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부분만 쓴 글이 죄책감을 자극한다. 어떻게든 한편을 끝까지 완결하자.
글이...안 써진다. (하루도 이 말을 안 한 적은 없다. 그러니까, ‘아무 의미가 없는’ 말이다. 정보값이 빵이다) 그러면 진하고 단 것이 땡긴다. 쓰고 뜨거운 에스프레소에 각설탕을 넣어 두 잔이나 마셨다. 이것은 자학일까? 가만히 앉아 있자니 답답해져 괜시리 원두를 드극드극 간다. “불안해? 왜 그래?” 빛의 속도로 타자를 치던 작업실 동료가 소음을 듣고 웃는다. 씁쓸하다. 너무 부럽다. 넌...글 잘 써지나 보구나?
언젠가 작업실 막내(나와 12살 차이가 난다)가 나에게 사이다 일침을 날린 적이 있다. “언니는 마감 때마다 카레를 만들더라고요. 글은 완성이 안 되지만, 카레는 어떻게든 완성이 되니까 대리만족을 느끼는 거겠죠!” (나이와 통찰력은 관계가 없다는 것을 알았다) 월간지 마감 때마다, 잠도 서너 시간 밖에 못 자며 바쁠 와중에 반드시 카레를 만들곤 하는 나를 관찰한 거다. '마감 기간이라 컵라면 신세인 다른 동료들의 저녁을 준비하는 엄마 마음 혹은 이타심'이라고 생각했지. 감자와 양파, 호박 같은 것을 잘드는 칼로 서걱서걱 썰다 보면 스트레스가 풀린다고 느꼈지. 베어져 풍기는 채소의 푸르른 내음에 치유받고 있다고 여겼지.
“야!” 정곡을 찔려 소리를 치고야, 깨달았다. 글 대신에 카레가 완성되는 거였구나! 나는 ‘완성’하고 싶어서 안달복달하는 거였다. 나는 완성한 카레를 먹은 적이 드물다. 카레, 별로 안 좋아한다.
소글 워크숍에서 처음 만난 학생들에게 글 고민을 물어보곤 한다. 답은 비슷비슷. 그들은 모두 글쓰기를 정말 좋아했다. 글쓰기를 시작해본 경험도 많았다. 다만 마무리를 못하는 게 문제였다.
시작만 해놓은 글이 많다
자꾸 쓰다 말다 쓰다 말다 한다
4-5줄 쓰다가 잊어버린 것들이 블로그 등에 비공개 글로 들어있다
그럼, 마무리를 못하는 이유가 뭘까? 불성실한 사람들이 아니었다. 그 귀한 시간을 내어 먼데까지 글쓰기 공부를 하러 모이는 학인들이다. 평균 이상으로 부지런하다. 게을러서 글을 완성하지 못한 게 아니다. 무엇인가가 마음을 콱 틀어막고 있다고 느껴졌다. 그것은, 두려움일까? 그렇다면 무엇에 대한 두려움?
잘못 쓰는 것 같아서 기분이 나빠진다
내 글이 비판받을 것 같아서
논리 전개가 안 풀려나가서 궁리하다가 포기
뭔가 답답한 기분이 들어서 포기
어휘력이 딸리는 것 같아서, 글쓰기 공부를 더하고 써야겠다고 포기
그때마다 대답했다. “네? 그건 저도 매일 매일 느끼는 기분인데요. 10년차, 20년차 작가들도 매순간 그 기분과 싸우는 걸요.”
거짓말이 아니다. 이 글을 쓰는 동안에도 여기저기서 환청이 들린다.
“누가 네 글 읽어?” “별로 재미없다.” “이미 더 잘 쓴 글쓰기 칼럼이 많이 있잖아?"
환청을 발로 차 버리며 글을 쓴다. 책을 내고 또 내면 환청은 사라질까? 첫 책이 성공하면 소포모어 증후군이 올 것이다. 두 세 권이 성공하면 독자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부담은 더 커질 것이다. 그러므로 하고 싶은 말은 이거다.
방법은 없을까. 우선, 강력한 각오만으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고 말하고 싶다. 글을 인생에 단 한 편만 쓰고 싶다면 뼈를 깎는 각오로도 무방할 거다. 하지만 최소한 하나의 큰 테마에 따르는 글이 5편 이상은 있어야 그 테마에 대해 글을 쓰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려면 각자의 글쓰기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내 경우를 이야기하겠다. 잡지 기자로 오래 일했지만, 내게도 글을 여러 편 완성하는 것은 몹시 어려운 일이었다. 밥벌이에 연관되었고, 내가 쓰지 않으면 밥이 안 나오고, 잡지 발행에 장애가 되고, 담당 에디터를 곤란하게 하는 일이었기에 수백편의 원고를 써내왔다. 내 주제(글쓰기/감정표현/인간관계/국제부부로서의 삶) 등에 대해 자유롭게 쓰고 싶어졌다. 신나게 쓰겠지 싶었지만 세상에....마감이 없으니까 자꾸만 도망을 치게 되었다. 꼭 오늘 쓰지 않아도 아무런 일도 벌어지지 않았으니까. 한달에 기사를 20편 쓰는 기자였어도, 글쓰기 신생아와 다르지 않았다. 아무도 나에게 의뢰하지 않은 글을 꾸준히 쓰는 체질로 변화되기 위해 꼬박 2년이 걸렸다.
‘아직 한 편도 완성하지는 않았지만, 완성하면 대박이 날 것 같은’ 내용을 목차로 인쇄해 책상에 붙여두었다. 쓰지 않았다. 주변에 소문도 냈다. 그래도 쓰지 않았다. ‘나는 루저다’라는 기분에 사로잡혀 한국어를 안 쓰는 데로 이민이나 갈까 하던 중, 작업실에서 ‘글쓰기 소모임’이 시작됐다. 예닐곱 명이 모여 각자 쓰고 싶은 주제로 2시간 동안 조용히 글을 썼다. 어색하지 않을까 싶었지만, 전혀 그렇지 않았다.
“자, 씁시다.” 시작하고 나면 아주 쉽게 무아지경이 됐다. 어럽쇼, 혼자서는 힘들었는데 함께 하니까 되네!
첫째, 서로의 키보드 소리가 아주 좋은 자극이 되었다. 에너지가 되었다.
둘째, 갑자기 유튜브를 켜거나 눕거나 나가버릴 수 없었다. 굉장히 기분 좋은 강제성이었다.
셋째, 2시간 안에 쓴 것이니까 ‘잘못써도 좋다’는 허락을 받은 것 같았다.
넷째, 다 쓴 후 각자(자기가 읽기 어려우면 옆 사람에게 낭독을 부탁했다) 약간씩 읽었다. 내 글에 폭소를 터뜨리거나 눈물 짓거나 공감했다고 말하는 멤버들이 정말 큰 도움이 됐다.
최초의 독자를 얻으면, 작가는 어떻게든 힘을 얻는다. 단 한 명이라도 독자는 필요하다. 더불어 다른 동료의 ‘완벽하지 않은’ 초고를 보는 것도 위안이 됐다. 함께쓰기의 마법은 한마디로 정의하기는 어렵다. 경험해 봐야 아는 놀라운 마법이었다.
나는 모범 멤버가 전혀 아니었다. 지각하거나 결석하는 일도 있었다. 그런데도 ‘토요일 2~5시엔 우리 작업실에 열심히 쓰는 사람들이 있으니까’ 라는 마음에 다시 시작하게 되곤 했다.
“어떻게든 그곳에서 2시간을 채우면 한 편이 완성된다”는 믿음이 나도 모르게 생겨나니까, 정말 좋았다. 안심이 되었다.
의외로 좋았던 것은 내가 얼기설기 쓴 초고에도, 자신감이 없어서 ‘대충 쓰고 지워버릴거야!’ 싶었던 부분이 의외로 반응이 좋았을 때다. 대중이 읽을 글을 쓰고자 할 때, 가까운 사람들에게 글에 대한 반응을 얻어보는 것은 정말 소중한 경험이다. 소위 ‘감’이 생긴다. “이게 재밌는지, 지루한지 몰라서” 글 수정, 보완을 못하고, 그래서 망설이다가 글을 완성하지 않는 경험이 얼마나 많은가. 혼자서는 못한다. 자꾸자꾸 글을 노출해야 한다. 100명의 반응이 모두 다르다. 자꾸 읽혀봐야 한다.
몇 달 동안 글쓰기 체질로 변해갔다. 처음엔 글쓰기 모임을 마치고 기분이 불쾌하기도 했다. 머릿속에서 완벽하던 글이 워드 파일 안에선 초라해 보였다. 두번째, 세번째 모임부터는 그런 불쾌함이 미미해졌다. 예민함이 덜어졌다. '규칙적으로 쓰는 습관'의 힘이었다. 꾸준히 반복하니까, 성취감이 커졌다. 영화 한 편 볼 시간 동안 뚝딱 써낸 글이 여러 편 쌓여가니, 진짜 작가가 된 느낌이었다.
10%로만 써둔 글을 모두 꺼내어 매주 한 편씩 완성해 갔다. 내 글쓰기 스타일을 깨닫게 되었다. 자신의 작업방식, 작업 스타일은 한번에 알기가 어렵다. 적어도 두 달 이상 반복해야 패턴이 읽힌다. ‘이 정도 분량을 쓸 때 얼마나 걸리는지’ 알게 되니, 현실적인 글쓰기 계획을 세울 수 있었다. 제목, 글의 마무리 짓기 등 어떤 부분에서 어려움을 느끼고 오래 걸리는지 깨닫게 되니 그 부분을 집중 연습하면 되었다. 어쩔 때 의욕이 시들어버리는지, 시든 의욕은 어떻게 되살아는지 관찰했다. 이런 사소한 디테일은 사람마다 다르다. 글쓰기 수업을 통해 이론을 배워도, 실제로 글을 써보며 적용해 보지 않으면 무용하다.
제대로 결말을 지으니까, 투고를 할 수도 있었다. 글쓰기 모임 때 쓴 초고들이 연재물로 발전했다. 나를 비롯한 몇몇 동료들이 단행본 계약도 했다. 페이스북에 올려둔 글을 보고 연재 의뢰도 온다. 공모전에 보내볼 수도 있다. 절반만 쓴 글은 어디에도 팔 수가 없다. 완성한 글이라면, 행여 부족하더라도 편집자, 에디터가 수정 요청을 해 준다. 끝까지 쓴 글은 ‘가능성’을 가진다. 출간, 연재, 퍼블리싱의 가능성이다. 친구가 “요즘 뭐해?”라고 물을 때 완성한 글을 보여줄 수도 있다. 하지만 쓰다 만 글을 보여줄 수는 없다.
2 글쓰기 모임에서는 프랑스 남자와 사는 이야기를 썼습니다. 사적인 이야기라 많이 망설였는데, 글쓰기 모임에서 꾹 참고 써 내려가니, 연재 제의도 받게 되었습니다. 시어머니를 무서워(싫어)했던 경험도 진짜 솔직하게 썼는데...악플을 비롯한 비난을 엄청 받았으나, 글쓰기 모임 멤버들이 웃어주고 격려해 준 힘으로 강인해질 수 있었습니다. "비판글 달리면? 그 주제를 더 더 열심히 쓸 거야! 그 주제가 바로 중요한 이슈다!"
더 퍼스트 미디어에 연재 중입니다. 브런치에도 올립니다.
https://brunch.co.kr/@eunseongwrite/30 프랑스의 고부갈등
http://www.thefirstmedia.net/news/articleView.html?idxno=44818 44사이즈가 아니어도 수영복을 입어야 한다 -> 역시나 이 글도 페이스북에서 비판 받음
3 '이 것도 글이 될까' 일기처럼 써내려 간 글이 책이 된다니요!
https://brunch.co.kr/magazine/howtosaylove10월 말에 흔 출판사에서 단행본 발간됩니다
등등등. 글쓰기 멤버들 모두 책 계약하고 열심히 쓰고 있다.
월간지 마감을 할 때는 완성 원고를 데스크에게 이메일로 보내고서도 ‘완성’의 느낌은 들지 않았다. 데스크의 지적과, 원고 수정, 디자인 수정, 교정교열을 거치고 인쇄된 책을 받아들어야 완성감을 느낄 수 있었다. 지금은? 단행본에 들어갈 원고를 매일 1개 정도씩 작성한다. ‘완결이 되는’ 느낌을 얻기 위해 매번 브런치 사이트에 올린다. 메인 사진 초이스, 원고 모양 디자인 등도 내가 한다. 강조할 부분에 색깔을 넣는 것도 내가 한다. 그 과정을 즐긴다. 브런치 사이트에 올리기만 하면, 종이매체와 달리 인쇄 발행 시기까지 기다리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그 맛에 중독되어서, 자꾸 ‘완성’을 향해 달려가게 되는 것 같다.
다시 말하고 싶다. “한번 시작한 글은 어떻게든 끝을 맺자.” 모든 글쓰기 비법 중 이 말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 거창하게 시작했다가 때려치운 일이 많다면, 개요를 잡다가 포기해버린 일이 많다면, 앞부분만 쓰다가 망설인 일이 많다면. 함께 쓰기에 도전해 보자. 지금 이 글도 씀씀작업실의 글쓰기 모임에서 작성 중이다. 30분이 남았으므로 글을 어떻게든 수정해 브런치 사이트에 올려야만 한다. 그리고, 완성이 되지 않으리라고는 1%도 의심하지 않는다. 이제, 나는 마감 중에 카레를 끓이지 않는다.
1 무엇이든 쓰게 됩니다. 매일 쓰면 어제보다 나은 내가 됩니다
'쓰려고 앉으면 막막한 사람들을 위한' 글쓰기 워크숍 수강신청을 받아요. 편안하고 유쾌한 분위기에서, 무엇이든 글로 쓸 수 있도록 코칭해 드립니다.
2시간 동안 이론 수업과 함께 최소 4개 이상의 짧은 글을 즉석에서 써봅니다
매달 초 소글 워크숍이 시작됩니다. 10월 개강 알림은 9월 20일에 발송될 거에요 카카오톡 플러스 친구 '소글'을 친구추가해 두시면 편하게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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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10월부터 매주 토요일 오후 5시에 함께 쓰기 워크숍을 새롭게 진행합니다.
* 이미 소글 워크숍을 들은 후 내가 꾸준히 쓸 주제를 찾아냈거나 & 혹은 이미 연재물을 쓰고 있지만 규칙적으로 쓰기가 어려운 분들을 위한 워크숍으로 고안했어요!
내가 쓰고 싶은 주제로 글을 쓰고(2시간 쓰기) 1시간 동안 글쓰기 코치와 멤버들의 피드백을 듣는 시간입니다. 이미 제 글밥 아카데미 수업이나, 원데이 클래스, 소글 워크숍 수업을 들은 분들께도 유익할 거예요. 카카오톡 플러스 친구 '소글'을 친구추가해 두시면, 8월 29일부터 수강신청 알림이 날아갑니다. 이후에 신청하실 분은 문의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