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가 대화 중에 화장실에 가는 이유

스쳐지나가는 순간을 붙잡아 글로 기어코 쓰기 위해서다

by 소은성

스마트폰이 생겨서 다행이다. 페이스북과 트위터와 에버노트가 있어서 다행이다. “앗, 이건 놀라운 에세이가 될 거야.” 싶은 소재를 언제 어디서든 박제해 놓을 수 있게 되었다. 오늘도 프랑스인 남편과 ‘외국인과 있을 때 어떤 언어를 사용해야 하는가’에 대한 긴긴 대화를 마치고, 대화 중 느낀 것을 20줄 정도의 글로 써 두었다. 외출 준비를 위해 화장실에 들어갔다가 ‘필이 받아서’ 10분 동안, 외출 준비를 마치고 버스를 탄 뒤 10분 동안, 총 20분 동안 후다닥 써서 페이스북에 올려두었다. 휴, 안심이다. 이제 저 순간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아.


페이스북 포스팅에 좋아요, 가 눌리지 않아도 상관은 없다. (이렇게 희한한 이유로 페북을 쓰면...원래 옳은 방식은 아닐 것이다) 내 스마트폰 속 메모장에 넣어 두어도 좋겠지만, ‘독자’를 상정하고 쓰기 위해 종종 페이스북 포스팅을 활용한다. 오랜 시간 기자로 살았기 때문에, 글이 '인쇄' 되어야만 안심을 느끼는 습성 때문일 수도 있겠다. 곽재식 작가님의 글쓰기 책을 봤더니, 'SNS에 올리고 싶은 순간 참는다. 아무데도 올리지 않고 묵힌다'고 하더라. 나는 정반대다. '소통'을 통해 에너지를 받는 타입이다. '퍼블리싱'을 해야 안심이 되는 (이상한) 타입이다. 아무튼 페북에 ‘입력’ 버튼을 누르는 순간, 이 글은 어쩔 수 없이 공개되어 버렸다. 돌이킬 수 없다.


이 모양 그대로, 세상에 출력되었고 이 내용에서 더 수정하고 보완해서 언젠가 책이 될 거라는 믿음을 가져보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일은, 온전히 내가 내 글의 주인으로서 열심히 노력해야 하는 일이라고 응원해 보기 시작한다.



은성씨가 화장실에서 글 쓰는 이유

어떤 작가는 좋아하는 노래를 들으면 그 노래가 지어졌을 상황을 상상이 되어서 글이 잘 써진다고 한다. 어떤 작가는 자기가 찍어둔 사진을 보면서 자극을 받는다. 사진 속 요소들을 보면서 소재를 떠올린다. 사진, 그림, 음악, 책 뭐든 좋다. 글쓰기에 자극이 된다면, 영감을 불러일으킨다면, 아이디어 캐올리기에 자극이 된다면. 중요한 것은 여러 번의 시도와 연습을 통해 자신이 어떤 것에 쉽게 자극받는지를 깨우치는 것이다. 가능하면 모조리 시험해 보자.


그럼 나는? 음악도 노래도 좋아하는 편이지만, 평균 수준이다. 나를 예민하고 섬세하게 만드는 것은 언제나 ‘대화’다. 누군가와 대화를 하면 멍했던 정신이 맑아진다. 산만했던 마음이 뾰족하게 끝이 모인다. 뭉툭했던 나를 ‘대화’라는 칼이 깎고 갈아서 쓰기 좋은 연필로 만드는 것 같다. 대화 중에 내가 스마트폰을 본다면 지루해서가 아니라 "이거 다 메모해도 될까"망설이는 중일테니, 부디 웃어주세요.


내가 좋아하는 대화는 주로 우리 집 거실이나 주방, 술집, 때로는 작업실, 때로는 엄마와 만난 밥집에서 이뤄진다. 글의 소재가 될 만한 좋은 대화는 의도치 않았을 때 툭, 튀어나오는 경우가 많다. 가방 한 귀퉁이에는 언제나 펜을 꽂은 작은 수첩을 넣어 다니지만, 한번도 꺼낼 겨를이 없었다. 가족과 부글부글 끓는 샤브샤브를 먹다가 “잠시만!”하고 수첩을 꺼내는 건 어쩐지 어색하다. 탐정이 된 기분이 들어서 대화의 맥이 끊긴다. 우리 집에서 남편과 이야기할 때는 주로 ‘잘못을 반성하고 눈물을 뚝뚝 흘림’-화해-기분이 좋아 손을 잡고 춤을 추는 프로세스를 거치는데, 중간에 수첩을 꺼낼 시간은 없다.

(메모를 했을 때는....그 대화가 그다지 드라마틱하거나 심도가 깊지 않았다. 글로 쓰고 싶을만큼 나를 ‘치는’ 대화는 아니었다)


가끔은 스마트폰의 녹음 버튼을 누르고 (나중에 녹음 허락을 받을 생각으로) 듣기는 하는데, 단 한번도 녹음을 재생해 본 적은 없다. 무엇보다 내 목소리를 다시 듣는 게 어색하고 부끄러워서다. 녹음은....그냥 내 마음을 편하게 하고 대화에 집중하기 위한 도구인 것만 같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여행을 가서도 ‘볼이 붉은 몽골 여인’이란 식으로 자신만 알아보도록 몇 개의 단어로만 메모를 한다고 했다. 상세하게 기술해 놓으면, 돌아와서 여행에세이를 작업할 때 상상력이 제한된다나. 여러 번 경험해 보고 나서, 나는 하루키 과가 전혀 아니란 것을 깨달았다. 기억력이 평균보다 몹시 나빠서, ‘어제 뭐했어?’라고 물으면 고장난 로봇처럼 멈춰버리는 인간에게 하루키 워너비가 되기란 힘이 든다.


나에게는 ‘그때 최대한 써놓기’가 최고인 것 같다. 여행 중에도 마찬가지. 여정을 하나 줄이고, 에세이를 써둘 시간을 벌어두는 게 낫다. 술집이라면 대화 상대 앞에서 한참 글을 쓰는 건 미안해서 화장실에 간다. 화장실에서 메모를 하고 의기양양하게 돌아온다. 집이어도 화장실에 간다. 똑똑똑, 남편이 "뭐해요? 물에 빠진 것 아니에요?" 할 때까지 신나게 메모한다. 거실이라면, 고양이와 남편이 자꾸 말을 걸고 그러면 "에이, 글이 뭐 중요해. 사랑이 중요하지." 싶어서 때려치우니까.





메모가 길면, 그 자체로 거친 초고다

메모만으로는 아무 것도 할 수가 없다. 메모라면 최소한 10줄 이상은 되어야 한다. 페이스북과 트위터, 에버노트에 주루룩 써놓은 글줄은 글을 완성해 브런치 사이트, 의뢰받은 매거진 등에 퍼블리싱할 때 든든한 ‘빽’이 된다.


첫째, 짧은 메모라면 그 당시의 감정이 다 떠오르지가 않는다. '별 것 아니었네' 싶어 지나치게 되기도 한다. 이미 길게 줄줄 써 있다면, 그 자체로 거친 초고다. '조금만 더 수정하면 한 편 나오겠네' 싶어 의욕이 넘치게 된다.

둘째, 글쓰기 공포를 가라앉혀 준다. “이미 써 놨다”는 기분이 글쓰기 전의 불안을 상쇄시키는 데 아주 좋다. 급히 글을 써야 할 때, 아무 생각도 안 날 때도 좋다. 아주 든든하다.


노트북 전원을 켜고 에버노트나 페북, 트윗 등을 고루 켜 놓고 장을 보듯 느긋하게 둘러본다. “자, 오늘은 뭐가 물이 좋은가(오늘은 무엇이 마음을 ‘치나’) 본다. 그리고 ‘오늘의 기분’에 잘 맞는 소재를 고른다. 감성을 담은 에세이일 때는 이 방법이 좋다. 지금의 나와 너무 거리가 먼 소재보다는, 비슷한 소재를 썼을 때 퀄리티가 좋다.




떠오르는대로 저장해 둔 에피소드들은 '선의'라는 키워드로 묶였다. 낯선 여행자를 챙겨준 미얀마 공항 직원, 이리카페에 불쑥 들어온 노숙자를 환영해서 노래를 함께 부른 사람들에 대해 쓰다 보니, 내가 길에서 구해준 사람, 아픈 나를 버스에서 도와준 사람들이 모두 떠올랐다.


여기저기 모아둔 메모들을 합쳐 한 편의 글로 만든 예 https://brunch.co.kr/@eunseongwrite/96


때로는 두 개의 긴 메모를 합쳐 하나의 주제로 묶기도 한다. 연관성 있는 메모라면 5-6개를 묶어서 한 편으로 만들기도 한다. 어차피 한 사람의 인간이 이야기하는 주제란, 매일 비슷비슷하다. 내 경우 관계, 감정 표현, 소통, 마음 알기 등의 이슈로 잘 묶인다. 자석에 철가루가 사사사삭 붙어 올라오듯, 하나의 주제, 제목을 정하면 여러 개의 메모가 잘 붙는다.


당장 닥쳐서 주제, 에피소드, 대화 등을 고루 떠올리면 2-3배 정도의 시간이 더 걸린다. 요즘은 나이가 들어서 근력도 떨어져서, 그 짓은 못하겠다. 너무 힘들다. 평소에 미리 ‘거친 초고’ ‘막 쓴 초고’를 여러 개 저장해 두는 이유다. 미리 써둔 초고를 뒤적이며 괜찮게 가공하다 보면, 머리가 점점 맑아지기도 한다.



메모 창고를 열고 오늘의 기분과 가장 비슷한 글감을 고른다


특히 에세이란, ‘잠깐 스쳐간 소재와 감정’이 좋은 글이 될 확률이 높다. 자기 검열을 거치지 않은 생생한 날 것이라서다. 그런 것들은 정말 스쳐간다. 커피가게에 들어가기 전에 든 생각이, 웃으며 커피 주문하고 만들어지는 걸 구경하고 받아들고 나오는 동안 사라지기가 일쑤다. “내가 아까 무슨 생각했지, 분명 아주 달콤하고 씁쓸한 느낌적 느낌이었는데...”라고 골몰하다가 “그래...역시 블루투스 키보드를 사서 늘 들고다녀야 해. 모든 것을 24시간 내내 기록할 거야.”라고 바보같은 결말로 이어지기 일쑤다. 그러기 전에, 미리 메모하고 커피를 주문했더라면 좋았을 것이다.


메모해 두고 묵히자. 요즘은 대화 후나, SNS를 돌아다니며 문득 떠오른 생각을 (SNS를 읽는 것도 일종의 대화니까, 이것은 ‘대답’이 되겠지) 메모해둔다. 주로 ‘브런치’ 사이트의 ‘작가의 서랍’에 넣어두고 묵히는 편이다. 정말 싫었던 대화가 세상을 돌아보는 글로 나아가기도 한다. 어젯밤 페미니즘 게시글에서 뭔가 읽고 댓글로 달고 싶던 내용을 길게 써둔다. 누군가의 일상을 보고, 나의 비슷한 경험이 떠올랐다면 길게 써둔다. 길어봐야 5분이면 된다. 자기 검열을 거치지 않고 흥겹게 써내려가면, 5분 안에 10줄도 쓸 수 있다. 시간이 며칠 흐른 뒤 묵힌 것을 보면, 그때 잘 몰랐던 것, 미처 챙기지 못한 것, 덧붙일 것, 고칠 점 등이 보인다. 이때는 차분하게 완성을 향해 달려갈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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