쉽게 되어 버린 브런치 작가

시작과 동시에 슬럼프

by 은수

인스타그램을 운영하는 메타에서 트위터의 대항마로서 스레드라는 소셜미디어를 론칭했다. 론칭한 날 가입하고 이용하기 시작했다. 500자 제한이 있었기에 짧게 냅킨에세이를 쓸 수 있겠다는 마음에 사용을 시작했다. 오탈자를 파괴적 수준에서 써버리는 내겐 오탈자를 교정할 기계교열이 필요했다. 네이버 블로그를 이용했다. 그곳에서 포스팅은 하지 않고 교열만 하고 저장만 했다. 문득, 이렇게 포스팅을 하지 않는다면 오래전에 가입했다가 작가 신청에서 까였던 브런치에다 저장하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브런치를 다시 열어 이용을 시작했다. 몇몇 글을 쓰고 나서 혹시 몰라 작가신청을 해보았다. 5일 내에 심사 결과가 나온다고 했는데 크게 기대를 하지 않았다. 이전에 반려된 경력도 있을 뿐 아니라 내 글은 그다지 좋은 글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고작 냅킨에세이라는 이름처럼 쉽게 써져 쉽게 버려질 그런 글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작가 등록이 완료되었다는 알람이 왔다. 황당했다. 왜?라는 말밖에 나오지 않았다. 기분이 좋지 않았다고 말하면 그건 거짓일 게다. 하지만 그런 기분 좋음보다 부담이 커져버렸다. '작가'라는 이름을 붙이기에 다른 진짜 작가님들께 죄를 짓는 것 같았다. 부담 때문인지 글을 쓰는 게 어려워져 버렸다. 머리가 무겁기도 하거니와 매일 조금씩이라도 글을 써보자는 각오가 짐이 되었고, 일이 되어 버렸다. 그렇더라도 이대로 키보드에서 손을 내려놓을 수는 없다. 뭐라도 써야 한다. 지금까지 근 20년 동안 시작만 하고 그만뒀던 글쓰기 각오가 수없이 많지 않던가. 이젠 그걸 끊고 싶어졌다. 발행은 하지 않더라도 하루에 한편 이상의 짧더라도 내용이 있는 글을 쓰고자 한다. 횡설수설하더라도 말이다.


학회 참석차 라스베이거스에 갔을 때다. 맥주 한잔하고 싶어 밤늦게 1층 카지노로 갔다. 카지노에서 1달러의 팁만 바니걸즈에게 주면 버드와이저 한 병을 가져다주기 때문이다. 거기서 만난 할아버지의 가르침에 따라 슬롯머신에서 2000달러를 땄었다. 쉽게 번 돈은 쉽게 써버려야 한다는 생각에 다음날 일행들에게 한턱 쏘고, 남은 만큼 명품관에서 키홀더와 머니클립을 샀다. 평생 명품 따위에 관심도 없었지만 흥청망청 써버리기 위한 선택이었다. 의도였지만 쉽게 번돈을 쉽게 써버릴 수 있었다.


브런치 작가가 쉽게 되어버렸다. 베가스에서 도박으로 쉽게 벌었던 돈처럼 더 쉽게 글을 쓸 수 있게 되었으면 좋으련만 지금 나는 방황이 시작되었다. 쉽사리 타자가 처지지 않고 머리도 돌아가지 않는다. 문장은 바라지도 않는데 흐름마저 끊겨 버린 듯하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책을 읽어보지만 그 또한 한계가 많다. 그렇지만 억지로라도 써 내려가보려 한다. 언제까지 할 수 있나 한번 보자.


누군가 그랬다. 브런치 작가가 된 것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고. 쉽게 되어버려 더더욱 시작의 귀퉁이 끝에 매달려 있는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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