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아웃 심리상담 2회 차를 마치고
상담받고 싶은 주제와 나에 대해 대략적인 틀을 이해하는 초도 상담 1회 차를 거치고, 2회 차 상담에 참여하기 전 심리 테스트 2개를 진행해야 하는 숙제가 내려졌다. TCI와 MMPI, 2가지였다. 일주일 내내 할 일에 치여 전날, 그리고 상담날 오전 간신히 테스트를 완료했다. 그리고 드디어 결과를 듣는 2회 차 상담. 평소에 주관이 확실하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 나는 스스로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확신했기에 큰 생각 없이 심리 상담소로 향했다.
"지금 많이 힘들어요, 은송님."
2가지 테스트에 대한 결과지를 펼쳐놓은 선생님의 첫마디였다. 의문형이 아닌 평서문으로 내뱉어진 그 문장은 머리를 띵하게 만들었다. 말씀에 따르면, 내가 인지하는 것보다 훨씬 많이 힘든 상태일 것이고, 가지고 있는 우울은 꽤 장기화된 것이라고 하셨다. 그리고 약물을 복용하는 것이 좋겠다고 말씀하셨다.
간단한 심리상담으로 해결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나의 생각은 오만이었을까. 6개월에서 1년 정도의 약물 복용이 필요할 수 있고(약물은 상태가 진전되는 정도에 따라 조절해 나가야 하고 장기 복용은 권장하지 않으신다고 했다), 꼭 약물 복용이 필요하냐는 나의 질문에 그렇지 않으면 스스로가 꽤 힘들 수 있다고 하셨다.
장기화된 우울. 대학생 때부터 우울하다는 말을 습관적으로 달고 살았다. 습관이라는 단어에서 알 수 있듯 스스로 인지하지 못한 채로 우울하다는 말을 내뱉었고, 20대 중반이 지난 후에 인스타그램 피드를 정리하다 게시물이 온통 우울하다는 말로 범벅되어 있는 것을 보고 그간 우울이라는 말이 나의 내면을 잠식하고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인스타그램 피드는 과거였고, 자존감 관련한 책을 읽으며 감정 인지에 대한 중요성을 깨달은 지금은 다르다고 생각했다. 일기장에도 무드라벨을 쓰면서 감정에 대해 인지하려고 노력했고, 예민하거나 화가 나면 그 상태에 대해 빠르게 깨닫고 경계하는 태도를 취하기에 크게 문제 될 것은 없다고 생각했다. 다들 힘들어하면서 사니까. 이 정도의 힘듦은 당연한 거니까. 징징거리기보다는 의연한 듯 살아나가는 것이 어른의 모습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심리 테스트 결과는 나의 생각을 정면으로 비판하는 듯했다. 성장 배경까지 연결되어 테스트 결과를 해석해 보았을 때, 감정의 해소를 돕는 대상이 어린 시절 없었기에 지속적으로 억압, 억제해 왔고 그것이 두통, 위통, 과민성 대장 증후군 등의 증상으로 연결되야만 인지한다는 것이었다. 분명 많이 외로울 텐데, 지칠 텐데, 불안할 텐데 그런 상태에 대해 인지하지 못해 소진이 쌓여 우울과 불안이 된다는 것. 감정을 드러낼 때 눈물을 컨트롤하기 어려운 스스로의 상태를, 흔히 농담처럼 '눈물샘에 수도꼭지가 없다'고 표현하는데, 그런 것도 억압되어 왔던 감정들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와서 그런 것일 거라 추측했다.
감기가 있으면 내과에 방문하는 것처럼 정신건강 의학과도 마음의 감기를 치유하러 가는 것이기에 방문하는 것에 크게 어려움을 느끼지 말라고들 이야기한다. 나도 그런 마음으로 심리상담센터를 찾았다. 상담을 통해 나를 깨닫고, 전문가에게 상태를 진단받으면 쉽게 호전되겠지, 하는 마음이었다. 하지만 약물을 복용하는 것은 다른 문제였다. 가끔 약국에서 적어도 한 달 이상분의 약을 받아오는 것으로 생각되는 두꺼운 약봉지를 들고 나오는 사람들은 으레 어르신들처럼 누군가의 보호가 필요하거나 겉으로 보기에도 꽤 약해 보이는 사람들의 영역이라고 생각했으니까. 심각하게 생각할 영역은 아니라고 하지만 마음이 좋지 않은 건 어쩔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