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요일

by 황은솔

현실은 혀를 길게 빼고 침을 흘리며 가까스로 그러모은 돈뭉치를 싹싹 핥아갔다.


헌신할 곳이 필요했다. 누구에게든, 혹은 무엇에게든지 온 마음을 쏟아 몸을 부딪혀가며 헌신할 무엇이 필요했다. 건강은 점점 악화되고 있었다. 사람들을 만나는 일이 잦아들었고 때때로 한 마디의 말도 입 밖으로 내뱉지 않는 날이 이어졌다. 사회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는 것 같아, 문득 생각이 든 밤, 글을 쓰기로 했다.


문학을 쓰기로 한다. 무엇에 관해 쓸지는 아직 모르지만 읽다 보면 눈물 한 방울쯤 맺히는 그런 글이었으면 좋겠다. 쓰고 싶지만 쓸 줄을 몰라 우선 스스로에 대한 설명을 적어보기로 한다. 자기 안에 가득 찬 불만부터 한 자 한 자 모니터 위에 옮기다 이건 아니다 싶다. 대안을 찾아 집 안을 획 둘러본다. 동네 전체가 투기 과열 지역이고 너도 나도 앞다투어 집을 사려는 신도시의 겉이 번드르르한 작은 오피스텔 방에는 글을 쓰려는 여자 하나, 옆구리를 동그랗게 오므리고 새근새근 잠이든 개 한 마리, 소리 없이 선 이름 모를 나무 하나, 마음에 썩 들진 않지만 철이 든 후로 처음으로 큰돈을 써 마련한 빨간 소파가 있다. 언젠가는 이런 공동 주택이 아니라 마당이 딸린 단독 주택에 살아야지 꿈같은 다짐을 하며 살림을 불리지 않은 탓에 작은 방인데도 휑뎅그렁하다. 지난주에 산 복권 결과를 아직 확인하지 않았다는 게 퍼뜩 떠올라 맨 위에 띄워둔 하얀 창을 내리고 인터넷 창을 열어 검색창에 ‘로또’를 입력한다. 지난주와 그 전 주, 지난달과 작년에도 매주 보는 두 글자가 적혀있다. ‘낙첨.’


로또 낙첨이 인생의 실패를 의미하는 것은 아닐진대 어쩐지 패배자가 된 듯하다. 새로 생겼다는 연금복권 홍보 창을 눌러 읽는 둥 마는 둥 스크롤을 내리는데 어느새 일어난 개가 축축한 코로 종아리를 툭툭 건드린다. 볼 일이 급하다는 신호다. 잠옷 바람에 양말을 신고 크고 못생긴 점퍼를 둘러 입는 새 개는 신이 났다. 종종걸음으로 꼬리를 홱홱 돌려가며 좁은 방 안을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한다. 오줌을 눌 수 있다는 기대만으로도 기쁨에 찬 몸짓으로 앞에 선 인간을 사랑할 수 있는 개가 부럽다.


건물 밖으로 나오니 예상치 못한 추위가 머리칼 속을 비집고 들어온다. 후드를 뒤집어쓰고 개가 즐겨 오줌을 누는 곳으로 서둘러 걷는다. 신이 나 앞서 걷던 개가 갑자기 멈추더니 바닥에 코를 대고 냄새를 맡는다. 하나 둘 셋 넷… 다섯까지 가는 일은 잘 없는 데 뭐지? 혹시 뭘 주워 먹으려나 싶어 줄을 당겨 개를 옆으로 오게 하고 이번엔 내가 바닥에 얼굴을 가까이 가져가 본다. 성냥이다. 삼분의 일 정도 타다 말고 꺼진 짧은 성냥. 머리 아랫부분이 굵은 실처럼 가늘어 타지 않은 끝을 잡고 들어 올리면 머리가 톡 하고 떨어질 것만 같다. 웬 성냥일까. 요즘도 담뱃불을 성냥으로 붙이는 사람이 있나. 빵집 앞이니 케이크를 사다 바로 앞에서 초를 불어 끈 걸까. 혹여 날아갈세라 숨도 참고 조금 더 가까이 들여다본다. 개들이 먹으면 어떡해, 쓰레기는 쓰레기통에 버려야지, 이걸 주을 이유를 찾다 주머니에서 오른손을 꺼내 조심조심 성냥을 집어 들었다. 바로 바스러질 줄 알았는데, 다 탄 까만 머리가 독립투사의 어깨 마냥 당당하게 서있다.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아니, 아무 생각도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입으로 가져가 혀에 올려두고 입천장과 사이에서 지그시 눌러주다 눈을 꼭 감고 꿀꺽 삼킨다.


영향력이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어느 분야에서 어떤 일을 하든지 함께 있는 사람들로 하여금 봄볕같이 기분 좋은 마음이 들게 하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다. 몇 해의 겨울을 보내며 비쩍 마른 황태처럼 짜고 비린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았다. 삶은 그럴듯한 소설이며 소설은 있을 법한 삶이라고 생각하며 꿈꾸길 주저하지 않던 때가 내게도 있긴 했다. 직업을 소명으로 여기며 매일 아침 문 밖으로 나서는 게 그리도 좋았던 젊은 내가 있었다. 자신감과 자아도취 사이 어디쯤을 비틀대며 걷다가도 사랑에 몸을 던질 줄도 알았던 그런 사람이 있었다. 나는 선 채로 고개를 떨구고 성냥이 누워있던 자리를 노려본다. 회색 보도블록이 일렁일렁 움직인다. 끄억끄억 울음이 터져 나오고 자리에 주저앉는다. 머리가 다 타도록 영영 울고만 싶은 화요일이었다.



NOT JUST WORDS.


낫저스트워즈는 일종의 실험입니다. 단어를 그러모아 일련의 번호대로 나열한 후 순서에 맞게 문장에 배치하며 한 편의 글을 완성합니다. 밖에서 찾아낸 단어로 안에 있는 이야기를 끌어낼 수 있을까, 아무 상관이 없는 말들이 내 이야기로 풀어질 수 있을까, 하는 호기심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이곳저곳에서 주워온 단어들이지만 이마저도 스스로 골라 적었기에 아직 완벽한 실험 조건을 갖추지 못했습니다. 함께 실험할 사람을 기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