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NOT JUST BOOKS

일의 이유

왜 하필이면 서점일까

by 황은솔

가게를 열고 일 년 남짓, 가끔 놀라운 손님들이 찾아온다. 나는 그들을 알아보지만 그들은 그 사실을 모르는 경우가 많다. 오늘은 수년 전 선망하던 스타트업의 대표가 동행 한 명과 함께 왔다. 순돌이에게 반갑게 인사를 하는 걸 보니 이전에도 방문한 적이 있는 모양이다. 처음부터 그를 알아본 것은 아니었고, 동행과 나누는 대화를 듣다가 그가 그 스타트업의 대표라는 사실을 눈치챘다. 어머나, 하는 감탄사가 마음속에서 불쑥 솟아올랐다.


놀라운 손님이 찾아올 때면, 특히 그 손님이 (오늘처럼) 텍스트를 기반으로 인사이트를 전달하는 업계에 속해있을 경우 상상의 인터뷰를 진행하곤 한다. 손님이 인터뷰어, 내가 인터뷰이다. 그들은 나의 직업 환경에 흥미를 가지며 더 알고 싶어 하고, 나는 거기에 성심 성의껏 답한다. 적고 보니 '나 관종인가' 싶지만 어디 가서 소리 내어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고, 혼자 조용히 앉아 머릿속에서 질문과 대답을 주고받을 뿐이다. 가끔 하는 '실제의' 인터뷰에서 받았던 질문을 하기도 하고 최근의 고민을 질문으로 바꾸어 묻기도 하는데, 질문의 주체가 '놀라운 손님'이다 보니 나는 단어를 고르고 문장을 다듬어가며 최대한 상대를 감동시키기 위해 노력한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가게를 해온 지난 시간을 찬찬히 되짚어보고, 앞으로의 서점에 대해서 나름의 목표와 다짐을 하고 있는 스스로를 발견한다.


오늘의 중심 질문은 "왜 하필이면 서점인가?"였다. 서점을 시작한 계기와 그 시작에 대한 질문은 수도 없이 받았고 이제는 거의 외우다시피 한 대답을 기계적으로 뱉을 수 있다. 하지만 서점을 지금까지 하고 있는 이유, 앞으로도 계속하려는 이유, 가능하다면 지금의 자리에서 변함없이 오래도록 하려는 이유는 어디서도 이야기한 적이 없다. 누구도 묻지 않았고, 스스로도 고민해본 적이 없다. 사람의 오라가 얼마나 큰지, 그를 보자마자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는 질문이 떠오른 것이다.


서점이라는 특수 업종에 몸을 담고 있지만 이것은 어쨌든 나의 생업이다. 그러니까 서점을 계속하려는 이유는 곧 일을 계속하려는 이유라는 보다 근본적인, 어쩌면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필요 없는 질문과 맥이 닿아있다. 하지만 어차피 서점이란 곳도 책이라는 상품을 취급하는 소매점일 뿐이니 '굳이' 서점일 필요가 있느냐고 묻는다면 생각은 다른 방향으로 흐른다. 글쎄. 왜 하필이면 서점일까. 책이 아니고 다른 걸 팔면 안 되는 걸까. 나의 대답은 빠르고 확고하다. 절대 안 된다. 반드시 책이어야 한다.


책이어야만 한다. 그 이유를 찾기 전에 우선 가게를 하려는 이유부터 접근해보자. 비슷한 환경에서 자라고 교육을 받은 또래에 비해 나는 직업 환경이 자주 바뀐 편이다. 대기업과 중견기업, 중소기업과 스타트업, 연구실과 프리랜서 등 매우 다양한 규모의 조직에 몸담았고 그 분야와 담당 업무도 제조업, IT, 패션, 디자인, 마케팅, 사회적 기업, 음식, 유통, 통신판매 등 이-문-예를 넘나 든다. 여기저기 옮겨가며 버틴 십여 년 차 직업인으로서 내가 내린 결론은 '혼자가 편하다'이다. 물론 지금도 투잡을 유지하며 중소기업에 소속되어 있긴 하지만, 외주 프리랜서와 다름없이 일을 하고 있고 서점 운영도 처음부터 끝까지 혼자 한다. 이 생활은 개인적으로 치명적인 단점과 어마어마한 장점을 모두 가지고 있다. 혼자서 가게를 하며 반려견을 돌보고 나도 돌봐야 하니 체력적으로 매우 힘이 든다는 단점은 때때로 문자 그대로 치명적이다. 평균 일 년에 한 번은 응급실 신세를 지고 있고, 지난해 말에는 진짜 큰일 날 뻔해서 요양을 위해 급하게 거처를 옮기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부분은 혼자서 일을 하든 어떠한 규모에 속해 회사원으로 지내든 누구나 겪을 수 있으니 아무리 치명적인 단점이라도 일을 조금 줄이고 운동 시간을 늘리는 정도로 합의를 볼뿐, 가게를 그만둘 이유가 되지는 않는다.


반면 예산 분배와 브랜딩, 각종 프로젝트 기획과 킥오프 시점, 협업의 규모와 기간, 무엇을 들이고 뺄 것인지, 어떤 책을 밀고 어떤 작가에 러브콜을 보낼 것인지 등 말 그대로 '서점의 모든 것'을 혼자서 결정하고 실행에 옮긴다. 누군가에는 상당한 압박이 될 수도 있는 부분이지만 나에게는 엄청난 원동력이 되는 부분이다. 가게 문을 하루 더 열면 그만큼의 매출이 쌓인다. 적은 금액의 초과근무 수당이 일정 포함된 월급을 받으며 몸을 축내는 회사생활을 했던 나로서는 일한 만큼 더 번다는 것이 꽤나 감동적으로 다가온다. 돈보다 시간이 궁할 때는 며칠 문을 닫는다. 잠재적 매출로 시간을 사서 도시를 벗어나는 건 로맨틱하다. 무엇보다 혼자 일하며 가장 좋은 점은 더 이상 남 탓을 하지 않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십 대 중반에 첫 회사에 입사 후로 사회생활 내내 나는 남 탓하기 바빴다. 임시로 공간을 빌려 서점을 시작한 초기에도 표피에 날 선 가시를 가득 채우고 누구든 다가오면 찔러댔다. 오해와 화해와 결심과 번복과 번민과 후회의 시간을 지나 서점 운영이 어느 정도 안정기에 접어들자 '너 때문에'는 '네 덕분에'로 바뀌었다. 무언가 일이 틀어지면 그러려니, 문제가 보이면 바로잡고 안 보이면 피해복구에 최선을 다할 뿐, 누구도 원망하지 않는다. 그래도 마음이 괜찮다. 어떤 일이 잘 되면 고마운 얼굴이 열셋쯤 떠오른다. 어떤 때는 열 입곱이거나 스물 넷일 때도 있다. 다가와 손을 건네는 모든 이가 기껍다.


원망할 일이 줄고 감사할 일이 늘었으니 생활에 불만이 쌓일 리가 없다. 그러니 가게를 그만둘 이유가 없다. 그런데 가게를 지속한다는 것에는 일정 수익이 계속 발생한다는 전제가 포함된다. 이 일정 수익을 내는 것에 책만큼 어려운 상품이 없다. 서점과 출판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대략 알고 있듯 책의 마진율은 참 박하다. 우리 서점은 직거래와 총판, 매입과 위탁을 혼용하는데 평균 마진율은 25~30% 선이다. 순수익이 아니고 책 판매 후 서점에 남는 금액의 비율이다. 이를 쪼개서 가게 유지비와 운영비, 인건비 등을 모두 충당한다. 서점을 열고 초기에 읽었던 어느 책에는 중소형 서점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임대료의 20배에 해당하는 매출을 내야 한다고 적혀있었다. 직원을 쓰지 않고 사장 혼자서 일하며 굿즈 판매나 워크숍 등으로 부수적인 매출이 발생할 경우에도 월세의 최소 10배 정도의 금액은 매달 벌어야 한다. 그래야 그나마 유지가 되는 정도이고, 투자를 해서 확장을 한다거나 출판 등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려면 훨씬 더 많은 돈을 벌어야 한다. 대출도 매출이 어느 정도 받쳐줘야 원활하게 융통할 수 있다.


그런데도 왜 책이냐 말이다.


글쎄,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런 졸답밖에 못 구하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이어야 한다. 책이어야만 한다. 서점은 아니어도 괜찮을 것 같다. 하지만 책이어야 한다. 이유는 못 찾았다. '왜'라는 질문에 대답을 못하는 경우는 두 가지다. 내 것이 아니거나, 혹은 삶 그 자체이거나. 표어라도 만들어야 할까. "BOOK IS MY LIFE." 서점에서 티셔츠나 에코백을 팔면 그렇게 잘 팔린다던데. 만 원짜리 책은 안 사도 삼만 원짜리 에코백은 사간다던데. 이참에 나도 굿즈로 돈 벌어서 사고 싶은 책이나 실컷 사야 할까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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