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와 두려움을 코미디로 쓰니 치유가 됐다 <2>

상사를 코미디 캐릭터로 만들어 버렸다. 치유가 됐다.

by 소은성

글을 쓰면서 기분이 좋지는 않았습니다. 속이 답답해서 캔맥주를 사러 수퍼에 가기도 했습니다. 당시의 감정에 대해 쓰자면 저절로 몸에 힘이 들어가기도 했습니다. '표절' 발언에 대해 쓸 때는 억울해서 눈물이 흐르기도 했습니다. 감정표현 글쓰기에 대한 자료를 찾아보니 '심리적 외상에 대해 쓰면서 기분이 나빠지고 우는 건 정상이다'는 문장이 있었습니다.


"슬픈 영화를 보고 나면 더 슬퍼지긴 하지만 더 현명해지기도 하는 것처럼, 글쓰기의 효과를 깨닫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라는 내용에 크게 위로받았습니다." (<표현하는 글쓰기> p26 )


그 말에 힘을 얻어, 완성을 위해 달렸습니다.



다행히 삽입할 만한 소재는 무궁무진했습니다. 제게는 일상의 감정을 매분 매초 기록하는 습관이 있었습니다. 분노와 조소가 치밀 적마다 싸이월드 다이어리에 토해내듯 일기를 쓰곤 했기에, 그것을 뒤지며 소재를 찾았습니다.


일요일이면 소개팅을 하고, 언제나 TGI 프라이데이로 여성을 안내하고, 그 돈을 아까워하는 건 그의 오랜 버릇이었는데요. 한번은 상대 여성을 비웃으며 말했다더군요.

“내가 메뉴를 보고 ‘둥굴레차가 뭐냐’고 한참 웃었는데, 그 여자는 잘 모르겠다는 표정만 짓는 거에요. 둥굴레차가 뭐야. 둥글레 차가 맞지. 그게 거슬리지가 않나. 지적인 여자 만나기 참~ 어려워요.”


이런 식으로, 나의 고통 또는 고통을 준 상대를 픽션 속에서 코믹하게 만드는 것은 제 글쓰기 방식에 맞았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평행 우주 속에서 소심한 복수를 하면서 자신만의 새로운 세계를 만듭니다. 소심한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법이겠지요.


마무리로는 지인의 소재를 빌려왔습니다.저는 글을 쓰기 전, 지인들에게 소재나 정보를 얻기도 합니다. 이때도 소재가 부족해서 네이트온으로 친구들에게 '최악의 상사' 리서치를 했었고, 그 중 하나를 고른 건데요. 결말로는 주인공이 7교까지 교정지를 보다가 쓰러진 장면을 썼습니다. 패션지 기자였던 친구의 실화였습니다. 새벽 4시경, 걷다가 바닥에 쓰러졌는데 저 멀리서 편집장이 당황해서 이렇게 말하는 소리가 아스라이 들렸다고 했죠.

"어머! 쟤 기사 마감은 했어?"


저의 실화는 아니지만 이 글의 결말로 좋겠다 싶었습니다. 내심 저도 교정을 보다가 쓰러져 버리길, 그래서 어쩔 수 없다는 듯 회사를 관두길 바랬었으니까요. 전 상사에게 ‘니체’란 이름의 바이러스 메일을 보내는 것으로 가상 복수를 했다는 것은 저의 희망사항이었습니다. 소심한 제 성격에 맞는 복수를 글 속에서나마 하고 싶었으니까요.


사람마다 좋아하는 방식이 다릅니다. 누군가는 아름다운 단어로 누군가는 슬픔으로 가득차게 쓰는데, 저는 자꾸 코미디를 쓰더라고요? 아마 개인사에 대해 코미디 영화나 드라마를 만드는 많은 이가 그럴 테지요. 저는 저의 고통을 땔감으로 스스로와 누군가를 웃기는 걸 즐기는 사람이란 걸 알았습니다. 그 방식이 옳든 그르든, 자기방어이든 아니든 그 방식으로 제가 편안해진다면 그저 그냥 두기로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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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미디에는 치유 효과가 있다.
어떤 비극에 대해 웃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만으로도,
그 비극이 절대 극복 못할 일은 아니라는 걸 느끼게 된다.”
-애니메이션 <심슨 가족> 수석작가 대니얼 전





과거의 고통을 글로 쓸 때의 장점 중 하나는, 자신의 감정을 터놓고 인정하면서 그 감정의 이름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상사가 원고뭉치를 던지는 장면을 쓰다가 깨달았습니다. 상사가 다른 직원과 큰 소리를 내며 회의실에서 싸울 때나, 그 아수라장에서 홀로 교정을 볼 때마다 언제나 몹시 초조하고 불안했습니다.

글자가 눈에 들어오지 않아서 일하는 척만 했습니다. 성난 그가 “이 표절쟁이!”라면서 내 등으로 딱딱한 하드커버 책을 던지는 상상에 매일같이 시달렸습니다. 이전 직원이 인수인계를 해주며 한 말이 트라우마로 남았던 것이었겠죠. “회의 때마다 철학서들을 탁자에 집어던지고는 했어요. 네가 이 책 이해하냐며. 가끔은 다른 출판사 책 던지고요. 여기서 표절한 것 아니냐면서.”


글쓰기에는 확실히 치유효과가 있었습니다. 타인의 눈으로 사건을 보게 됐습니다. 책상에 동그마니 앉아 두려워하는 어린 아이가 보였습니다. 저는 어린 시절부터 부모님이나 친구들이 다투는 소리에 민감했습니다. 저를 나무라는 것이 아닌데도, 눈치를 살폈고 집중을 하기가 어려웠어요. 그 때문인지 물건이 떨어지면 굉장히 큰 소리를 내며 깜짝 놀라는 버릇이 있었습니다. 실제로 그 상사가 제게 책을 던진 적은 없었는데도, 내내 공포스러웠어요. 그가 씩씩거리며 걸을 때마다 곧 큰일이 닥칠 거 같았습니다. 그럼에도 당시에는 머리를 박으며 '나는 집중력이 모자란가봐. 다른 사람들은 회의실에서 고성이 나든말든 이어폰 끼고 일만 잘하는데...'라며 자책을 했었어요.


"저 분위기에서 어떻게 일을 해. 쇼크 안 걸리면 다행이겠다. 어린 시절 트라우마가 있는데도 그 회사에서 잘 버텼네. 너는 강한 사람이다. 애썼다. 잘 버텼다." 스스로 말해 주었습니다.





상처와 고통을 일관성이 있는 스토리로 써보는 것은 도움이 됩니다. 사건과 인물, 배경, 내러티브가 있는 이야기로 만들어보면 많은 것이 제자리에 정리됩니다. 회오리치는 감정, 암흑같던 기분, 애매하게 찝찝하던 마음 같던 것들이 갈무리 됩니다.


이 이야기를 쓰면서 혼란스럽던 기억이 정돈됐습니다. 독자가 이해하도록 구성하고 배열하는 과정에서, 나에게 무슨 일이 생겼고 그게 나에게 어떠한 의미를 가지는지 정리했기 때문입니다. '혼돈 속에 흩어진 모든 것들이 제자리로 돌려진 것' 같았습니다. *




마무리한 원고를 편집부에 이메일로 보냈습니다. 송고 버튼을 누르며, 이 사건과 감정을 다룰 수 있는 힘이 조금 생기는 느낌이 들었는데요. 아마도 그런 걸 '자기통제력'이라 부르겠지요.


그때 이후로 깨달았습니다. 무언가 나를 힘들게 한다면 그것을 글로 쓰는 것만으로 충분하다는 것을요. 이제는 매일 밤마다 씁니다. 괴로워서 잠이 안 오는 사건에 대해, 대체 그게 무엇인지 의미를 모르겠는 대화에 대해, 잘 모르겠지만 알고 싶은 주제에 대해, 누구에게도 말하기 싫은 부끄러운 것에 대해 주절주절 쓰다 보면 비로소 자러 갈 수 있게 됩니다. 요가를 가듯 기도를 하듯 명상을 하듯, 블루투스 키보드를 펼치고 써내려가는 거죠!




* <표현하는 글쓰기> 중에서




<필자 소개>

문제집 출판사에서 꾸부정하게 지내다가 돌연 퇴사를 선언하고 나와서 기자가 됐습니다. 십 년 동안 프리랜서 기자로 일했습니다. 인터뷰를 가장 좋아했고, ktx매거진, 대한항공 기내지 등에 여행기사를 기고했습니다. 글밥 아카데미에서 7년 동안 성인 대상으로 글쓰기를 지도해 왔습니다. 최근에는 여성전용 작업실 씀씀에서 여성전용 글쓰기 워크숍을 진행합니다. 자기 표현적 글쓰기, 논픽션 쓰기 코칭에 집중하는 중입니다.

서울 마포구성산동에서 남프랑스 출신 농부 남편과 유기묘 출신 고양이와 함께 삽니다. 남편이 경기도 고양시 친환경 농장에서 기른 유기농 채소를 ‘소잎’ 브랜드로 동네 사람들에게 팔고 있습니다. 잠에 굉장히 집착합니다. 좋아하는 문장은 “밥 먹고 더 자라.” “졸리면 자고 해라.” 싫어하는 문장은 “잠은 죽어서도 잘 수 있다” “내일 아침에 일찍 나가야 된다.”


무엇이든 쓰게 됩니다. 매일 쓰면 어제보다 나은 내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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