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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은솔 Apr 30. 2021

<멀고도 가까운>

2021 낫저스트북클럽 5월의 책

아름다운 책을 소개하는 일은 즐겁습니다.


그런데 아름답고도 숭고한 책을 소개할 때는 마음이 무거워집니다. 나의 세상을 한 뼘 바꾸어 놓은 이 한 권의 책이 당신 삶에 미칠 영향을 생각하면, 제 그릇을 넘어선 책임감의 무게가 어깨를 짓누릅니다. 그러함에도 꼭 읽어보시라 권하고 싶은 책들이 낫저스트북클럽의 이달의 책이 됩니다. 이번에 소개하는 <멀고도 가까운> 역시 그러합니다.


번역서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섬세한 문장으로 가득 찬 이 책을 읽고 나면 몸을 가득 채우는 이야기가 남습니다. 그런데 무슨 이야기였냐 설명하자면 어쩐지 입술을 떼기가 힘들어집니다. 기억나는 것은 눈물을 먹고사는 나방 이야기뿐, 한 인간의 슬픔과 성장이, 그가 통과한 시간이 어쩐지 나의 내일을 말하는 것 같아 단어를 고르고 또 고르게 됩니다.


“수용이냐 저항이냐를 선택할 수 있을 뿐, 변신 자체는 피할 수 없다. … 시간과의 싸움이었고, 시간이 이기고 있었다. 언제나 시간이 이긴다. 우리의 승리란 단지 유예하는 것에 불과하지만, 그래도 유예는 달콤하고, 어떤 유예는 한평생 계속 되기도 한다.”


고백하자면 이 책은 제가 처음 읽은 리베카 솔닛의 책입니다. 사회 문제와 인권, 차별에 맞서 활발한 활동을 해오며 한국에도 여러 저작이 출간된 유명한 여성 작가의 책을 이제야 접한 여성 서점주의 입장에서는 부끄러운 고백입니다. 그런데 한 사람의 독자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상투적인 표현이지만, 그를 이제야 알게 된 것은 큰 행운입니다. 아직 읽지 않은 그의 책이 많이 남아있고, 그 책들을 이제 처음으로 마주할 수 있으니까요.


“신경이 없는 신체 부위도 살아 있기는 하지만, 자아를 규정하는 것은 고통과 감각이다. 당신이 느낄 수 없는 것은 당신이 아니다.”


머리가 희끗해지고 노년에 접어든 작가는 평생 자신과 어머니를 괴롭혀온 ‘가족’의 의미를 이제 아이가 되어버린 노모를 돌보며 찬찬히 깨달아갑니다. 지금 자신의 나이보다 어렸던 어머니의 마음을 헤아려보면서도 어쩌지 못하는 상흔에 다시 울기도 합니다. 작가 자신이 이 책을 쓰며 그러했듯, 독자도 책을 읽는 동안 성숙한 한 인간 안에 숨어있는 상처 입은 아이를 발견하게 되고, 어루만져주고, 밖으로 나오도록 용기를 불어넣습니다. 그렇기에 마지막 책장을 덮고 나면 어딘가 묵직해진 마음과 더불어 조금 더 커진 스스로를 발견하게 되는 거지요.


“대파괴나 두려운 어떤 일과 나 사이에 담을 세우고 나면, 그다음엔 종종 삶 자체와 나 사이에 담이 세워지기도 한다. 담을 제대로 살피지 않은 채 방치하면 그 담이 질병처럼 스스로 커진다.”


함께 읽는 즐거움을 누리는 낫저스트북클럽, 2021년 5월의 책

리베카 솔닛의 <멀고도 가까운>입니다.



https://notjust-books.com/books/?idx=3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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