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 다시 시작, 일기처럼 가볍게
몽롱하고 아득한 글쓰기 계절
어린 시절부터 난 책을 보는 것을 싫어했었다. 고작 읽어본 책이란 게 코난 도일이나 에거서 크리스티의 추리소설이 대부분이었다. "교과서 위주로 공부했어요"라는 전국 1등 학생의 말이 일반화될 만큼 지극히 평범했던, 더 정확히는 성적 하위 그룹이었던 난 교과서 말고는 어떤 책도 잘 읽지 않았다. 요즘 유행하는 MBTI에서 말하는 ENTP여서 그런지 책을 읽기 시작했더라도 끝까지 읽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절반 정도 읽게 되면 정신이 몽롱해진다랄까? 아득해지는 기분과 함께 후반 책 1/3 정도는 무슨 내용인지 기억도 못하리만치 지나가 버리는 게 일상이었다. 이렇게 읽어서 무엇하나 하는 생각에 다시 돌아가기보다는 책장을 덮어 버리는 경우가 많았다.
대신 어린 시절부터 항상 했었던 것은 집에 있는 동아 원색 세계 대백과사전을 훑어보는 것이었다. 디지털화된 사전이란 게 존재하지 않았던 그 시절에는 백과사전은 내게 보물이었다. 여느 아이들이 다 그러하듯 항상 세상에 대한 "많지만 짧은 궁금증"을 품고 살았고 백과사전은 내 어린 시절의 소중하고 친절한 친구였다. 디지털화된 지금의 시대에는 아날로그화 된 백과사전은 더 이상 만들어지지 않기에 이제 나의 친구는 나무 위키이다. 사람들은 꺼무위키라고 말하며 나무위키에서 나오는 정보를 신뢰하지 않는다. 분명 옳은 생각이다. 인터넷에 대중이 만들어낸 정보는 신뢰까지 할 소중한 지식이라 이야기할 수 없다. 다만 참고다. 나무위키에서 정보의 힌트를 얻고 이후에는 검증을 위해 다른 자료들을 찾아보는 노력, 그 노력을 하는 사람에게 있어서 나무위키는 참 좋은 자료이다.
어찌 되었건 결론적으로 난 글을 진득하게 읽지 못하는 사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항상 마음에 담고 있는 생각은 "글을 쓰고 싶다"였다. 뭔가 내 생각을 떠들어 대고 거기에 대해 사람들이 이런저런 칭찬과 찬사를 할 때 뭔가 우쭐해지는 기분이 좋아서라고 말하겠다. 물론 나이가 들어서는 소위 패시브 인컴으로 책의 인세를 받고 싶었던 것도 사실이다.
어딘가에 내 글을 통해 내 생각을 표현하게 되면 당연하게 따라오는 것이 악플이다. 나는 악플에 상당히 강인할 줄 알았다. 아니었다. 본업이 나름은 이미지를 가지고 하는 일이라(글을 쓰는 것과는 다른 또 다른 부케는 밝히기 꺼려한다) 간혹 인터넷상에서 품평회가 일어난다. 이 품평회를 크게 생각지 않았었는데 언젠가 한번 어느 고등학생의 악플때문에 며칠 동안 이불 킥을 했던 적이 있었다. 더 정확히는 지금도 그 생각을 하면 얼굴이 붉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을 쓰고 싶다고 하는 것은 어쩌면 인생의 무료함이랄까? 내가하던 사업체를 어느 정도 궤도권에 올려둔 후 동업자들과 합의하에 이별을 고했다. 내가 원하던 삶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 후에 다시 정규적이지만 가변적인 여러 일을 동시에 하면서 일용직(?)처럼 지내였고 주 6일 , 때로는 주 7일 일을 하면서도 그리 나쁘지 않은 생활을 유지했었다. 그러다 체력적인 한계를 느껴 주 4일 정도로 일을 바꾼 후론 주변 많은 사람의 부러움을 받으며 지내고 있다. 그렇게 주 4일로 일을 하게 된 지 이제 대략 2년 즈음이 되었다. 엉덩이가 가벼워서 글을 쓰지 못할 줄 알았는데 정확히는 나의 게으름으로 글쓰기 자체가 시작되지도 않았다는 사실을 느껴야 했다.
나름 석사까지 했으니 대한민국에서는 고학력자 중 하나라는 부끄러운 타이틀을 쥐고 있다. 누군가에게는 무기 일지 몰라도 내게는 어떤 부끄러운 족쇠(?) 같은 것이다. 나름 불만 없는 생활을 하고는 있지만 또다시 게으름이라는 칸막이의 틈을 따라 글쓰기의 욕구가 삐져나왔다. 아하 이를 어쩌나. 어쩌면 이번에도 나의 게으름은 삐져나온 욕구의 싹을 싹둑 잘라버릴 수도 있지만 그래도 뭔가를 남기고자 하는 마음에 끄적이기 시작하련다.
오늘도 책을 읽을 때와 마찬가지로 느껴지는 글 쓸 때의 아득한 몽롱함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