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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은솔 Jan 29. 2021

<책방이 싫어질 때>

2021 낫저스트북클럽 2월의 책

서점의 기억을 되짚어봅시다.


국민학교에 입학해 초등학교를 졸업한 제 또래라면 당시 유행하던 괴담집 <아니 세상에 이런 일이>를 기억하실 겁니다. 처음 서점을 찾았던 건 국민학생 때였습니다. 여기저기서 긁어모은 잔돈을 주머니에 넣고 동네에서 꽤나 큰 서점으로 달려갔습니다. 당당하게 유리문을 밀고 들어가 저 앞에서 서가 정리를 하던 아저씨에게 직진해 눈을 최대한 크게 뜨고 외쳤습니다. “아니? 세상에 이런 일이?!”


2021 낫저스트북클럽 2월의 책

태재, <책방이 싫어질 때>, 롤업프레스


그는 지금 생각하면 놀라울 정도로 의연하게 뚜벅뚜벅 걸어가 천장 가까운 높은 칸에서 어두운 표지의 책 한 권을 꺼냈습니다. 바로 건네주지 않고 책 표지에 한 번, 제 얼굴에 한 번 눈길을 주다 말없이 책을 건넸습니다. 그다음은 사실 기억나지 않아요. 제 발로 서점에 들어가 처음으로 제 돈을 주고 산 책, 집에서 엄마 몰래 몇 번이고 읽었던 그 책, 삽화가 리얼해 악몽을 꾸곤 했던 괴담집과 덤덤한 듯 꿰뚫어 보는 듯한 서점 아저씨의 안온한 눈빛이 기억에 남아있을 뿐입니다.



도시 괴담집에 심취했던 아이는 이십오 년 후 서점 주인이 됩니다. 저는 이십오 년 전 서점 아저씨와 같은 눈으로 서점 문을 열고 들어오는 사람들을 마주하고 있을까요? 잘 모르겠습니다. 삼 년 남짓 책방지기로 매일을 보내며 깨달은 건, 서점 일은 때론 황당하고, 어이없고, 난처하고, 눈물이 나게 기쁘기도 하고, 울음이 날 정도로 화나고, 손이 떨릴 만큼 감동적이기도 한, 몸보다 마음을 빠르게 소모하는 일이라는 겁니다. 그렇기에 당차고 날카로운 목소리로 “아니? 세상에 이런 일이?!” 하고 외치는 어린아이를 의연하고 덤덤하게 대했던 아저씨, 선배 서점인의 내공이 얼마나 대단한지 지금에 와서야 감탄해 마지않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기, 작가이자 강사이자 서점원인 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가 서점원의 입장에서 서점에서 마주한 사람과 장면을 아주 웃기지도 않게 쓴, 그러니까 웃기긴 한 것 같은데 이걸 웃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다 나도 모르게 풉, 실소를 터트리고 마는, 그런 책이 있습니다. 어쩌면 예의 그 서점 아저씨가 처음 서점원으로 일하기 시작했을 때의 모습이 이러하지 않았을까 상상해보게 되는 책입니다. 한참 읽다 보면 하루를 마무리하는 시간, 웃기지도 않은 예능 프로그램을 볼륨을 작게 틀어놓은 채 작가와 통화를 하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듭니다. 전화기 너머에서 작가가 직접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 정도로 생동한 표현에 페이지가 쭉쭉 넘어갑니다. 동네서점을 아끼는 분들이라면, 독립서점이 궁금한 분들이라면 분명 재미있게 읽으실 수 있을 겁니다. 읽고 나면 어쩌지 못하고 저자의 팬이 되고 만다는 점에서도 좋은 책입니다.


함께 읽는 즐거움을 누리는 낫저스트북클럽, 2021년 2월의 책

태재 작가의 <책방이 싫어질 때>입니다.




https://notjust-books.com/books/?idx=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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