠지만 재즈댄스에서 곁다리로 가르치는 발레 베이직 말고 오직 발레만 배운 건 처음이었다. 레슨 시간의 대부분을 스트레칭과 근력 운동으로 보내고 안무 수업은 아주 잠깐이었는데 클래식의 리듬과 플로우가 낯설어서 동작이 몸에 익혀지지 않았다. 발레 선생은 어릴 때부터 발레를 하다 부상으로 인해 춤을 포기한 분이라 했다. 몇 년 후 선생님을 다시 만난 건, 플로어에서였다. 전직 발레리나답게 꼿꼿한 자세로 멋지게 살사를 추는(‘살세라’라고 부른다) 그분을 보며 난 평생 춤을 추는 댄서가 되리란 가짐을 굳혔다.   


춤을 출 때, 우리는 중력에 사로잡힌 채 스텝을 내딛고, 점프를 하고, 업다운을 오가며 찰나 동안만 허락된 자유를 맛본다. 그 자유의 맛은 아주 달콤해서 때로 육체적인 핸디캡에도 불구하고 숨을 쉬듯 춤출 수밖에 없는 존재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1년째 발목이 말썽인데 여전히 춤을 놓을 수 없는 내 사정도 딱하지만 어쩔 수가 없다.  


커플 댄스건 솔로 춤이건 나의 모든 관절과 체중은 오로지 내 몫이다. 자세를 가다듬고 음악을 표현해야 하며 파트너와 감응해야 한다. 물론 겉보기에 아름다운 것도 중요하나 결국 내 신체를 내가 컨트롤할 수 있어야 좋은 댄서라 할 수 있다.  



한국 여성들은 대체로 자신의 몸에 불만을 갖고 있어서 자신의 몸을 드러내는 일을 부끄러워한다. 그래서 붙는 옷은커녕, 날씬하지 않은 몸으로 춤추고 있는 자신을 누군가 보는 것도 내켜하지 않는다. 탱고나 살사, 스윙 바에 가면 일단 매력적인 사람이 파트너로서 인기가 있다. 하지만 그건 춤에 대해 잘 모를 때 얘기다. 춤판에서는 잘 추는 댄서, 개떡 같이 리딩해도 찰떡 같이 부응해주는 팔뤄, 음악을 표현할 수 있도록 천천히 부드럽게 리딩해주는 리더가 최고다. 기왕지사 다홍치마, 비슷한 춤실력이라면 매력적인 사람이 물론 좋지만.  


꼭 힘이 세거나, 이렇게 들어올릴 필요는 없다. Photo by Chouaib brik on Unsplash

커플 댄스의 롤을 설명하고 넘어가야겠다. 파트너를 바꿔가며 추는 소셜(Social)이나 제너럴(General)에서 춤의 규칙이나 패턴을 제시하는 쪽을 리더, 그리고 이에 부응하면서 음악을 더 풍부하게 표현하는 쪽을 팔로워라고 한다. 성별 고정관념이 강한 한국에서는 대부분 남성이 리더, 여성이 팔로워를 맡는다. 이를 바꾸는 것은 일종의 금기이며 일정 수준 이상의 실력자에게만 허용된다. 하지만 외국에 가보니 사정이 달랐다. 원하는 여성은 리드를 배울 수 있고, 남성이 팔로잉을 해도 웃음거리로 치부하지 않았다. 춤에 있어서의 수동성/능동성이 성적 지향과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리더 역할이 짧은 머리를 한, 보이시한 언니들의 전유물은 아니라는 것이다.  


물리적으로는 누구나 리딩 혹은 팔로워를 할 수 있지만 특정 성별이 유리할 때가 있다. 파트너를 들어올리거나 든든하게 받쳐줘야 하는 동작에서다. 공연 안무나 대회 등 돋보여야 할 때 이런 동작을 하게 되는데 여성들은 자신의 체중이 파트너에게 무거울까봐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다. 가만히 있는 사람을 번쩍 드는 것이 아니라 회전하는 힘 등을 이용하기 때문에 적절한 근력운동으로 몸을 컨트롤하면 되는데 민폐가 될까 두려워하는 이를 많이 보았다.  



군살 없이 잔근육으로 이뤄진 몸은 누구에게나 허락되지도 않고 프로페셔널 댄서라고 모두가 조각 같은 몸을 보유한 것도 아닌데, 일단 마르고 봐야 하는 우리나라에서는 살집이 없는 언니들만 화려하고 노출이 있는 의상을 입는다. 똑같이 춤을 추고 뒤풀이를 해도 여성들은 체중관리에 여념이 없는데 남성들의 뱃살은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보여주곤 한다. 여성에게는 지나치게 엄격하고 남성에게는 관대한 ‘이중잣대’다. 서구에 가면 동양 여성이 인기가 많듯, 잘 꾸미고 리딩에 잘 부응하는 한국 댄서(팔뤄)는 선호도가 높다. 다른 의미에선 키와 체중, 근력이 충분치 않아 다루기 쉬운 존재이기 때문이다.  


나는 한국 여성치고도 작은 키에 마른 몸을 갖고 있다. 그렇지만 힙합을 췄기에 파워풀한데다 지시하는 대로만 춤을 추는 수동적인 성향이 없어서, 화려하거나 대담한 동작으로 음악의 강약을 표현하는 것을 즐긴다. 자존감이 낮거나 춤 경험이 일천한 파트너들은 놀라거나 기분 상한 듯한 표정도 짓는다. 나는 ‘같은 동작이라도 느낌이 다르지?’를 표현하며 같이 즐겁고 싶었을 따름이다. 아직까지 리딩을 배울 기회가 별로 없어서 ‘능동적인 팔로워’라는 포지션에서 가능한 즐겁게 춤추고 싶은데, 이렇게(한국 여성스럽지 않게) 출 거면 외국에 가야 하지 않냐는 반응을 접하면 조금 서운하기도 하다.  


젠더 감수성이 높아지면 외모에 대한 얘기를 덜 하고 자존감이 높아져서, 체형과 상관없이 더 적극적으로 춤사위에 자신을 담아내는 여성들이 많아질까. 여성과 여성, 남성과 남성이 춤출 때의 범상치 않음을 사랑하는 나로서는 그날이 빨리 오기를 바랄 뿐이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춤을 추고 손을 맞잡은 상대와 인간으로서 교감하는 것이 이토록 어려울 일인가.              



<샐 위 딴스> 글/이은  

[독립, 하셨습니까] 저자. 작가이자 영화 만드는 일을 하며 무규칙이종댄서로 불리고 싶은 사람. 현재는 웨스트코스트 스윙과 주크댄스를 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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