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출신의 어느 방송인이 독일을 떠나 한국에 올 때, 정확히는 어머니 슬하를 떠날 때 그의 어머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다고 한다.
"참, 만나서 행복했다"
그분의 이 말씀이 잔잔한 감동의 물결이 되어 가슴에 와닿았다. 행복했다는 어머니의 말보다 부모와 자식 간의 인연을 만남으로 표현하다니. 자식을 부모의 분신이나 끊어낼 수 없는 관계로 여기며 "천륜"이라는 이름으로 묶어두는 한국사회에 살았기에 내게는 적어도 신선한 충격이었다. 본받아야 하는 마음자세다.
승전국으로서 독일에 주둔했던 이스라엘 군인이었던 그의 아버지, 그런 그를 사랑했고 태중에 아이를 임신한 여인을 두고 아버지는 그가 태어나기도 전에 본국인 이스라엘로 귀환했다고 한다. 어떤 의미에서 한국에서도 한때 그리 드물지 않았던 이야기. 점령군의 아이를 임신한 미혼모로서의 삶은 그리 녹록지 않았을게다. 동맹군의 아이를 임신한 어머니들의 삶도, 아무리 그것이 사랑이었다 하여도 쉽지 않았을 텐데 하물며 점령군의 아이라면 오죽했겠는가. 그분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변인의 손가락질은 아랑곳하지 않고 아이를 지켜냈고 자식과의 이별의 순간이 왔을 때 떠나는 자식에게 그 말을 남긴 것이다.
" 참, 만나서 행복했다"
그의 어머니는 아들을 우연히도 만나 인연을 맺은 좋은 손님으로 생각했던 것 같다. 부모와 자식은 언젠가 필연적으로 이별을 담보하고 있으니 손님이라는 어느 철학자의 표현이 옳다. 자식을 선택할 수도, 부모를 선택할 수도 없이 오롯이 운명처럼 만나고 살아가는 부모와 자식의 관계는 우연성이 강한 인연이지 않겠는가? 부모와 자식과의 관계를 어떻게 정의해야 할지 어렵다면 독일 출신 방송인의 어머니처럼 우연히도 찾아온 손님을 대하듯
"참, 만나서 행복했었다"
라고 말할 수 있는 관계로 정의함이 옳지 않을까? 그것이 자신의 자녀에게 삶의 독립을 시켜주고 동시에 새로운 인연을 만들어 마음속에 좋은 자리에 그 인연을 담뿍 채울 수 있는 내면의 공간을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닌가 싶다.