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심하세요. 당신은 보호받고 있습니다.
아내와 결혼을 준비하면서 신혼집을 알아보고 다녔다. 양가 집안의 도움을 받지 않고 온전히 우리만의 결혼을 준비하고 있었기에 수중에 쥐고 있는 돈이 부족했다. 그것도 사업자대출로 받았던, 그마저도 사업체를 그만두었기에 한두 달만 지나면 상환해야 하는 대출금뿐이었다. 여러 사정으로 빠른 결단을 내려야 하는 상황이었다. 지방에 있던 아내가 올라와 같이 집을 보러 다녔다. 하루종일 공인중개사 선생님과 돌아다니며 이 집 저 집을 보고 다녔지만 썩 마음에 드는 집이 나오지 않았다. 저녁이 되어 초조한 마음이 들 때 즈음 지금 살고 있는 이 집을 마지막으로 만나게 되었다.(집도 인연이 있다고 생각한다.) 이 도시에서 가장 큰 중앙로변의 소규모 아파트였다. 부동산을 잘 아는 사람들이라면 대다수 반대할 입지였지만 우리 부부는 이 집이 참 좋았다. 물론 인근 비슷한 크기의 도로와 떨어진 아파트에 비해 저렴하기도 했다. 그것만은 아니었다. 저녁 으슥할 시간이라 귤색으로 물든 석양, 그위로 청람색 저녁하늘과 하루를 마치고 퇴근하는 사람들이 운전하는 차량의 붉은 뒤태가 좋았다. 베란다에서 아내와 막 내린 커피 한잔을 마시며 원목 의자에 앉아 야경을 보는 우리를 상상했다. 남들이 따지는 입지나 주변 환경, 생활 여건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오직 야경이 좋아서 계약을 했다.
이사는 2월이었다. 인테리어는 화장실과 도배 정도로 최소만 했다. 갚아야 할 대출의 크기보다 몇 곱절 더 커다란 부담감이 어깨를 짓눌렀기 때문이다. 결혼을 하고 아내가 지방에서 올라와 둘의 보금자리에 함께 했다. 행복했다. 날씨가 풀리고 4월이 되고부터는 창문을 열어두는 시간이 늘어났다. 그때 처음 느꼈다. 왜 대로변의 집을 들어가지 말라고 하는지 말이다. 지나가는 차량의 소음이 밤이 되면 더 크게 집안을 울렸다. 간혹 폭주족인지, 고장 난 차인지 엔진음이 너무 큰 납작한 차들과 오토바이가 지나갈 때면 언제 터지나 궁금했다. 쫓아가서 딱밤이라도 한데 때려주고 싶은 마음도 들었다. 광역버스 정류장이 바로 옆이라 가속하는 버스의 엔진음도 상당한 크기로 들렸다. 소음에 민감한 사람이라면 꽤 고통스러운 집일 것이다. 그나마 다행인 건 요즘은 버스들과 납작한 차를 선호하던 이들이 전기차로 전환을 하여 간혹 들리는 타이어 마찰음 정도로 소리는 많이 줄었다. 하지만 절대 줄지 않는 것은 엠뷸런스와 경찰, 그리고 소방차의 사이렌 소리였다.
이사를 온 후 수년이 지났다. 다행히도 우리 가족에겐 사이렌을 울려야 할 큰 사건이 일어나지 않았다. 다만 같은 아파트 다른 동에서 두어 차례 화재가 있었다. 불이 확산되기 전에 진화되어 큰 피해가 없었다. 퇴근하고 저녁 늦게 집에 오면 간혹 엠뷸런스가 번쩍이며 환자를 기다리고 있던 경우가 서너 차례 있었다. 노인이 많이 사는 아파트다 보니 그런 일이 빈번하게 일어난다. 집 앞 편의점에서 취객이 언쟁을 벌이다가 몸싸움까지 가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때마다 경찰차는 싸움구경 기회를 내게 주지 않겠다 각오라도 했는지 빨리도 닿는다. 모든 게 도로와 접하고, 경찰서와 소방서, 병원을 끼고 있는 집의 위치 때문일 게다.
우리나라 어느 아파트에서 소방서의 앰뷸런스 소음에 대해 민원을 제기했다고 한다. 심지어 시위까지 하겠다고 엄포를 놨다고 한다. 이해는 한다. 소리가 시끄러운 건 사실이니까. 하지만 그 시끄러움이라는 비용을 지불하고 누구보다 빨리 화재를 진압할 수 있는 일종의 보험을 들었다고 생각할 수는 없을까? 내 집이 불타 눈앞에서 재가 되는 모습을 보며 발동동거리며 소방차만 기다릴 수밖에 없는 이들에 비해 사회간접 자본의 수혜를 더 받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 정도 소음은 비용으로서 감수할 수 있는 것 아니겠는가?
이 집에서 살게 된 지 오래되어 적응이 된 것도 있겠지만 사이렌 소리가 간간이 들리면 나는 안심이 된다. 내가 아직 이 사회의 시스템의 보호를 받는 지역에 살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어서다. 누군가를 구하러 나가는 사이렌 소리가 들리면 꼭 성공하길 기도하는 마음이 필요하다. 그게 내가 될지도 모르는 일이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