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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은솔 Oct 30. 2024

<속죄>

2024 낫저스트북클럽 11월의 책

그저 좋다는 말로는 표현이 안 되는


영화 <어톤먼트>를 본 건 십수 년 전이었어요. 어학연수차 영국에 머물던 시기, 영어 공부를 위해 자막 없이 영어권 영화를 보는 것이 취미였어요. 영국 배우가 나온다는 이유만으로 아무런 정보 없이 고른 영화는 꽤나 길었고, 영국 여러 지역의 억양이 느리고 빠르게 쏟아져 나오는 대사는 알아듣기 힘들었고, 오랜 시간이 흐르도록 이 영화는 제 기억 속에서 전쟁과 사랑에 대한 이야기라는, 다소 평면적인 오해를 뒤집어쓰고 있었죠.


오해가 오해라는 것을 깨달은 건 (늘 그렇듯) 한 권의 책 덕분이었습니다. 어느 서가에선가 이름이 알려진 작가의 대표작이라고 하여 집어 들었는데 띠지에 영화 <어톤먼트>의 원작 소설이라고 적혀있었어요. 이 영화에 원작 있다는 사실도 몰랐는데, 심지어 이렇게 유명한 사람이 쓴 소설이었다니. 영화의 장면을 떠올려보려 했지만 기억나는 것이 없었습니다.


어쩌면 내가 <어톤먼트>를 본 것이라고 할 수 없겠다는 의구심이 들어 다시 보고 싶었지만 이용하는 OTT 서비스에는 없는 영화였어요. 아쉬운 대로 유튜브에서 영화 리뷰 채널 몇 개를 검색해 보고 나서 이 영화가 단순히 전쟁과 사랑이라는, 무지막지하게 크기만 한 두 단어로 요약될 수 있는 단순한 이야기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늦었지만 원작을 읽어야 할 때였어요.


읽는 동안 놀랍게도 오래전 보았던 영화의 장면들이 머릿속에서 재생되었고, 익숙한 전개와 대비되는 전혀 알지 못했던 감정들, 그리고 완전히 잊고 있던 결말 부분의 반전에 허우적대며 한 순간도 집중하지 않은 적이 없어요. 좋은 소설이 그러하듯 <속죄>도 그저 줄거리를 요약하는 것만으로는 매력의 일부도 전달하지 못하는 책이기에, 스토리에 대한 이야기는 접어두겠습니다. 절제된 표현과 섬세한 감정, 휘몰아치는 이야기와 그 배경을 이루는 거대한 역사적 맥락 등 이야기를 쓰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교본처럼 곁에 두고 읽어봄직한 강점이 많은 소설입니다.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으로 책 읽기에 관심을 가지고 재미있는 소설을 찾던 분에게도 독서 흐름을 이어가게 해 줄 좋은 선택이 될 거예요. 다소 두꺼운 분량에 겁낼 필요는 없습니다. 독서 난도는 책의 두께와는 크게 상관이 없으니까요. 서가에 아껴두고 이따금씩 꺼내 다시 읽고 싶은 이야기랍니다.



책 읽는 즐거움을 함께 누리는 낫저스트북클럽

2024년 11월의 책, 이언 매큐언의 <속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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