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움이 된 시간과 멈추어야 했던 순간들
나의 기준이 세워지지 않았던 시절의 연애가 유독 오래 기억에 남는다.
나만의 기준이 없던 때의 난 이성적인 판단보다 감정적인 대응을 더 자주 했다. 상대방의 기분, 말투, 사소한 태도 하나에도 쉽게 서운해졌고 그 서운함은 다툼으로, 다툼은 이별로 이어지기를 반복했다. 그렇게 마음이 뜨거워졌다 식기를 반복했던 과정을 사랑이라고 착각했다.
지금에 와서 돌이켜보면 그것은 사랑이 아니라 소유욕이었으며 미성숙한 감정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상대방의 있는 모습 그대로를 사랑하고 존중하기보다는 내 기준보다 덜하다고 생각하니 서운해졌고 '나라면 그렇게 하지 않을 텐데'라는 이기적인 마음이 화를 불러왔다고 생각한다.
나 역시도 누군가 나의 모습을 바꾸려 하거나 내가 어떤 사람인지 끊임없이 이해시켜야 하는 관계에서 큰 에너지 소모를 느낀다. 하지만 이러한 깨달음에 이르기 이전에 나는 상대가 왜 그런 표정을 지었는지,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이해가 되지 않으면 끊임없이 이해받아야 하고 확인해야 했다.
그게 상대에게 얼마나 무례하고 힘든 일이었는지 깨닫지 못한 채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기억이 후회되지는 않는다. 생채기가 나기도 하고 생채기를 내기도 하면서 치유하는 법과 치유해 주는 법을 배웠다. 그 과정 속에서 사랑을 할 때의 나는 어떤 모습인지, 나의 성향과 결이 맞는 사람은 어떤 성향의 사람인지, 그리고 나는 상대에게 무엇을 해줄 수 있는 사람인지 알게 되었고 마침내 나만의 기준이 세워졌다.
그 과정을 겪고 나면 누구에게도 쉽게 휘둘리지 않는 나의 중심이 생긴다. 상대를 있는 그대로 존중할 수 있는 마음이 생기고, 동시에 내가 그어 놓은 선을 넘는 순간에는 단호해질 줄도 알게 된다. 그리고 그 단호함은 나만을 지키는 것이 아닌 우리 관계를 건강하게 지켜내는 힘이라는 것 또한 깨닫게 된다.
다만, 관계 안에서 내가 나를 잃었다는 감정을 느낀다면 그것은 더 이상 배움의 과정이 아니다.
상대를 이해하기 위해 나의 감정을 계속 눌러야 하고, 사랑을 유지하기 위해 나의 기준을 하나씩 내려놓게 되며 그러한 행위가 배려와 이해보다 일방적인 희생이라고 느껴지는 순간, 그 관계는 성장을 위한 경험이 아니라 소모에 가까워졌다는 신호이다.
내가 응원하는 서툰 사랑은 나를 부수며 버티는 시간이 아닌 나와 관계를 지키는 방법을 배우는 시간이다.
관계 안에서 점점 내가 어떤 사람인지 흐려지는 신호를 느낀다면 그 관계는 이미 내가 나를 지키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가 된다. 그때는 나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단호히 멈추어야 한다.
그러니 나를 잃지 않는 선에서,
서툴고 어리석은 사랑은 얼마든지 해보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