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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은솔 Mar 30. 2021

<시크>

2021 낫저스트북클럽 4월의 책

시대를 반영하는 작품으로 인간 군상의 내밀한 민낯을 보여주는 작가 프란츠 카프카는 언젠가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 이렇게 썼습니다. “우리가 읽은 책이 우리 머리를 주먹으로 한 대 쳐서 우리를 잠에서 깨우지 않는다면 도대체 왜 우리가 그 책을 읽는 거지? 책이란 무릇, 우리 안에 있는 꽁꽁 얼어버린 바다를 깨뜨려버리는 도끼가 아니면 안 되는 거야.”


2021 낫저스트북클럽 4월의 책

트레시 맥밀런 코텀, <시크>, 위고



내가 직접 경험하는 것만이 내 세상의 전부라고 한다면, 우리는 모두가 다른 각자의 사정 속에서 서로 싸우느라 지쳐 죽을지도 모릅니다. 그러지 않기 위해 우리는 책을 읽고, 영화를 보고,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여행을 가고, 공부를 하며 일상 밖의 삶, 그 다양한 간접 경험을 늘려나가는 것이지요. 개인적으로는 책방을 운영하면서 더 작은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되었습니다. 존재하는지조차 몰랐던 생명이 내는 목소리를 밝은 곳에 두는 것이 동네서점의 역할이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목소리의 크고 작음을 규정하는 기준은 무엇일까요. 그 정도면 기득권이지, 저들은 소외계층이라고 봐야지, 너는 중산층에 속하지 않니, 나는 가난한 편이지. 우리가 뱉어내는 무수한 ‘사회적’ 발언들은 어느 땅에 근거해서 만들어지는지 의심을 가져본 적은 없으신가요. 책방을 하며 저는 작은 목소리를 대변할만한 충분한 자격이 있다고 스스로를 평가해왔습니다. 그런데 그 생각이 자라난 땅이라는 게 사실은 조그마한 깡통에 흙 몇 줌 가져다가 만든 화분에 지나지 않았다는 걸, 이 책을 읽고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잊고 있는 (그러나 처음부터 알고 있었는지도 확실치 않은) 진실은 사회적 위상과 부의 창출과 희생에 대한 우리의 지식이 우리가 누구인지에 근거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 우리란 가난하지 않은 사람들이다."


이 책의 저자 트레시 맥밀런 코텀은 흑인 여성 미국인입니다. ‘성공한’ 흑인 여성들이 그러하듯 저자 역시 ‘흑인 여성’이라는 수식어, 혹은 프레임을 기꺼이 쓰며 사실에 기반하여 진실을 말하기 위해 글을 씁니다. 스스로 “지금까지 미국이라는 나라에서 살아온 어느 세대의 흑인보다 운이 좋다”라고 말하는 작가는 “그러나 여전히 이 나라의 다른 어떤 사회적 계층보다 더 일찍 죽고, 더 가난하게 살고, 경찰의 폭력에 노출될 확률이 더 높은데다 단지 흑인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사회 정책의 핍박을 더 많이 겪어야 한다”는 점을 “사적인 에세이 장르의 요구에 맞춰 사신의 삶을 피처럼 짜내서” 이야기합니다.


그러니까 <시크>는 최근 몇 년간 제가 읽었던 책 중 가장 큰 도끼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내가 존중한다고 믿었던 작은 목소리란 어떤 이의 목소리에 비하면 고성방가에 가까운 폭력일 수 있으며, “심지어 좋은 의도에서 그랬다 해도 그것이 폭력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는 걸 이 책을 통해 깨달았습니다. 역사적으로 차별받아온 존재로 태어나 여전히 차별받으며 사는 삶에 대해 분석적이고 내밀하게 썼기에 많은 배경지식을 필요로 하고, 그만큼 읽기에 쉬운 책은 아닙니다. 다만  삶이 공정하지 않다고 생각하신다면, 찬찬히 읽으며 마음으로 이해해보시길 권합니다. 이 책이 당신이 스스로 있는지도 모르고 있었던 내면의 빙하를 깨부수어 그 너머의 무궁무진한 진짜 세상을 볼 수 있게 하는 도끼가 되어줄 겁니다.


함께 읽는 즐거움을 누리는 낫저스트북클럽, 2021년 4월의 책

트레시 맥밀런 코텀의 <시크>입니다.



https://notjust-books.com/books/?idx=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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