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낫저스트북클럽 3월의 책
동료들과 술을 마시던 헤밍웨이는 때아닌 논쟁을 벌입니다. 여섯 단어만으로 소설을 쓸 수 있느냐는 것이었습니다. 헤밍웨이는 그럴 수 있다고 했지만 동료들은 믿지 않았고, 증명해 보라 했습니다. 현대문학의 대문호는 주머니에서 펜을 꺼내어 테이블 위에 놓여 있던 냅킨에 영단어 여섯 개를 적었습니다. “For sale: Baby shoes. Never worn.”
전설처럼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의 진위는 불분명하나 전설이 된 대문호가 썼다는 여섯 단어 소설은 읽는 이의 마음을 뒤흔들기에 충분합니다. 이 일화는 제가 이 책을 읽고 가장 먼저 떠올린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소설은 종이에 찍힌 글자만으로 이루어진 예술이 아닙니다. 흔히 두꺼운 책은 읽기 어렵고 얇은 책은 비교적 읽기 수월하다고 여기는데, 사실 예술에서 분량이란 가독성 혹은 작품성과는 크게 관련이 없습니다. 여섯 단어만으로 (아마도 태어나기 전부터 준비해 두었을) 새 신발을 신겨보지도 못하고 아이를 떠나보낸 가족의 삶을 마주한 것처럼요. <이처럼 사소한 것들>은 적힌 글자보다 더 많은 것을 말하지 않음으로써 그려내는 단편 소설의 힘을 잘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책을 펼치고 마지막 장을 덮고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소설의 첫 부분을 다시 읽어보는 동안 마법 같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평소라면 붐볐어야 할 시간의 서점 문은 책을 읽는 내내 한 번도 열리지 않았고 덕분에 저는 조금의 방해도 받지 않고 이 짧은 이야기에 완전히 몰입하여 책에 인쇄된 모든 활자를 갈구하는 마음으로 읽어냈습니다. 다 읽고 나서도 멍한 기분으로 방금 경험한 것이 무엇인지 혼란스러운 마음이었습니다. 그날 밤 잠들기 전과 다음날 잠에서 깨어나 내내 이 놀라운 소설을 생각했습니다. 이어지는 며칠 동안 소설의 장면을 곱씹다가 문득 깨달았습니다. 키건은 아마도 카버 이후로 가장 완벽한 단편 작가라는 것, 생전에 혹은 과거 유명했던 예술가의 흔적을 좇던 소설 애호가가 현대의 위대함을 실시간으로 통과하고 있다는 것, 지금을 기억할 인간이 모두 사라지고 난 뒤에도 다음 세대와 그다음 세대가 두고두고 이야기할 소설가와 동시대를 살고 있다는 것, 그의 작품 출간과 동시에 읽고 느끼고 논할 수 있는 특권을 누리고 있다는 것, 그리고 그것이 특권임을 잘 알고 있다는 것.
한 편의 소설을 읽은 것이 아니라 직접 그 시간을, 그 삶을 살아낸 기분입니다. 책을 통해 타인의 삶을 간접적으로 경험하는 것이 독서의 이점이라고 합니다. 빙의와도 같았던 시간을 통해 예술이라는 강력한 카운터 펀치를 정면으로 맞아버린 지금 ‘간접 경험’이라는 표현은 너무나도 부족해 보입니다. 여러분도 세 시간 동안의 ‘이토록 사소한’ 직접 경험을 해보시길 바랍니다.
책 읽는 즐거움을 함께 누리는 낫저스트북클럽, 2024년 3월의 책
클레어 키건의 <이처럼 사소한 것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