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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은솔 Feb 27. 2021

<죽은 자의 집 청소>

2021 낫저스트북클럽 3월의 책

죽음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있으신가요?

그러니까 ‘만약에 내가 죽으면,’으로 시작하는 상상이 아니라 실제 일어나는 일상의 사건으로서 죽음에 대해 고찰해 본 적이 있으신가요?


2021 낫저스트북클럽 3월의 책

김완, <죽은 자의 집 청소>, 김영사


책방을 열고 몇 개월 뒤부터 기침이 시작되었습니다.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기침약을 사다 먹으며 일 년이 지난 어느 날, 책방에서 마감을 하던 도중 그만 주저앉고 말았습니다. 두어 발자국만 걸어도 숨이 차서 움직일 수가 없었어요. 바닥에 엎드려 눈을 꼭 감고 숨을 쉬기 위해 최선을 다했습니다.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았고, 생존이라는 목적만이 뚜렷하게 남았습니다.


여러 사람의 도움으로 구급차를 타고 응급실에 갔고, 저는 생존했습니다. 그리고 제게는 천식이라는 만성 질환이 있다는 것을, 알코올과 수면환경에 예민한 반응을 보이는 알레르기 질환을 앞으로도 평생 지니고 살아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영화에서만 보던 응급처치제를 늘 지니고 다녀야 하며, 즐기던 술은 입에 대기는커녕 깊게 향을 맡을 수도 없게 되었죠. 그래도 하나도 아쉽지 않습니다. 그날 밤 저는 보이지 않던 죽음의 형체를 희미하게나마 목도하였고, 이것이 얼마나 빠르게 움직여 손 닿는 곳에 가까이 올 수 있는지 폐 속 깊은 곳에서부터 알게 되었거든요. 살아있다는 건 정말로 감사한 일입니다.


정정해야겠습니다. 갑자기 죽지 않고 살아남아있다는 건 정말로 감사한 일입니다. <죽은 자의 집 청소>를 읽기 몇 개월 전 김형숙의 <도시에서 죽는다는 것>을 읽었습니다. 병원에서 맞는 죽음의 허무함과 나에게 가장 익숙하고 편한 공간에서 죽을 수 있는 행운에 대해 생각했어요. <죽은 자의 집 청소>를 읽고 난 후에는 병원에서 맞이하는 죽음의 담백함과 홀로 죽는다는 것에 대해, 죽은 후에 혼자 남게 되는 상황의 공포에 대해 생각합니다. 아주 많이는 고통스럽지 않은 병에 걸려 죽을 수 있기를, 죽음의 흔적을 조금도 남기지 않고 빠르고 안전하게 통제하는 공간에서 내게 남겨진 것들을 하나씩 정리할 수 있는 마지막을 맞고 싶다고 생각합니다.


요즘도 가끔, 운전을 하다 긴 신호에 멈춰 설 때나 순돌이와 산책을 하다가 문득, 갑작스레 맞게 되는 죽음의 상황을 상상해봅니다. 죽음이란 먼 미래의 일이 아니라 내일 아침이나 어쩌면 오늘 저녁에 맞이해야 할지도 모르는 일이라는 걸 이제는 알고 있거든요. 아무도 없는 곳에서 움직이지 않는 나의 몸을 곁에 두고 순돌이 혼자 남아있게 되는 시간만은 제발 생기지 않기를 기도합니다. 기도는 일상의 변화를 가져옵니다. 조금 더 건강한 음식을 먹으려 노력하고, 운동을 못 하는 날에는 산책 시간을 늘려보고, 야식 대신 과일을 챙겨 먹게 되었어요. 그리고 자주 삶을 돌아봅니다. 지금 마주하는 얼굴을 어쩌면 두 번 다시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면 날 선 마음이 사그라들고 당신 생에 소중한 한 순간을 나와 나누어주어 감사한 마음이 듭니다. 습관처럼 내뱉는 바쁘다, 귀찮다는 핑계가 얼마나 어리석은지, 오늘 내가 뱉어내고 주워 담은 말들을 곱씹어봅니다.


<죽은 자의 집 청소>를 이달의 책으로 선정하고 당신과 나누기로 결정하기까지 많은 날들을 고민 속에 흘려보내야 했습니다. 추천하기에 결코 쉽지 않은 책입니다. 따뜻한 봄날에 죽음을 이야기해도 될까, 생의 고독을 당신은 견뎌낼 수 있을까, 혹여나 무거운 마음을 와장창 무너뜨리는 돌멩이 같은 책이 되진 않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당신이 이 책을 꼭 읽었으면 합니다. 죽음이 있기에 삶이 유의미하다는 흔한 말을 하려는 건 아니에요. 죽음도 삶의 한 부분이라는 걸 알았으면 합니다. 당신만큼은 하드웍스에 연락하는 날이 오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언제든, 힘든 마음이 생기면 서점에 와주기를, 편한 의자에 앉아 오래 머물며 책에 기대 울 수 있기를, 울고 있는 당신의 마음을 내가 제때 눈치채 주기를 바랍니다. 당신과 내가 이 책을 함께 읽었으면 하는 이유입니다.


함께 읽는 즐거움을 누리는 낫저스트북클럽, 2021년 3월의 책

김완 작가의 <죽은 자의 집 청소>입니다.



https://notjust-books.com/books/?idx=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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